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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성적보다 중요한 것은 있다...브룩스로 본 달라진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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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KBO리그에 성적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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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외국인 투수 에런 브룩스가 22일 가족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미국으로 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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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외국인 에이스 에런 브룩스(30·미국)는 22일 아내 휘트니, 세 살배기 아들 웨스틴, 13개월 된 딸 먼로가 미국에서 신호 위반 차량과 부딪혀 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KIA 구단은 바로 브룩스의 미국행을 도왔고, 브룩스는 이날 저녁 미국으로 떠났다. 경황이 없어서 선수단에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떠난 브룩스는 23일 오전 7시에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아직도 지난 24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다. 모두 힘을 줘서 고맙다"는 글을 올렸다.

KIA 구단의 발 빠른 결정은 당연했지만 한편으론 의외였다. 22일 현재 6위 KIA는 포스트시즌 마지노선인 5위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매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가 뒤집어지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브룩스의 이탈은 KIA에게 큰 타격이다. 브룩스는 올 시즌 23경기에 등판해 11승 4패 평균자책 2.50의 빼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9월 네 번의 등판에서 모두 승리를 챙겼고 월간 평균자책점은 0.95다.

웨스틴의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브룩스가 빨리 돌아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한국에 돌아오면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투구 감각을 찾는 시간이 걸려 사실상 남은 정규리그에 등판하기는 어렵다. 이런데도 구단은 브룩스의 가족을 먼저 고려했다. KIA는 "미국으로 돌아가 가족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했고,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은 "야구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들이 실제로 있다"면서 브룩스 가족의 쾌유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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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런 브룩스 가족 쾌유를 기원하는 KIA 주장 양현종의 응원 메시지. [사진 양현종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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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동료들도 브룩스의 미국행을 지지했다. 주장 양현종(32)을 비롯해 선수들은 22일 키움 히어로즈와 경기에 브룩스 가족 이름을 새긴 모자를 쓰고 나왔다. 양현종은 23일에는 자신의 SNS에 "브룩스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주고 싶다"면서 브룩스 가족 이름의 이니셜과 브룩스의 등번호(36)에 해시태그(#WWMB36)를 붙여 응원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KBO리그 구단들은 성적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가족의 경조사로 인해 경기를 빠지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프로야구 선수를 남편으로 둔 아내들은 혼자 출산했다. 프로야구 선수 아들은 둔 부모들은 몸이 아픈 것을 알리지 않았다. 1980~90년대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 생활을 한 류중일 LG 트윈스 감독은 "내가 선수 생활을 할 때는 집에 무슨 일이 생겨도 경기에 빠질 수가 없었다"고 했다. 구단도 경조사 휴가에 엄격했다. 지난 2015년 7월 롯데 자이언츠 외야수 손아섭(32)이 위독한 아버지 곁을 지키기 위해 휴가를 신청했다가 구단에 의해 반려됐다. 손아섭은 한화 이글스와 청주 원정경기를 치르고 나서야 아버지를 찾았다. 다행히 손아섭의 아버지는 그가 오고 나서야 눈을 감았다.

팀을 위해 희생을 강조하는 일본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홈런왕 출신 오 사다하루(80)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은 1980년대 초반 부친상을 당하고도 장례식장에 가지 않고 훈련했다. 지난 2018년 세상을 떠난 호시노 센이치 전 일본 대표팀 감독은 부인상도 모친상도 알리지 않고 경기에 나섰는데, 오히려 박수를 받았다. 시애틀 매리너스 일본인 투수 기쿠치 유세이(29)는 지난해 3월 31일 부친상을 당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진출 첫 해에 야구에 전념하기 위해 일본에 가지 않았다.

반면 메이저리그는 성적보다 가족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2011년 경조 휴가 제도를 만들었고, 감독도 자녀 졸업식 참석을 위해 자리를 비우기도 한다. 투수 에디슨 볼케스(37·텍사스 레인저스)는 2015년 캔자스시티 로얄즈 선발투수로 월드시리즈를 치를 때, 부친상을 당했는데 도미니카공화국에 가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다.

한국 프로야구도 메이저리그처럼 가족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점점 바뀌고 있다. 지난해 KBO리그에 경조 휴가 제도가 도입됐다. 직계 가족 사망 또는 자녀 출생을 사유로 5일의 경조 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 많은 선수들이 구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지난달 부친상을 당한 삼성 내야수 김상수(30)는 구단의 배려로 경조 휴가 외에도 며칠 더 휴식을 취하고 돌아왔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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