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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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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만 몰랐다는 '첩보 후 10시간'…첫 입장도 43시간 뒤에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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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북한이 공무원 이모(47)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훼손한 사건에 대해 24일 “모든 책임을 지고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히는 한편 책임자를 엄중 처벌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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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제75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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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은 이날 낮 12시에 열린 NSC 상임위원회 직후 브리핑에서 “북한군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저항 의사도 없는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북한은)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사과하고, 이러한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분명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서해 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인 이씨는 지난 21일 서해 상에 어업 지도를 나갔다 실종됐다. 북한군은 실종 하루 뒤인 22일 오후 3시 30분 등산곶 일대 해상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부유물에 탑승한 채 표류하던 이씨를 발견했다. 그러곤 6시간 동안 이씨를 해상에 그대로 둔 채 밤 9시 40분 사살했고, 10시쯤 해상에 기름을 뿌려 시신을 소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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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대응 일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씨 관련 첫 소식이 보고된 시점은 22일 오후 6시 36분이라고 전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그 시점에) 북측이 실종자(이씨)를 해상에서 발견했다는 첩보를 대통령께 첫 서면 보고했다”고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첩보엔 이씨의 사살 여부는 담겨 있지 않았다고 한다.

4시간 뒤인 오후 10시 30분, 청와대에 “북한이 월북 의사를 밝힌 실종자를 사살한 뒤 시신을 불에 태웠다”는 첩보가 보고됐다고 한다. 이에 2시간 30분 뒤인 23일 새벽 1시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노영민 비서실장이 주재한 관계 장관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렸다. 첩보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회의에는 국방ㆍ통일부 장관과 국정원장이 참석했다. 실장 2명이 긴급 장관 회의를 소집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회의에서 "이씨가 살해됐다는 첩보가 신빙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회의는 2시 30분에 마무리됐다.

'심야 회의'를 소집한 두 실장은 이튿날(23일) 오전 8시 30분, 이같은 내용을 문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한다. 즉 문 대통령이 이씨 사살 여부를 처음 인지한 시점이 이때라는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때(23일 오전 8시30분) 한밤에 회의가 있었다는 내용도 함께 보고됐다”고 말했다.



청와대 보고 10시간 뒤 보고 받은 文



청와대의 설명대로라면 이씨 사살 첩보가 청와대에 보고(22일 22시 30분)되고, 관련 긴급 심야 회의(23일 01시)가 열리고, 회의에서 사살이라는 결론(23일 02시 30분)까지 내렸지만, 정작 문 대통령은 첫 보고 이후 10시간 동안 이씨의 사살도, 심야회의가 열렸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10시 30분에 보고된 첩보는 말 그대로 첩보 단계였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보고할 정보 수준이 되지 못했다”며 “첩보 입수와 동시에 밤새 확인을 거쳐 아침에 즉각 보고가 이뤄진 것은 신속한 의사 결정 과정”이라고 말했다.

23일 오전 구두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북에도 확인하라”며 “만약 첩보가 사실로 밝혀지면 국민이 분노할 일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려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설명했다.

다만 공교로운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청와대 ‘심야 회의’가 진행되던 시간(23일 01시∼02시 30분)과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전세계로 생중계되는 시간(23일 1시 26분~42분)이 겹친다는 점이다. 특히 이날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종식돼야 한다”며 “그 시작은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말했다.

야당이 의심하는 지점이다.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사살되었다는 것이 확인되는 시점에 어떻게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운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문 대통령 유엔 연설 영상은)코로나 탓에 사건 발생 전인 15일에 제작해 18일에 이미 유엔으로 발송된 녹화 연설”이라며 “첩보 만으로 연설을 취소하거나 수정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미 녹화된 영상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답변은 비판을 모면하려는 옹졸한 핑계"라며 "국민이 북의 총격에 피살되더라고 김정은과의 종전선언이 더 중요한 것이냐"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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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원인철 합동참모의장의 보직신고를 받은 후 삼정검(三精劍)에 수치(綬幟)를 달아주고 있다. 수치는 끈으로 된 깃발로 장성의 보직과 이름, 임명 날짜, 수여 당시 대통령 이름이 수놓아져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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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가 사실상 사살된 것으로 보인다는 공식 보고를 받고도 문 대통령은 23일 원인철 신임 합참의장을 포함한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에 참석해서 이씨 사살 관련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평화의 시대는 일직선으로 곧장 나 있는 길이 아니다. 진전이 있다가 때로는 후퇴도 있고, 때로는 멈추기도 하고, 때로는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23일 오후 4시35분 유엔사 군사정전위 채널을 통해 북한에 사실관계 확인 요청 통지문을 보냈다. 북한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씨의 피살 사실은 결국 23일 밤 언론을 통해 전파됐다.

청와대는 언론 보도 다음날인 24일 오전 8시 관계장관 회의를 소집하고 국방부로부터 최종 보고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오전 9시 노영민 비서실장과 서훈 안보실장은 문 대통령에게 관련 사안을 재차 대면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NSC 상임위 소집을 지시하며 “있는 그대로 발표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날 오전 10시 40분 국방부에서 공식 브리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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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인 서주석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2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연평도 실종 공무원 피격 사망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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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실장은 이날 낮 12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주재했고, 회의 결과 등을 서주석 NSC 사무처장(국가안보실 1차장)은 오후 3시 브리핑을 통해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경기 김포에서 개최된 디지털뉴딜 문화콘텐츠산업 전략 보고회에 참석한 후 오후 4시쯤 청와대에 복귀, 서 실장과 노 실장으로부터 NSC 상임위 회의 결과와 정부 대책을 다시 대면보고 받았다. 이에 문 대통령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북한 당국은 책임있는 답변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군은 경계태세를 더욱 강화하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했다고 강민석 대변인은 전했다. 문 대통령의 공식 메시지는 청와대가 이씨 사망 첩보를 입수한 지 43시간 만이었다.

한편 이날 청와대 관계자는 유엔 연설의 종전 선언 제안에 대해 "'사고'가 있었지만 남북관계는 지속되고 견지돼야 하는 관계"라고 말했다가 기자들의 지적에 "그냥 사고가 아니고 반인륜적인 행위가 있었다"고 정정했다. 또 처음엔 '화장'이란 표현을 썼다가 "훼손이라고 보겠다. 화장(이라고 말한 것)은 불태웠다는 뜻"이라고 바꿨다.

강태화ㆍ윤성민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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