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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실종 28시간 뒤 북 해역서 발견…NLL 넘은 민간인 첫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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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별 사건 재구성과 풀리지 않은 의혹들

[경향신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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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지난 21일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남측 공무원을 북측 해상에서 사살한 뒤 기름을 부어 불태운 것으로 파악됐다. 실종된 공무원이 북측에 발견된 지 6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다. 공무원이 실제 월북을 시도했는지 여부 등 풀리지 않은 의혹도 남아 있다.

국방부가 24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해양수산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무궁화 10호’에 타고 있던 항해사 A씨(47)는 지난 21일 실종됐다. 이날 오전 11시30분 선원 15명은 A씨가 사라진 사실을 알고 수색에 나섰지만 그를 찾지 못했다. 12시51분쯤 실종신고를 했고, 이후 한 시간 뒤부터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됐다.

■사살 후 불태운 시신, 바다에

구명조끼·부유물에 의존
38km 거리 등산곶 도달
방호복 입은 북한군이 총격

“시신 태우는 불빛 보여”
국방부 장관, 국회서 밝혀
“평소 채무로 힘들어 했다”

하루 뒤인 22일 오후 3시30분, A씨는 황해남도 강령군 등산곶 앞바다에서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에 의해 발견됐다. 실종신고 지점으로부터 북서쪽으로 38㎞ 떨어진 곳이다. 당시 A씨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고, 한 사람 정도만 겨우 지탱할 수 있는 부유물에 의지한 상태였다. A씨가 어떤 경로로 등산곶까지 도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류에 몸을 맡긴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A씨는 체력고갈과 저체온증에 시달렸을 것으로 보인다. A씨가 무궁화 10호에서 이탈한 시간은 21일 오전 1시35분에서 오전 11시30분 사이다. 11시30분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북한 선원이 발견하기까지 약 28시간을 바다에 떠 있었던 것이다. 실종 당일 연평도 인근 수온은 25.9도, 파도는 0.5m였다.

1시간여가 흐른 오후 4시40분, 북한 선원들은 A씨로부터 월북 의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북한 선원들은 A씨가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조치만 취했을 뿐, 그를 배에 태우지 않았다. 우리 군도 이때서야 북한 선원들이 접촉한 사람이 우리 국민임을 확인했다.

이날 오후 9시쯤 인근에 있던 북한군 단속정은 상부로부터 ‘A씨를 사살하라’고 지시받았다. 지시 주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40분쯤 뒤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한 북한군이 단속정에 탑승한 상태에서 A씨에게 사격을 가했다. 20분쯤 뒤, 역시 방독면을 쓴 북한군은 시신에 접근해 기름을 뿌리고 불을 댕겼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시신을 태우는 불빛이) 40분 동안 보였다”고 말했다. 또 “타고 남은 시신은 바다에 버려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후 11시에서 밤 12시 사이, 우리 군은 이 사실을 서욱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종합보고를 했다. 이어 23일 오전 1시쯤 비공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화상을 통해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있었다.

군은 이날 오후 4시35분 유엔사령부를 통해 사실 확인 요청을 했지만, 현재까지 북한은 무응답이다.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이 코로나 방역조치를 위해 무단접근 인원에게 사격을 가하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풀리지 않은 의혹

자진 월북 가능성도 조사
배 안 CCTV는 고장 상태

국방부 발표에도 일부 내용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A씨가 북 선원에게 월북 의사를 밝혔고, 평소 채무로 힘들어했다는 사실은 월북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결정적인 단서인 배 안 폐쇄회로(CC)TV는 고장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자녀 2명을 두었고, 배 안에 휴대전화를 제외한 지갑과 소지품을 그대로 남겨뒀다. 그의 친형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조류가 상당히 세고, 하루 4번 물때가 바뀐다”며 “월북이라는 단어와 근거가 어디서 나왔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인천해양경찰서는 “자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상세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군이 A씨가 사살될 때까지 6시간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에도 의구심이 인다. 국방부는 “우리 해역이 아닌 북한 해역에서 일어난 사건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곽희양·심진용·김상범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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