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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혈세 7000억 줄일수 있을듯…이탈리아 945명→600명으로 의원수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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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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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가 ‘고비용 저효율’ 의회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현재 945명인 국회의원 수를 600명으로 36% 줄인다. 새 체제는 2023년부터 적용되며 5년 의회 회기마다 최소 5억 유로(약 7000억 원)의 혈세를 아낄 것으로 기대된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20, 21일(현지시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의원 수 감축 개헌안은 찬성 69.6%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상원은 현 315명에서 200명, 하원은 630명에서 400명으로 각각 줄어든다.

의원 감축은 중도 좌파 민주당과 현 연정을 구성한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이 2018년 총선 때 내놓은 공약이다. 이후 상·하원 의결, 헌법재판소 검토를 거쳐 올해 3월 국민투표가 결정됐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투표가 미뤄지다 이번에 실시됐다. 오성운동 소속인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은 “역사적 성취”라고 환호했다.

약 6000만 인구를 지닌 이탈리아의 10만 명당 의원 수는 1.5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97명)보다 훨씬 많았다. 이웃 독일(0.80명) 스페인(1.32명) 프랑스(1.48명)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이탈리아는 2차 세계대전 후 베니토 무솔리니 같은 파시스트 독재자의 출현을 막기 위해 의회 기능을 강화했다. 하지만 원래 의도와 달리 의회 비대화, 정치 혼란, 세금 낭비 등만 부추겼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1983년 이후 7차례나 의원 수 감축을 시도했지만 각 정당, 지역간 이해관계가 워낙 달라 번번이 좌절됐다. 2016년 마테오 렌치 당시 총리가 상원100명 감축을 골자로 한 국민투표를 시행했지만 부결됐고 렌치 또한 사퇴했다.

이에 선거 때마다 수십 개 정당이 난립했고 이들이 의석을 쪼개서 가졌다. 특정 정당의 단독 집권이 어려워 연정이 구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는데, 소수 정당 간 견해차가 커 연정이 종종 붕괴됐고 혼란이 컸다. 현 민주당-오성운동 연정은 지난해 8월 극우 동맹당과 오성운동이 고속철 건설 등을 두고 대립하는 바람에 탄생했다. 동맹당-오성운동 연정 역시 불과 14개월만 유지됐다.

이런 흐름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분석이 나온다. 올해 초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가 무섭게 번지면서 국내총생산(GDP)의 약 13%를 차지하는 관광업이 붕괴 위기를 겪으면서 “이번에는 의원 수를 꼭 줄이자”는 여론이 확산됐다. 21일 기준 이탈리아의 누적 확진자는 약 30만 명, 사망자는 3만5000여 명이다. 주세페 콘테 총리는 방역 실패라는 거센 비난 여론에 직면해 올해 6월 현직 총리 최초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이탈리아의 의원 수 감축은 유럽 주변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상·하원 양원제로 된 유럽 주요국 의회 특성상 규모가 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여론이 높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상원 정원을 현행 348명에서 261명으로, 하원은 현행 577명에서 433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 역시 현재 709석이나 되는 연방 하원 정원을 장기적으로 감축하는 법률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영국도 2017년 상원의원 수를 25% 감축하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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