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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진보색 김명수호’ 3년, 사회적약자 편 섰지만…정치사건은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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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근로자 등 사회적 약자 손 들어주는 판결 이어져

은수미 이재명 등 정치적 사건서 법리소홀 등 내부비판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 선고를 하고 있다. (대법원 제공) 2020.9.3/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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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끄는 3년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 김선수 대법관을 비롯한 진보인사들이 대법원에 대거 영입되면서 이전보다 판결의 진보색이 짙어졌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그간 성범죄 사건에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봐야한다는 '성인지 감수성'을 중시한 판결을 하고, 산재유족 특별채용 사건 등 오래된 이슈에서 근로자의 편에 서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판결을 내렸다.

반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은수미 성남시장 사건에서 정치적인 판결을 했다는 비판과 상대적으로 법리 제시에 소홀하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여성, 근로자 등 사회적 약자 손 들어줘

대법원은 2018년 4월 제자를 성희롱한 혐의로 해임된 모 대학 교수가 낸 해임처분 취소소송에서 "법원은 성희롱 관련 소송을 심리할 때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판시한 이후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편에 서는 판결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미성년자가 성인의 거짓말과 꼬임에 넘어가 성관계를 하는데 동의한 경우에도 상대방을 위계에 의한 간음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미성년자간음죄상 '위계'는 성관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말하는 것으로,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었으나 이를 변경한 것이다. 이 판결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처벌범위는 훨씬 더 넓어졌다.

대법원은 또 올해 5월 친족에게 성범죄를 당한 미성년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와 달리 법정에서 피해사실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했더라도 이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그동안 법원에 오래 계류되어 있던 노동사건에서는 근로자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도 이어졌다.

지난달 전원합의체는 산재사망자 유족을 특별채용하게 한 노동조합 단체협약 규정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2014년 소송을 제기한 이후 1, 2심에서 패소했던 유족은 상고 3년 11개월만에 승기를 잡게 됐다.

대법원은 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달라며 근로자들이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 9년만에 최종승소한 노조 측은 판결 이후 "회사는 당연히 지급해야 할 통상임금을 법정 소송을 통해 꼼수를 부리고 비협조적으로 나오며 지난 10년을 끌어왔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은 회사의 판단이 무모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이재명, 은수미 사건에선 '정치적 판결' 비판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정치인과 관련한 판결에 대해선 유독 법원 내부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7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은수미 성남시장에게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한 이유는 은 시장이 정치자금을 수수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아니었다. 검사가 항소이유서를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검사는 항소장 내지 항소이유서에 1심 판결 중 유죄 부분에 대한 양형부당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았다"며 2심 재판부가 1심보다 벌금액을 증액할 수 없다고 선고이유를 밝혔다.

한 부장판사는 "항소이유서를 제대로 써야한다는 논리는 맞다. 문제는 그간 이어져 온 관행을 왜 굳이 정치인 사건에서 깨서 돌려보내냐는 것"이라며 "대법원이 논란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판결에 대한 비판은 더 거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7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지사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 지사가 TV토론회에서 '형님을 보건소장 통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죠'라는 상대방의 질문에 "그런 일 없다"라고 부인하면서 일부사실을 숨긴 것은 적극적으로 허위공표를 한 것이 아니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에 대해 한 검찰 출신의 변호사는 "궤변"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 내용대로라면 TV토론회에서 정치인이 어떤 말을 해도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다. 국민들이 가장 쉽게 보편적으로 접할 수 있는 선거운동 방법 중 하나인 TV토론회를 대법원이 무효화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법리 부실하다' 하급심서 볼 멘 소리도

이 지사 사건에 대해서는 결론 뿐 아니라 내용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전원합의체 판결로 인해 오히려 후보자 토론회에서 후보자 발언을 규제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졌고,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는 부분이 법 적용의 기준으로 삼기에는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비판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판결에서도 이어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4일 소송 7년 만에 박근혜정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는 위법하다고 결론냈다.

사회적으로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만큼 대법원의 판결내용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소송 내내 문제가 됐던 주요 쟁점에 대한 판단을 모두 비켜가면서 '도피판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전교조 소송의 핵심 쟁점은 해직자나 교원이 아닌 사람이 교원노조에 가입해 노조원으로서의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 여부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부분에 대한 판단 없이 법외노조통보의 근거가 되는 시행령이 무효이기 때문에 통보 자체가 무효라며 절차적인 부분만을 문제 삼아 원심을 파기했다.

이 판결에 대해 한 부장판사는 "위임규정 없는 시행령은 하루이틀된 문제가 아니다"라며 "개별 케이스에서 구해주고 싶은 사람을 구해주기 위해 여러가지 존재하고 있었던 논리 중의 하나를 끌어와 과장되게 사용한다면 사법신뢰는 완전히 망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선고된 법죄집단 적용 판결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해당 판결이 형법 제114조에 '범죄집단'이 추가된 이후 관련 법리를 최초로 설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불법적으로 중고차를 판매했다가 범죄단체조직과 범죄단체활동,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모씨에게 징역 1년4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전씨 등 일당 20여명은 대표인 전씨의 주도 하에 허위매물을 보고 전화를 한 고객이 사무실로 오게끔 유인하는 텔레마케터(TM), 사무실로 찾아 온 고객에게 허위매물로 계약을 체결해놓고 차량에 문제가 있다며 다른 차량을 비싸게 파는 '딜러'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

1심은 대표가 일방적인 지시나 지침을 내렸다기보다 경찰단속 정보를 공유하며 몸을 사리자는 수준이고 구성원들이 불법적인 요소가 동원된다는 점을 인식했지만, 범죄를 목적으로 한 단체라는 인식은 부족했다며 사기 등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범죄단체조직 및 활동죄는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2심에서 예비적 공소사실로 범죄집단의 개념을 추가 적용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들이 외부사무실을 중심으로 일을 했더라도 합동범이나 공동정범을 넘어 조직을 구성하는 일정한 체계 내지 구조를 갖추지 못했기에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라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들이 정해진 역할분담에 따라 행동하며 사기범행을 반복적으로 실행한 범죄집단에 해당한다면서 원심을 파기했다.

다만 판결문에서는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를 쭉 나열하고, 그러니 범죄집단에 해당한다는 내용만이 있을뿐이다. 범죄 사실관계, 원심의 판단내용을 제외한 대법원의 법리 설시 내용은 찾기 힘들다. 범죄집단으로 인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도 제시되지 않았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대법원은 사건에 대해 구체적인 적용기준과 법리를 제시해 하급심에서 통일된 판결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그러나 최근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에서 바로 적용할 수 없고 한번 더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면 대법원에 가서 또 파기될 우려가 있는데 이는 결국 사회적 낭비"라고 말했다.

다른 판사는 "판결을 하면서 구체적 타당성과 법정안정성 등 여러가지를 두루 고려해야 하지만, 현재 대법원은 법적안정성 부분에서는 다소 소홀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s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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