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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추미애[속보]추미애…'미디어 지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50雜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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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호(號)가 ‘단독’ 혹은 ‘속보’인 줄 알겠다.

휴대전화나 PC에서 포털사이트를 열면 [단독]추미애…[속보]추미애…기사로 도배가 돼 있다.

의사들의 진료거부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이후, 언론의 이슈는 추장관으로 급선회했다. 어제로 끝난 4일간의 국회 대정부 질문도 대 추장관 질문이었다. 야당은 인사청문회도 아닌 대정부 질문에서 따질 일이 한 예비역 젊은이의 군복무당시 휴가3일 밖에 없어 보였다. ‘쉴드’치려다 추임새 넣는 꼴이 되는 여당 의원들도 안쓰럽긴 마찬가지였다.

근 열흘 정도는 국내 대표 포털 네이버의 오전 9시 이전 출근길 ‘많이 본 기사’ 10위 중 7~8개를 추장관 기사가 차지했다. 그 중 대여섯 개는 어김없이 보수를 대표한다는 2개 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의 기사다. 대정부 질문이 끝난 오늘 오전8~9시 모바일 화면에도 정치면 가장 많이 본 기사 3개가 두 신문 기사이고, 그 중 두 개가 추장관을 겨냥했다.

경제지에 몸담고 있는지라 코로나19의 경제파급, 추가 경정 예산, 주식 부동산시장 동향 등 경제 관련 기사나 자료를 찾아보려고 억지로 억지로 눈을 다른 데로 돌려보는데도, ‘어~’하다가 정신차려 보면 또 다시 추미애 기사로 들어가 있다.

아침 신문에 실리는 기사나, 온라인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적 기사, 전날 실렸던 기사의 재활용(속칭 우라까이) 버전을 언론이 일시에 쏟아내는 오전시간에는 이런 ‘싹쓸이’현상이 유독 심했다.

많이 본 기사, 랭킹뉴스. 관련기사, 추천기사, 언론사의 푸시 기사…촘촘한 그물을 벗어나기 힘들다. 한번 발 잘못 딛었다간 계속 모래톱으로 주루룩 굴러떨어질 수 밖에 없는 개미지옥 같은 ‘미디어 지옥’이다.

오프라인 신문 보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줄고, 이에 따라 신문사들의 발행부수도 급감하고 있어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기존 전통적 신문사)들의 기사를 보는 사람들이 점점 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레거시 미디어를 대표하는 이 신문들의 체감 노출도는 적어도 포털의 정치영역, 특히 네이버에서는 오히려 더 커지는 느낌이다.

네이버는 2018년부터 뉴스 편집·배열을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이 하고 있다(다음도 AI기반 편집과 배열을 하고 있다). 사람이 아닌 AI가 뉴스면을 편집하고, ‘뉴스 판’은 자신이 구독을 설정한 언론사의 뉴스만 뜬다. 그런데 왜 이런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날까.

18일 현재, 대한민국 언론중에 네이버에서 구독설정자(과거로 치면 신문구독자)가 400만을 넘는 곳은 4군데이다. 중앙일보가 490만을 넘어서 500만에 육박하고 있다. 이어 JTBC, YTN 조선일보가 400만을 넘는다. '구독 4강’ 중에 JTBC와 YTN은 방송사 특성상 신문사에 비해 기사 건수 자체가 많지 않다. 보수세력의 집결지처럼 돼 버린 네이버에서 잘 먹힐 만한 기사는 더 적다. 그 뒤로 300만명 넘는 언론사가 9개, 200만을 넘는 언론사가 6개다. 좌우 정치성향이 두드러지는 매체, 영상콘텐츠를 보유한 방송사, 제목낚시질에 특히 능한 신문사들이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네이버의 ‘구독 시스템’ 전환 이후, 언론사들의 ‘구독 경쟁’ 줄서기가 치열해지면서 언론사별 네이버 구독자 수는 자본력과 기존 독자 수에 수렴하고 있다.

네이버 다음은 뉴스편집 AI 알고리즘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영업비밀이기도 하거니와, 알고리즘을 공개하면 이를 이용한 언론사들의 트래픽 낚시질이 극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어떤 알고리즘이건 출발은 ‘노출’이다. 독자가 기사를 읽으면 여기에 인공신경망 기술로 뉴스 소비 패턴을 분석해서 기사를 연결시키고 확장시킨다. 언론사마다의 특색있는 기사를 우대하고 낚시질 기사를 걸러내고자 하는 필터링이 더해진다. 언론사가 주요뉴스로 선정(검색시 ‘Pick’으로 표시)하면 검색창 등에서 노출도가 훨씬 높아진다.

