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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박정호의 문화난장] 미륵사지 석탑이 전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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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걸린 수리 보고서

현대과학이 만난 백제인

돌조각 2300개 정밀 복원

‘빨리 빨리’가 한국인일까

중앙일보

박정호 논설위원


“드디어 털었네요. 진짜 짐을 내려놓은 것 같습니다. 청춘을 다 바쳤는데, 이제 보내주려고 합니다.” 스마트폰에서 들려오는 김현용(44)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사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럴 만도 했다. 지난 20여 년을 함께한 애물(愛物)에 마지막 편지를 띄운 참이었다. 여기서 애물은 한국 석탑의 시원(始原)으로 꼽히는 백제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639년 조성)이다.

김씨에게 연락을 한 건 『익산 미륵사지 보수정비』라는 목침보다 더 두꺼운 책을 받고서다. 총 3권, 2500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방대한 자료집이다 보니 소설처럼 읽어내려가기가 어렵다. 그가 선수를 쳤다. “다들 무겁다고 하네요. 제가 혹시 짐을 드렸나요. 하기야 저도 쳐다보기도 싫습니다.”(웃음)

김씨의 속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원광대 건축과 재학 중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그도 몰랐을 것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20년 수리를 마치고 지난해 3월 말 일반 공개됐지만 그는 그간의 작업을 정리한 보고서를 준비하느라 1년여를 더 바쳐야 했다. 한마디로 시원섭섭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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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석탑의 맏형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 가장 오래되고 큰 석탑이다. 지난 6월 말부터 야간 경관 조명을 하고 있다. 왼쪽은 1993년에 재현한 동탑. [사진 서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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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은 한국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들여 보수한 문화재다. 1998년 안전진단을 시작으로 해체부터 조립까지 20년 넘게 걸렸다. 그만큼 난관이 많았다는 뜻이다. 길이·두께·모양이 각기 다른 석탑 부재(部材) 2300여 개를 하나하나 뜯어내고, 세척하고, 실측하고, 보강하고 등등, 어느 하나 허투루 넘어갈 수 없었다. 탑에 담긴 1300여 년 세월을 되살리는 건 도전에 또 도전이었다. 그간 현장에 투입된 12만 명(연인원) 가운데 그만이 유일하게 처음과 끝을 지켰으니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 엄살은 아닐 듯하다.

공을 들인 보고서는 알차다. 학술조사, 자문·점검회의, 해체 및 발굴 조사, 보존 처리, 보강 설계, 가공 및 조립 시공 등 석탑을 되살려낸 모든 과정을 깨알같이 담았다. 숱한 땀을 흘려온 각계 전문가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전통과 현대기술의 만남이 한눈에 들어온다. 미륵사지 석탑을 통해 본 한국 석조문화재 보존·수리 발전사쯤 된다.

눈에 띄는 건 돌조각(부재)마다 일일이 작성한 조사·보존카드다. 말하자면 주민등록증, 혹은 가족관계증명서를 만들어준 셈이다. 그 분량만 1000쪽 가깝다. 혹시라도 불의의 사고가 생길 경우(물론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석탑의 제 모습을 되찾는 1차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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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김현용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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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하층 기단부 지대석1(탑이 세워질 지면을 단단하게 다진 후에 놓는 돌)을 보자. ‘표면의 절반은 황갈색 오염물로 변색해 있고 뒷면은 쐐기형으로 일정 간격을 두고 가공했다’는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브러시·에어건(공기 조절 장치)으로 세척하고, 미세한 균열 부위에 특수 충전재를 넣고, 정과 에어툴(압축 공기를 이용하는 공구)로 마감 가공을 했다고 기록했다. 무게 246㎏, 길이 130·폭 25·높이 45㎝의 돌덩이 하나를 보존 처리하는 데 3년이 걸렸다.

미륵사지 석탑을 둘러싼 볼멘소리도 있었다. 탑 하나 수리하는 데 20년이 걸린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수 차례 감사도 받았다. 반면에 이번 보고서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빨리 빨리’가 결코 한국인의 본심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벽하게’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이른바 디테일의 힘이다. 1300년 전 석공들도 그런 마음으로 탑을 쌓아 올리지 않았을까.

백제 유적지를 순례한 소장 역사학자 황윤의 신간 『일상이 고고학-나 혼자 백제 여행』이 있다. 미륵사지 석탑 해체 이후 현장을 세 번 찾았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석탑의 조상 중 조상이다. 미륵사지 석탑 이후 돌로 탑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됐다. 그 옛날 백제인의 손길이 전해지는 듯 살아 있다. 당대 백제인들의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정도 높았는지가 절로 느껴진다.”

필자도 현장을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다. 옛 절터에 우뚝 솟아 있는 석탑은 위풍당당했다. 뭔가 성스러운 장소에 들어선 것 같았다. 원래 형태(9층 추정)에 대한 기록이 없어 수리를 시작할 당시의 6층탑으로 복원했지만 그렇다고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너진 과거도 넉넉하게 껴앉는 마음, 우리도 이제 그 정도 여유를 되찾을 때가 아닌가 싶다. 곧 떠오를 추석 둥근달처럼 말이다. 나라의 안녕을 빌며 한층 한층 석탑을 쌓은 백제인의 마음이 그랬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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