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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문 대통령, 첫 보고 32시간 뒤에야 "충격,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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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후 경기 김포 캠프원에서 디지털 뉴딜 문화콘텐츠산업 전략보고회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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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오전 8시 30분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한 첫 대면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전날 밤 북한군이 서해상에서 해양수산부 직원 A씨(47)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웠다는 첩보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최초 보고되고 10시간이나 흐른 뒤다. 대통령에 대한 보고가 늦어지면서 정부 대응도 지연됐다.

'첩보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하지만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파장으로 남북관계가 단절됐던 점과 민간인이 북한 해상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의 위급성을 감안하면, 청와대의 상황 분석과 대응이 안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2일 오후 6시 36분 : 서해 공무원 실종 첫 서면보고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4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청와대 대응 상황을 시간대별로 공개했다. 문 대통령이 “국민들께 있는 그대로 밝히라”고 지시했다면서다.

문 대통령은 22일 오후 6시 36분쯤 서해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A씨가 실종된 사실을 처음으로 서면 보고 받았다. ‘A씨가 해상 근무 중 선박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해 수색에 들어갔고, 북측이 그 실종자를 해상에서 발견했다’는 첩보였다. A씨 실종 사실을 인지한 지는 31시간, 군 당국이 황해남도 등산곶 인근 해상의 표류자를 A씨로 특정한 시점으로부터는 2시간이 흐르고서다.

청와대에 대한 실종자 발견 첩보는 이내 피격 사망 첩보로 대체됐다. 22일 오후 10시 30분쯤 ‘북한이 월북 의사를 밝힌 A씨를 사살한 후 시신을 훼손했다’는 첩보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접수됐다. 곧장 관계장관 회의가 소집돼 23일 새벽 1시부터 2시 30분까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등이 청와대에서 첩보 신빙성을 분석하고 대책을 논의했다.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피격됐을 가능성을 담은 첩보였지만, 문 대통령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 관계장관 회의 진행될 당시 '종전선언을 국제사회가 지지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영상 기조연설이 전세계로 타전되고 있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유엔 연설 영상은 15일에 녹화됐고, 18일에 (유엔으로) 발송됐다”며 공무원 피격 사건과 문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대면 보고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선 “정보의 신뢰성,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검증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지만, 파악된 사실만 담은 잠정 보고는 왜 미리 하지 못했는가는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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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인천해양경찰서는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서 최근 북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공무원 A(47)씨가 타고 있던 어업지도선 무궁호10호를 조사했다. 사진은 무궁화10호의 선체 모습. 인천해양경찰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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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8시 30분 : 서해 공무원 피격 첫 대면보고


문 대통령은 23일 오전 8시 30분 노영민 실장 서훈 실장으로부터 보고 받으면서 서해 공무원이 피격 당해 숨지고 시신이 해상에서 불태워진 사건을 처음 접했다. 관련 첩보가 청와대에 입수된 지 10시간, 북한군이 A씨를 피격한 지 11시간이 흐른 뒤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첩보가 사실로 밝혀지면 국민이 분노할 일”이라며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라.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북에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 지시에 따라 청와대와 정부는 같은 날 오후 4시 35분 유엔사 군사정전위 채널로 북한에 사실관계 파악을 요청하는 통지문을 발송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오전 11시엔 청와대에서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 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원인철 신임 합동참모의장을 비롯해 남영신 신임 육군참모총장, 이성용 신임 공군참모총장, 김승겸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 전군 최고위 참모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였다.

피격 첩보에도 문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군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의 시대는 일직선으로 곧장 나 있는 길이 아니다”며 “진전이 있다가 때로는 후퇴도 있고, 때로는 멈추기도 하고, 때로는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때 국방력은 전쟁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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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에서 진급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례하고 있다. 왼쪽부터 원인철 합참의장, 남영신 육군참모총장, 이성용 공군참모총장, 김승겸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김정수 2작전사령관, 안준석 지상작전사령관.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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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9시 : “국민께 있는 그대로 발표하라” 지시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 나오기까지는 또 하루의 시간이 더 걸렸다. 24일 오전 9시 노 실장과 서 실장으로부터 ‘첩보의 신빙성이 높다’는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소집해 정부 입장을 정리하고,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을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가 23일 오후 11시쯤 해당 사건을 이미 보도한 뒤였다.

하지만 관련 첩보를 접수하고 이틀이 지나서야 청와대와 정부가 이를 공개하고 입장을 표명한 것이 적절했는지 논란이다. 청와대는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소요돼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 등 남북관계를 의식해 청와대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는 NSC 상임위를 긴급 소집했지만, 이는 당초 예정돼 있던 정례 NSC 상임위를 앞당겨 개최한 성격도 없지 않다. 청와대는 NSC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을 ‘반인륜적 행위’로 규정하고 “강력 규탄”하면서도 “이번 사안이 9ㆍ19 군사합의의 세부 항목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고 한 것도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날 경기 김포의 디지털 뉴딜 현장을 방문하는 등 일정을 정상적으로 소화한 것도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한 행보라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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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군은 경계태세를 더욱 강화하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한 24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연평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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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친 24일 오후 5시 강민석 대변인 명의의 서면브리핑을 통해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북한 당국은 책임 있는 답변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군은 경계태세를 더욱 강화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라”고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이 최초 보고를 받은 지 32시간이 지난 뒤였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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