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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8억 가로채고 무죄였던 이웃은 2심서 왜 ‘유죄’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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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 속여 8억8500만원 가로챈 부부 / 1심은 무죄였지만 2심은 ‘유죄’ 판결 / 재판부는 ‘피해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봤다

세계일보

세계일보 자료사진


서울 성북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A씨 부부는 2016년 7월, 10여년간 알고 지내온 지적장애인 B씨의 로또복권 1등 당첨 사실을 알게 됐다.

함께 당첨금을 받으러 가자는 취지의 부탁에 B씨와 동행했던 부부는 같은 해 8월, 운영하던 식당 건물의 재개발로 이주할 상황에 놓이자 B씨의 처지를 악용하기로 마음먹었다.

B씨는 충남 예산군에 자기 소유로 토지를 사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주겠다는 A씨 부부 말에 총 당첨금의 절반 수준인 총 8억8500만원을 네 차례에 나눠 송금했다.

하지만 B씨 소유로 건물을 짓겠다던 A씨 부부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이들은 새로 지은 건물을 A씨 명의로 하거나, B씨에게 받은 돈 일부를 가족에게 송금하는 등 마치 자기 돈처럼 사용했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A씨 부부를 고소했다.

원심은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 부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비록 피해자가 13세 수준의 사회적 능력을 갖는 등의 상황에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은행 업무를 부탁할 능력이나 재물 소유에 관한 개념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인식능력이 단순한 유혹에 현혹될 만하거나, 판단능력의 결여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즉, 당첨금을 A씨 부부에게 넘길 당시 B씨가 심신장애 상태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거였다.

판결에 불복한 검찰은 곧바로 항소했다.

지난 18일 대전고등법원 제1형사부(이준명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A씨 부부에게 각각 징역 3년6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의 쟁점은 ‘피해자가 당첨금을 넘길 당시 양측간에 합의가 있었느냐’, ‘피해자가 거금을 다룰 만한 판단력이 있느냐’였다.

이와 관련해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통장과 카드를 잃어버릴까봐 자신에게 맡겨놓고 찾아가기를 반복했다고 주장하지만, 단순히 그러한 이유에서 거액의 복권 당첨금이 입금된 통장과 카드를 그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해자가 피고인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통장과 카드를 피고인에게 맡긴 거라면, 이는 피해자의 지적장애에서 기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아울러 “피해자는 복권 당첨금을 수령하기 전까지 일용노동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영위해왔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전까지 피해자가 수억원에 달하는 돈을 가졌다거나 자신의 명의로 된 부동산 등을 소유해왔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상에서 소소하게 담배를 구매하고 음식을 사 먹는 행위와 거액을 들여 자신의 부동산을 장만하는 행위는 전혀 다른 판단력을 요하는 경제활동”이라며 “피해자의 재산상 거래능력을 판별할 때 구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B씨가 ▲자신의 돈으로 모든 것을 진행했고 ▲피고인들이 자기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며 ▲부동산 관련 서류 명의자가 A씨라는 점을 몰랐다는 취지로 수사기관에서부터 일관되게 진술해온 점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범행을 부인한 피고인들에게서 피해복구를 위한 노력도 찾아볼 수 없고, 피해자에게 용서받지 못했다”면서도 “벌금형을 초과한 전과가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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