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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시총 23조 날아갔지만…테슬라 배터리데이가 두려웠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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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중앙일보

관심이 집중됐던 테슬라의 '2020 배터리 데이' 행사에서 테슬라가 기존 배터리보다 56% 원가를 줄인 배터리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기존 경쟁자들과의 가격 경쟁에서 한 발 앞서나간다는 포석이다. 기대가 높았던 획기적인 배터리 기술을 선보이지는 않아 주가는 크게 떨어졌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지난 3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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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배터리 데이’(2020 Battery Day)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서 진행됐다. 행사 직전 테슬라 주가는 5.6% 하락했고, 이후 시간외 거래에서도 6.84%나 더 떨어졌다. 시가총액 기준으론 200억 달러(약 23조원)가 증발한 셈이다.

투자자들은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다’며 실망했다. 충분히 오른 주가 때문에 이익 실현의 시점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테슬라의 발표가 미래 차 경쟁에서 ‘두 걸음’ 앞서가는 비전을 내놨다고 본다. 전고체 배터리 같은 획기적인 기술보다 ‘가격 경쟁력’의 노하우를 확보한 것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은 없었다



시장과 투자자가 실망한 가장 큰 이유는 획기적인 기술을 내놓지 않아서다. 테슬라의 주가가 급상승하고, 배터리 데이 행사가 한 차례 연기되면서 투자자들은 ‘테슬라가 전고체 배터리를 선보일 것이다’, ‘나노와이어 기술을 공개한다’는 등의 전망을 하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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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가 22일(현지시간) 공개한 4680 배터리(직경 46㎜, 높이 80㎜의 원통형 배터리). 탭리스 방식으로 효율을 높여 기존 배터리보다 5배의 에너지 밀도, 16%의 주행거리 향상 효과를 볼 수 있다. 배터리 데이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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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테슬라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통해 이런 억측들을 부인해 왔다. 배터리 데이를 앞두고는 이날 발표한 4680 배터리(직경 46㎜, 높이 80㎜의 원통형 배터리)의 모습이 유출됐고, 전문가 사이에선 새로운 기술보단 배터리 공정의 혁신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많았다.

실제로 이날 공개된 배터리 기술은 이미 LG화학·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업체와 일본 파나소닉·중국 CATL 등이 개발 중인 것이다. 희귀 금속인 코발트 함량을 줄이고 니켈 함량을 높여 가격을 낮추면서, 에너지 밀도를 높인 ‘하이 니켈’ 배터리, 내구 수명을 늘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등이 비슷한 기술이다.

전원공급 장치와 배터리 사이의 탭(tab)을 제거한 ‘탭리스 배터리’ 기술 역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반 건전지의 양극 꼭지와 유사한 탭을 없애면 면 전체로 전자를 이동시킬 수 있어 저항이 작고 열을 분산시킬 수 있다. 공정도 간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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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 공장 주차장에서 열린 '2020 배터리 데이'에서 발언하고 있다. 배터리 데이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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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시장 지배력 커진다



테슬라는 ‘셀투팩(CTP)’이라 불리는 기술도 적용한다. 현재의 전기차용 배터리는 배터리셀에 각종 회로나 배선을 연결해야 하지만, CTP가 적용되면 공간을 늘리고 배선과 회로를 없앨 수 있다. 배터리 자체가 자동차 구조에 통합되는 셈이다.

이날 발표가 의미를 갖는 건 테슬라 외에 어떤 완성차 업체도 이 기술의 적용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지만 이를 적용할 능력을 갖춘 회사는 아직 없다. 테슬라가 명확한 시간 계획을 내놓음으로써 배터리 수급을 둘러싼 경쟁에서 한발 앞서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기술을 적용할 제품을 만드는 회사란 점에서 배터리 업체들에 대한 지배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배터리업체 관계자는 “오늘 발표로 주가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신기한 기술의 부재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된 것일 뿐, 장기적으론 전망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배터리 업체가 막대한 투자를 통해 만든 양산 단계의 신기술을 먼저 채용하고, 패키징(제품화) 혁신을 통해 가격 경쟁력까지 더해준다면 최고의 공급처 자리를 확고히 하는 게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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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가 공개한 셀투팩(CTP) 배터리 기술. 배터리와 차체가 직접 연결돼 배선과 회로를 없앨 수 있고 공간이 넓어져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다. 배터리 데이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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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 업체와 격차 벌린다



