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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상가 임차인 한시적으로 6개월 연체해도 쫓겨날 부담 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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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서울에서 문을 닫는 음식점과 PC방 등이 늘어나 상가 전체로는 2분기에만 2만개가 폐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임대료 감액을 요구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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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상가 임차인(자영업자)은 임대인에게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또 한시적으로 6개월간은 임대료가 밀려도 연체를 이유로 임차인을 내보낼 수 없도록 하는 법안에 여·야가 합의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 부동산시장 관계장관회의에서 “현재도 경제 사정의 변동이 있는 경우 임차인이 임대료 감액을 요구할 수 있으나, 여기에 코로나19 같은 재난상황도 포함되도록 명확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법에서 임대료 연체 기간(3개월)을 산정할 때 법 개정안 시행 뒤 6개월은 연체 기간에 포함하지 않는 방향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국회에선 이같은 내용을 담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야 모두 자영업자의 임대료 부담을 낮춰주자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어서다. 개정안은 23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고, 24일 국회 본회의에 오를 예정이다.

개정안의 골자는 임대료 증감청구권 요건을 기존 ‘경제 사정의 변동’에서 ‘제1급 감염병 등에 의한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수정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는 법률 규정상 제1급 감염병에 속한다. 다만, 임차인의 감액 요구에 임대인이 무조건 따르도록 하는 강제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감액 청구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 자영업자가 적극적으로 감액 요구를 할 수 있고 분쟁 조정에서도 입지가 강화된다.

그렇다면 임차인은 임대료를 얼마나 깎을 수 있을까.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대인이 임대료를 올릴 때는 5% 범위 안에서만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는 임차인이 임대료 감액을 청구할 때의 하한선을 못 박지는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차인이 임대료 감액청구권을 행사하면 임대인과 협의를 통해 임대료를 조정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대인이 임차인의 감액 요구를 수용해 임대료를 깎아줬다가 다시 임대료를 올릴 때는 ‘5% 상한 룰’을 적용하지 않는다.

정부는 영업난으로 임대료가 밀린 자영업자가 쫓겨날 우려를 낮추는 방안도 내놨다. 개정안 시행 후 6개월은 연체 기간에 포함하지 않도록 했다. 쉽게 설명하면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질 앞으로 6개월 동안은 임차인이 임대료가 밀렸다는 이유로 강제 퇴거당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현행법은 임차인이 3개월 치 임대료를 연체하면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2분기 서울 상가 2만곳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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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요 상권 공실률.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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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상가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한 데는 코로나19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피해가 커지고 있어서다. 지난 4~6월 영업난으로 서울에서 문을 닫는 상가 점포수는 2만1178개(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이른다. 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 시행으로 손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음식점을 비롯해 미용실과 대중목욕탕 같은 생활서비스 업종에서 폐업이 늘었다.

폐업으로 돌아서는 자영업자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손에 쥐는 수익(매출)은 없는데 매달 메워야 하는 임대료가 버겁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8월 31일부터 나흘간 전국 소상공인 34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50.6%)이 앞으로의 사업 전망을 묻는 말에 “폐업을 고려할 거 같다”고 답했다.



임대인 재산권 침해 논란도



그러나 자영업자의 임대료 경감 방안을 놓고 논란도 적지않다. ‘코로나19로 벼랑 끝으로 몰린 자영업자를 위해 꼭 필요한 방안이다’는 긍정론과 ‘상가 임차인만 보호하면 임대인의 재산권 침해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비판론이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는 재난 상황이다. 경제적 충격에 취약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무너지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이미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는 자영업자의 임대료를 일정 기간 유예하고 (이들의) 강제 퇴거를 막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산권 침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임대인도 상황이 어려워진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불황 직격탄을 맞으면서 강남, 광화문, 이태원 등 주요 상권의 공실률이 높아졌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코로나 19 이전 국내외 관광객이 붐볐던 이태원의 중대형상가 공실률은 약 30%(2분기 기준)에 달한다.

전북 전주시에서 3층짜리 상가를 운영하는 김모(71)씨는 “코로나19로 2ㆍ3층 학원이 모두 문 닫고 나간뒤 1층 음식점 한곳만 남았다”며 “이곳조차 임대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경기도 군포시의 아파트 상가를 투자한 주부 강모(44)씨는 “노후 준비를 위해 대출받아 점포 하나를 샀다”며 “임대인에게는 임대료 올릴 때는 5%로 제한하더니 경기 어렵다고 임대료를 깎아주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박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정부가 선별적으로 직접 지원을 하는 게 맞다”면서 “상가 임차인 보호를 법으로 강제하면 임대인의 재산권 침해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효석 법무법인 우일 변호사는 “앞으로 계약갱신청구권처럼 상가 임대료 감액청구권을 놓고 상가 임차인과 임대인 간 분쟁이 늘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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