제목에 [단독] [속보]가 붙은 기사는 우대된다. 네이버는 하루 [속보] 머리글을 언론사당 15개로 제한하고 있다. 이 15개의 실탄은 이슈 선점과 클릭 수확을 위해 사용한다. [단독]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다보니 인터뷰기사에도 [단독], 발표자료에도 [단독]이 붙기도 한다. 아침마다 [단독]추미애, [속보]추미애가 포털사이트에 줄줄이 사탕이 되는 이유이다.

구독자 400만명이 넘는 언론사가 이런 방식을 통해 밀어내는 기사는 일단 출발점에서부터 우위를 차지한다. 댓글달기가 이어지면서 클릭수는 더 높아진다. 클릭은 언론사 수익으로 이어지는 동시에 포털 비즈니스모델의 근원이다. 가짜뉴스나 명예훼손 같은 범죄에 따른 손해배상 등에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포털로서는 기사의 품질이나 진위, 배경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네이버가 그나마 ‘댓글보기’라는 단추를 추가해 댓글보기를 조금 불편하게 했을 뿐 포털이 정치뉴스 댓글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기사를 클릭했을 때 언론사 사이트로 넘어가는 아웃링크(Out-link)가 아닌 포털사이트 내에서 읽히고 댓글이 달리는 '인링크('In-link)' 방식에서는 기사댓글창이 곧 사이버 광화문광장이다.

충성 독자들은 단지 기사를 소비하는게 아니라 상대방 진영을 향한 욕설과 비난을 퍼부으면서 정치행위에 가담한다. 상대보다 목청을 높이고 비난과 욕설로 기를 죽이고, 댓글 수를 늘려 세과시에 나선다. 네이버가 올들어 악성 댓글 방지를 위해 댓글 이력 공지 조치를 실시했지만 이력공개로 악성댓글이 막아질 리 만무하다. 키보드 워리어들에게 댓글 이력 공개는 오히려 ‘훈장’이다.

‘많이 본 기사’에 걸리는 기사의 제목에는 어느 언론사 기사인지 출처도 적혀 있지 않다.

분노조절 중추를 자극하는 제목을 보고 저절로 손이 가 클릭을 하게 되면 그 순간 낚인 거다. 이슈 확대 재생산 고리에 일조를 한 셈이다. 소비자들은 메이드인 코리아인지 메이드인 차이나인지 모르고 일단 쓰고 보게 되는 것이다. 신문은 구독거부라도 하면 되지만 포털기사는 소비를 거부할 자유가 없다.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이 달린 기사가 뜨고, 이에 따라 뉴스토픽 검색어 순위가 올라가게 되면 다른 언론들이 보다 더 눈에 띄는 제목을 달고, “~라고 전해졌다, 알려졌다”류의 기사로 트래픽 사냥에 나선다. 이제 언론 전체의 아젠다가 된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SNA)를 통해 확산은 가속화된다. 조금 있으면 회원이 몇 명인지도 모를 ‘시민단체’가 등장, 검찰고발이 이어지고, 또다시 언론이 등장하는 무한대의 악순환 고리는 익히 목격해 온 대로다.

개미귀신은 깔때기 모양으로 모래톱에 개미지옥을 파고 숨어 있다가 미끄러져 떨어지는 개미를 큰 턱으로 잡아 체액을 빨아먹는다. 대한민국 독자들은 정치보도를 넘어 정치행위에 나선 언론사들이 쳐 놓은 미디어 지옥에 빠져 뇌수를 빨린다.

독자들이 개미지옥에서 보내는 시간을 '맨 아워man hour)'로 환산해보면 ㈜대한민국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생존의 기로에서 몸부림치는 국민들을 눈 앞에 두고 정치권과 언론은 하루종일 [단독]추미애와 [속보추미애에 세월을 보내고 있다.

개미귀신은 개미의 몸무게가 딱 미끄러지기 좋은 경사로 개미지옥을 만든다. 개미가 아무리 똑똑하고 체력이 좋아도 스스로 개미지옥을 벗어나지 못한다. 독자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기사의 배경과 행간을 파악해 미디어지옥을 벗어나길 기대할 단계는 지났다.

미디어지옥을 허물어 뜨리는 첫 단계는 작동 메커니즘부터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래야 뉴스 제작·유통 주체들이 제품에 엄정한 책임을 지고, 좋은 제품(기사)이 제대로 대접받는 언론개혁 해법이 나온다.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navid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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