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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의사가 의사파업을 비판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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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보라 공동대표

“정부의 의료제도 개입 자체를 거부한 것이 의사 파업의 본질”

[경향신문]

경향신문

의사단체이면서도 이번 의사 파업을 강하게 비판했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이보라 공동대표는 지난 10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정부의 (미흡한) 정책을 옹호하는 것처럼 비춰질까봐 고민됐지만, 필수의료인력까지 빼버린 파업은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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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인력까지 빼버린 파업
의사집단의 민낯이 이런 거였나
발가벗겨진 듯 부끄러웠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전공의 집단휴진(파업)이 끝났다. 파업 기간 동안 의사들은 나이와 직급에 상관없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였다. 전공의들의 파업 참여율은 무려 80%에 달했고, 의대생부터 전임의·의대 교수까지 모두 의사 수 증원·공공의대 설립 정책을 반대했다. 코로나19라는 위기상황 속에서 파업을 강행하는 의사들에 대해 국민 여론은 좋지 못했으나, 의사 집단의 파업 지지 분위기는 흔들림이 없었다.

대다수 의사들이 뭉쳐 한목소리를 내는 동안, 다른 목소리를 낸 소수의 의사들이 있었다. 보건의료시민단체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이다. ‘세상이 아프면 의사도 아파야 한다’는 신념 아래 1987년 창립된 인의협은 의사의 사회적 책임과 참여를 강조하는 단체다. 인의협은 전공의 파업 직후 성명을 내고 “정부의 의사 수 증원안은 문제가 많아 개선해야 하지만,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의사단체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명분 없는 의사 파업을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20년 만의 대규모 의사 파업을 지지하지 않는 인의협에 대해 서운함과 배신감을 표하는 동료 의사들이 많았다.

지난 10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만난 이보라 인의협 공동대표(41)는 “정부 개혁안은 아주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면서 “그조차도 반대하기 위해 필수의료인력까지 남기지 않고 빼버린 파업에 대해서는 중단하라고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들이 한국 의료체계가 시민과 정부의 합의하에 짜여져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시장경제체제하에서 ‘영리행위를 할 권리’를 요구한다고 느꼈다”면서 “의사 집단의 민낯이 발가벗겨진 것 같아 안타깝고, 부끄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의료계 선후배로부터 욕먹는 것보다…”

전면에 나서서 비판하다 보니
동료 등에 칼 꽂지 말란 문자도

- 파업 기간 동안 비판 성명을 내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진료까지 보느라 바쁘게 지내셨을 것 같다.

“제 진료과목이 호흡기내과인데, 코로나19 때문에 병원 본관 밖에 설치된 발열 진료소까지 함께 맡고 있어 무척 바빴다. 의사 파업이 시작된 후에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같은 곳에 입원을 하지 못해 우리 병원까지 찾아온 분들이 있어서 환자가 조금 더 늘어났다.”

- 인의협은 지난 8월14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주도한 1차 총파업부터 8월 말 전공의 무기한 파업까지 줄곧 ‘명분 없는 파업을 중단하라’고 비판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7월 의대 정원 확대·공공의대 설립 방안을 발표했을 때 가장 먼저 비판했던 곳 중 하나가 인의협 아니었나.

“인의협이 정부가 내놓은 의사 수 증원, 공공의대 설립안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던 이유는 너무나 미미한 수준의 개혁안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협이나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의사단체가 반대한 이유는 인의협과 정반대로 그 미미한 수준의 개혁조차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필수의료인력까지 파업하겠다고 한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의사 파업을 의료단체인 인의협이 전면에 나서 비판하는 방식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혹시나 우리가 (미흡한) 정책을 옹호하는 친정부 입장인 것처럼 해석될까 우려도 됐다. 여러 차례 내부 토론을 거친 끝에 최종적으로는 명분 없는 파업 중단 요구로 의견이 모아졌다.”

- 2000년 의약분업 파업 이후 가장 많은 의사들이 동참한 파업인데, 선후배 의사들로부터 원성 섞인 말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제가 ‘파업 명분이 없다’는 내용으로 처음 인터뷰를 하자마자, 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와 댓글을 통해 ‘이완용이다’ ‘그렇게 우리 욕해놓고 나중에 투쟁의 열매는 너도 같이 누릴 것 아니냐’ 같은 메시지를 보내는 이들이 있었다. 과거에 저와 학교를 같이 다닌 선배 중 한 명도 ‘너 인의협 활동하는 건 다 좋은데 동료 등에는 칼 꽂지 말아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제가 욕먹는 것은 크게 마음이 아프거나 괴롭지 않았다. 이번 파업을 통해 의사집단이 가진 ‘본심’이 더 노골적으로, 당당히 드러났다는 점이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건보제도 자체에 의사들의 불신 커”

양심적 진료와 적정한 수가
이게 안 되니까 서로를 ‘불신’
일단 공공병원 많이 늘리고
포괄수가제 전환 등 논의해야

- ‘본심’이라 표현한 것은 공공의료에 대한 의사들의 반감을 말하는 것인가. 이번 파업에서 의사단체는 4대 의료정책 중에서도 공공의료 확충 방안이라고 할 수 있는 의대 정원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을 가장 강하게 반대했다. “의사는 공공재”라는 보건복지부 간부의 발언에 대해서도 무척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 ‘정부의 의료제도 개입 자체를 거부한 것’이 바로 이번 파업의 본질이라고 본다. 의사들은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불신이 깊다. 한국은 대부분이 민간병원인데 건강보험의 통제 때문에 마음대로 돈을 벌지 못한다고 여기는 의사들의 불만이 무척 크다. 건강보험제도로 인해 의료행위마다 가격(수가)이 정해져 있으니 한 번 해야 할 의료행위를 여러 번 하거나, 비급여진료를 늘리는 방식으로 이윤을 남겨왔다. 의료기관은 비영리기관이라 영리를 취하면 안 되는데, 사립병원들은 이런 식으로 남긴 이윤을 장기발전기금으로 회계처리해서 수익이 안 남는 것처럼 처리해 왔다. 의사들은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공공의대를 통해 ‘다른 의사’가 배출되면 이렇게라도 유지해온 ‘돈 벌 권리’가 침해받을 수 있다고 위협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 왜 정부가 통제하는 의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클까.

