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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백신 접종 한달 당겨놓고, 업체 선정은 두달 늦게 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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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백신 입찰 공고 낸 후 유찰 탓 거듭 재공고

8월 말 업체 낙찰, 9월 초에야 최종 계약

"빠듯한 일정 맞추려다 사고" 논란

초유의 독감 백신 중단 사태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유·무료를 떠나 독감 백신 전반으로 불신이 퍼지는 분위기다. 백신 조달을 담당한 신성약품이 올해 처음 정부 백신 사업에 참여한 배경을 두고도 각종 의혹이 난무한다. 이런 가운데 접종 시기를 전년보다 한 달가량 앞당겼는데도 공급을 담당할 유통업체 선정은 두 달 가까이 늦어진 점을 두고 정부 책임론도 나온다. 저가 입찰이 영향을 미쳐 업체 선정에 시간이 더 걸렸고 결국 업체의 유통 역량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채 사업을 진행하다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얘기다.

23일 조달청 ‘나라장터’(공공기관 물자 조달 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국가예방접종을 위한 인플루엔자 백신 입찰은 6월 24일 시작됐지만 8월 26일 신성약품으로 최종 낙찰되기까지 재공고를 거듭했다. 네 차례 유찰되면서 업체 선정에만 두 달 넘게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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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송파구 한 병원에서 간호사가 독감백신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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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청은 매년 6~7월경 그해 국가예방접종사업용 독감 백신 도매업체를 조달청 입찰을 통해 선정한다. 나라장터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과 어린이·임산부용 백신 구매 입찰은 7월 초 끝났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올해는 두 달 가까이 일정이 늦어진 셈이다. 2017~2018년과 비교해도 최소 한 달은 더 걸렸다.

업체를 고르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의약품을 취급하는 업종으로 등록한 도매업체는 어디든 자유롭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데 올해는 백신담합 사건으로 기존 업체가 검찰 수사를 받느라 제조사로부터 공급확약서를 받지 못해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국가예방접종사업의 경우 조달청이 공고를 내면 도매업체가 입찰에 참여하고 낙찰 시 이 회사가 제조사에 백신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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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백신 유통 과정 문제로 정부의 무료접종 사업이 일시 중단된 23일 서울 한 병원에 독감 백신 소진으로 접종을 잠시 중단한다는 안내문구가 보이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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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 관계자는 “입찰 과정에 참여했는데 공급확약서를 제출 못 해 유찰된 경우가 있다”며 “확약서를 제조사로부터 받아야 이를 바탕으로 낙찰이 되고 계약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나치게 낮은 단가를 고수해 유찰이 계속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공고하는 추정단가와 시장가격은 크게 차이 난다. 인플루엔자 백신 시장 가격은 1만원이 넘는다. 백신 공고에 제시된 추정단가는 1도스당 8790원이다. 그나마도 1차 입찰공고에서 제시된 1도스당 추정 단가는 300원 더 낮은 8490원이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여러 차례 유찰된 이유는 제약사에 주는 단가가 안 맞아서”라며 “유찰되면서 최종 가격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도 “유료 백신의 병원 납품가가 1만4000원 정도 되는데 질병청이 무료 백신 단가를 지나치게 낮게 책정해 건실하고 검증된 업체들이 입찰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조달청 관계자는 “무응찰시 예산을 고려해 입찰을 의뢰한 기관과 협의를 거쳐 진행한다”고 말했다.

낮은 단가로 계약할 경우 업체 입장에서 비용을 최대한 줄이려고 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저렴한 위탁업체를 찾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해 낙찰 전 업체들이 제출하는 서류만으로는 유통업체들이 어느 위탁업체를 쓰는지, 해당 업체의 능력은 어떤지 정부가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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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백신 유통 과정 문제로 정부가 무료접종 사업을 일시 중단한 23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증진의원 서울동부지부에서 한 내원객이 유료 독감 예방 접종을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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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선정은 예년보다 두 달쯤 늦어졌는데 접종 시기는 한달 가량 빨라졌다. 올해는 정부가 독감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가 동시 유행하는 ‘트윈데믹’을 우려해 접종 시기를 당초 10월 초·중순에서 한 달가량 앞당겼다. 접종 사업 시작(9월 8일)을 2주가량 앞두고 올해 처음 국가 백신 조달사업에 참여하게 된 신성약품이 빠듯한 일정을 맞추다 사고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신성약품은 8월 말 선정됐고 최종 계약을 사실상 사업 시작 나흘 전인 9월 4일에야 끝냈다. 신성약품 김진문 회장도 본지 인터뷰에서 “당장 9월 8일부터 백신 배송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약품 배송 업체를 선정할 시간이 짧다 보니 콜드 체인(저온유통)을 끝까지 못 챙겼다”고 말했다.

황수연·문희철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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