머스크는 이날 새로운 배터리와 공정 혁신을 통해 원가를 56% 절감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당초 시장에서 기대했던 ㎏당 500Wh의 초고효율 배터리는 아니었지만, 제조 공정 개선을 통해 ‘반값 배터리’를 선언한 것이다.

테슬라는 새로운 배터리 규격으로 14%, 제조 공정 개선으로 18%, 전극 개선을 통해 17%의 원가를 줄이고, 배터리 통합기술인 CTP로 7%를 더 줄이겠다고 밝혔다. 원가 절감은 전기차 보급의 핵심 과제다. 단 10%의 원가 절감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절반 이상’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뒤늦게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만들어 테슬라에 도전하는 기존 완성차 업체엔 절망스러운 수치다. 테슬라는 “3년 이내에 2만5000 달러(약 2900만원)짜리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했다. 정부 보조금 없이도 내연 기관차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현재 3년 이내에 이 정도 가격의 전기차를 선보이겠다는 완성차 업체는 테슬라 외에 없다. 물론 모든 계획이 머스크가 밝힌 스케줄대로 현실화된다는 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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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가 내년 출시하는 사이버 트럭. 테슬라는 대형드럭인 세미, 픽업트럭인 사이버 트럭 등엔 가격을 낮추고 에너지 밀도를 높인 '하이 니켈' 배터리를 장착할 예정이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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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 기반 첫차를 내놓은 폴크스바겐을 비롯해 GM·현대차그룹 등은 내년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한 신차를 내놓는다. 폴크스바겐의 ID.3(약 5800만원)를 비롯해 이 신차들의 가격은 모두 5000만원대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는 테슬라



머스크는 이날 2만5000달러 전기차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건 회사를 시작할 때부터 꿈꿔온 일”이라고 말했다. 이미 5000만원대 모델3로 전기차 시장을 성장시켰지만, 전기차가 이동수단의 주류가 되기 위해선 내연기관차보다 싼 가격이 필수적이었다는 의미다.

전고체 배터리처럼 깜짝 놀랄 기술은 아니지만 이날 발표만으로도 충분한 혁신이란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배터리 전문가인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최초의 2차전지인 납축전지에서 리튬이온까지 발전하는 데 90여년이 걸렸던 점을 생각하면 세상을 바꿀 배터리 기술을 테슬라에 기대한 건 과한 측면이 있다”며 “기존 전지의 효율과 가격 경쟁력을 향상한 것만으로도 혁신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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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급성장의 주역인 모델3. 5000만원대 가격으로 판매량을 크게 늘렸다. 일론 머스크의 공언대로 2만5000 달러 짜리 전기차가 등장하면 경쟁 완성차 업체들을 가격 경쟁력으로 압도할 전망이다. 사진 테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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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교수는 “테슬라가 장기적으로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게 되면 한국 배터리 업체들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한국 배터리 업체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하는 등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테슬라의 행보가 ‘플랫폼 기업’으로의 진화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배터리 가격이 아무리 싸져도 상품화가 중요한데, 제조공정을 통해 56%까지 가격을 낮춘다는 건 엄청난 발전”이라며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기술적 혁신이라기보다는 원가 경쟁력의 혁신”이라고 말했다.

고 센터장은 “1년 이내에 레벨4에 근접하는 자율주행 기술을 내놓고, 3년 이내에 2만5000 달러 전기차를 내놓는다는 구상이 현실화되면 로보택시 같은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테슬라가 지배력을 갖는단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스타링크(전 지구 저궤도 위성통신망)까지 더해지면 테슬라는 자동차와 모빌리티, 통신 분야를 아우르는 플랫폼 기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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