“지금의 의료제도는 시민과 정부의 합의하에 짜여진 것이다. 국민들이 낸 수십조원의 건보료를 의사들이 청구해서 가져가도록 한 공적인 의료체계이다. 당연히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국민을 대신해 의사들이 진료비를 부당하게 청구하지 않는지 감시할 의무가 있다. 의료행위가 너무 많거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청구된 진료비를 삭감한다. 진심으로 열심히 진료했는데 진료비 청구분이 삭감돼 억울한 의사들도 있겠지만, 한 번 해도 될 의료행위를 여러 번 해서 영리를 추구하는 의사들도 너무 많으니까. 자유롭게 진료하고 자유롭게 돈 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은 건보제도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가장 좋은 것은 의사들이 양심껏 진료하고, 건보공단은 그에 대해 적정한 수가를 주는 것인데 이게 안 되니까 양쪽이 서로를 완전하게 믿을 수 없게 된 거다.”

- 상대적으로 의사 경력이 길지 않은 전공의와 아직 의사가 아닌 의대생들이 오히려 건보제도에 대해 더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일단 의대에 입학하면 정부가 의사들이 자유롭게 진료할 권리를 규제하고 침해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게 된다. 정부가 의사의 진료행위에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고, 의사들은 정부로부터 굉장히 탄압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예과 때는 본과 선배들이, 본과 때는 인턴·레지던트들이 OB 모임(동문 모임)에 와서 들려주는 식이다. 수업시간에도 교수가 수술 방법을 설명하다가 ‘중요한 치료법이긴 한데 해봤자 얼마 안 나오니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니 의대생들은 의사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으며, 저수가 심지어는 원가 이하의 수가를 받게 된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게 된다. 의대를 졸업하고 전공의가 되면 과한 노동에 시달려 생각할 시간이 없다. 자신의 과한 노동으로부터 이윤을 뽑아내는 사람이 선배인 원장님이나 병원 측일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무조건 ‘적’은 정부이며 심평원, 복지부 때문에 내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경영자와 전공의 본인이 대립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자 의식도 약하다.”

- 수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의사들은 너무 낮은 수가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말하는데, 지금처럼 의료행위 자체가 너무 많은 상황에서 수가만 올리면 건보에서 지급하는 전체 의료비용이 너무 커져버린다. 진찰료·검사료 등 진료행위마다 가격을 매기고 이를 합산해 진료비를 산정하는 ‘행위별 수가제’하에서, 의사들이 의료행위는 지금처럼 많이 하길 바라면서 수가만 올려주길 요구하면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지금의 ‘행위별 수가제’를 진료행위의 종류나 횟수에 상관없이 환자가 어떤 질병으로 치료받았는지를 기준으로 일정액의 진료비를 지급하는 ‘포괄수가제’로 변경하는 방안까지 포함해 진료비 지불제도 자체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한다.”

비슷한 가정환경 모여 폐쇄적 문화 강화

- 의사 파업 보면서 의사들이 사회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법을 모른다고 느꼈다.

“선배의 권위와 지식이 중요한 직종이다보니 의료계는 집단의식이 강하고, 폐쇄적인 문화가 있다. 비슷비슷한 출신 배경의 사람들이 모인 탓도 있다. 사실 아주 가난한 학생들은 현실적으로 의대나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기 어렵다. 이과 1등에서 3000등까지가 서울부터 제주 의대를 다 채우는 현실에서 가정 환경이나 보고 배운 것이 비슷한 학생들이 의대에 모일 수밖에 없다. 제가 의대생이었던 20년 전에도 그랬다. 전 지방에 있는 의대를 나왔는데, 그때도 서울 압구정의 한 아파트에서 매년 10~20명씩 우리 학교에 진학해서 ‘어떻게 특정 아파트에서 이렇게 많이 올 수 있을까’ 신기했다. 외환위기 이후 의사 같은 안정적인 전문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면서 요즘엔 더 심해진 것 같다. 사실 의대 내에도 예방의학이나 의료관리학, 의료윤리같이 의사와 사회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수업들이 있긴 한데, 시간이 많이 배정돼 있지 않고 배당되는 학점도 낮다. 대부분의 수업시간은 질병과 치료법 등 의학 지식을 익히는 것에 할애돼 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의학 지식만 외우다가 금요일 오후에 2시간짜리 의료윤리 수업은 가벼운 마음으로 듣게 된다.”

- 이번 파업으로 인해 정부가 추진하던 공공의료 확충은 사실상 중단됐다는 시각이 많다. 앞으로 공공의료 확충은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일단은 공공병원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사실 병상만 놓고 보면 한국은 이미 초과 상태다. 민간에서 병상을 너무 많이 만들어 놓아서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너무 많다. 공공병원을 늘리는 동시에 기존 민간 병상을 공공병원이 흡수하는 방법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나 간호사도 더 늘려야 한다. 의사 증원은 해야 하지만, 당장 공공의대를 통해 의사를 배출할 수 없다면 공공병원이나 국립대병원에서 일하는 이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인력을 늘리고 정책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 코로나19 시국에서 한시가 급한 상황인 만큼 단기간에 시행할 수 있는 지원책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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