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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카마겟돈’ 온다, 돈보다 일자리 택한 현대차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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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만에 기본급 동결 잠정합의

시니어 촉탁제 등 고용안정 얻어

“노조 이기주의보다 동반 생존”

한국GM·르노삼성 임협은 교착

고용 불안에 파업 번질 가능성

중앙일보

현대자동차 노사가 21일 기본급 동결을 골자로 하는 올해 임금협상에 잠정 합의했다. 지난달 13일 현대차 노사 교섭 대표가 울산공장 본관에서 올해 임금협상 상견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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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사가 지난 21일 올해 임금교섭 잠정합의안을 마련한 데 이어, 오는 25일 노조 찬반투표를 갖는다. 기본급을 동결하는 대신 고용안정을 위해 노사가 협력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또 부품사와 상생을 위한 ‘사회적 선언’도 포함됐다. 현장에서 큰 이견이 없는 만큼 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본급 동결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1년 만이다. 또 노사가 얼굴을 맞댄 지 40일 만에 합의에 이르렀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이상수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코로나19 상황을 맞아 임금을 갖고 옥신각신하는 건 우리만의 돈 잔치로 비칠 수 있다는 게 노사의 공통된 입장이었다”며 “대기업 노조로서 자동차산업 생태계를 위해 부품사의 고용안정 패러다임을 만들자는 게 올해 기조였다”고 말했다. 이상수 위원장은 2019년 말 ‘중도 실리’와 ‘사회적 조합주의’를 내세워 당선됐다. 올해 노조가 임협에서 내세운 키워드도 ‘미래·변화·생존·공존’이었다.

지난해에 이은 무분규 합의로 사용자 측도 서로 ‘윈윈’했다는 평가다. 물론 노조가 ‘다 내준’ 합의는 아니다. 성과급 150% 등을 얻어냈다. 또 올해부터 시작한 시니어 촉탁제도 확대됐다. 올해 정년퇴직을 맞은 1960년생 1700여 명은 내년에도 같은 작업장에서 일할 수 있다. 연봉은 기존 약 9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줄어들지만 만 61세까지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용안정이라는 성과를 취한 셈이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위주로 급변하는 ‘카마겟돈(자동차와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의 합성어)’ 상황에서 노조도 위기 극복에 동참했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예전엔 임금이 큰 이슈였지만, 이젠 고용안정을 우선한 것”이라며 “다가올 전기차 시대를 맞아 노동 유연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대세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노사가 마련한 ‘사회적 선언’이다. 특히 자동차산업 위기극복을 위한 부품 협력사 상생 지원이 눈에 띈다. 현대차 노사는 울산시 등 지자체가 마련한 부품사 상생기금 800억원의 이자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전 노사 임협 테이블에선 볼 수 없었던 내용이다.

앞서 현대차 노조는 코로나19로 어려워진 부품사가 현대차에 주 52시간 이상 공장을 가동해 달라고 요청하자 이에 동의하기도 했다.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의 ‘주 52시간 고수’ 방침과 달리 유연하게 대처한 것이다.

전통적인 강성 노조였던 현대차 노조는 왜 변했을까. 전문가들은 1990년 이후 노동운동 주류였던 ‘조합원 실리주의’가 코로나19로 인해 악화한 경영 환경에서 한계에 봉착했고, 내연기관차 위기로 ‘카마겟돈’이 눈앞에 닥치자 사회적 연대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풀이했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노동운동은 1980년대 이후 겉으론 좌파·강성·급진적으로 보였지만, 심층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보수적이고 임금·복지 등 경제적 이익만을 내세웠다”고 했다. 이어 “그 결과 한국 노동운동 주류는 대기업 정규직 남성을 대변하는 ‘귀족화’가 됐다”며 “1900만 노동자 중 노조로부터 보호받는 근로자는 1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그래서 현대차 노조가 먼저 기본급 동결을 제안하고, 하도급 업체와 상생을 내세운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와 달리 기아차·한국GM·르노삼성의 임협은 교착 상태다. 특히 한국GM과 르노삼성은 험난한 길을 예고하고 있다. 두 기업의 노조는 전기차 전환 시대를 앞두고 엄습한 고용 불안을 파업으로 이어갈 분위기다. 노조는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임금을 동결했다며 양보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모회사인 GM·르노도 실적이 악화해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파업이 진행된다면 노조의 입지는 더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명분과 실리 둘 다 얻지 못할 수 있다. 한국GM·르노삼성의 수출 부진으로 올해 자동차 생산 대수는 감소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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