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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38노스 “北 홍수피해 충격적···말로만 '평양속도' 복구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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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5일 북한 양강도 혜산시 시내를 흐르는 개천에 주민들이 모여있는 모습. 중국 지린(吉林)성 창바이(長白)조선족자치현에서 촬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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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간 북한을 방문했지만 올해 북한 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은 매우 충격적이다"

북한에 2020년은 매우 잔혹한 해가 되고 있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23일(현지시간) 전했다. 20년 넘게 북한을 방문해 온 익명의 국제 구호원들이 전한 소식이다. 연초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막기 위해 국경을 폐쇄하면서 경제 상황이 악화한 데 이어 여름 내내 태풍과 홍수로 풍수해를 겪은 탓이다.

특히 이번 여름 장마철에는 3개의 태풍(바비, 마이삭, 하이선)이 북한을 휩쓸고 지나간 데다 강우량은 지난 25년간 관측해온 가운데 역대 2번째를 기록할 정도로 많았다.



홍수에 취약한 북한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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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한 김화군 홍수 피해 복구 사업 현장 모습. 노동신문은 각지의 큰물(홍수)피해복구지휘부를 중심으로 도로와 철길의 복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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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국제 구호원은 가파른 산과 좁은 계곡이 많은 북한의 지리적 특성이 홍수 피해를 키웠다고 전했다. 단시간에 폭우가 쏟아지면 자연 배수 시스템이 빠르게 무력화하면서 산사태, 물 잠김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 주택과 인프라 붕괴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북한의 마을들은 가파른 산 경사면 사이 계곡과 개울을 따라 해안가 평지까지 조성돼 있는데 상류에서 홍수가 나 개울이 급류로 변하면 하류까지 순식간에 초토화된다.

북한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인 원산이 이달 큰 풍수해를 겪었는데 북한 당국은 대피 경보를 발령하고 이례적으로 '현장 중계 보도'를 허용했다고 한다. 다만 외부에는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밝히지 않았고 외부 지원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피해 복구도 못 하는데 겨울 다가와"



그러는 사이 북한 주민들의 삶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38노스에 따르면 올해의 풍수해로 침수된 농경지와 마을 주민들은 기근과 전염병의 위험에 놓인 데다 피해 복구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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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해 12월 24일 4면에 양덕온천문화휴양지 건설 모습이 담긴 사진 23장을 공개했다. 평안남도 소재 양덕온천 건설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삼지연군과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추진한 역점 사업 중 하나다. [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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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과 10월은 옥수수, 대두, 쌀 등 북한 주요 식량 작물을 수확하는 기간인데 작물은 수확도 하기 전에 밭에서 썩을 위험에 처했다. 도로와 전기선이 파손되면서 작업을 할 수 있는 인프라 마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집을 잃은 이주민들이 피난 시설을 찾아 모이면 코로나19나 결핵 등 전염병 확산의 위험도 커진다. 오염된 수원도 복구되지 않아 생존 위협마저 겪고 있다.

38노스는 "가옥·도로·교량을 재건하고 농지를 정리하는 일은 수개월이 걸리는 매우 험난한 작업"이라면서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거의 모든 외부물자 공급이 중단된 탓에 회복은 요원하다"고 전했다.

'고난의 행군'은 쉽게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주민들의 영양실조는 심각한 상황이고 다가오는 겨울에 대비조차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호원은 "이례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평양의 당국조차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며 "슬프게도 구호와 재건을 위한 인도적 지원은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北 "평양속도로 태풍피해 복구"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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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강원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8월 중순과 10월 말에도 이곳을 잇달아 방문해 공사 진행 상황을 직접 챙겼다. [조선중앙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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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일(10월10일)과 제8차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태풍 피해 흔적을 지우기 위해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달 19일 사설을 통해 "피해 복구 전투에서의 승전 포성은 다음 해 진군에서 더 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결정적 담보"라며 "당 제8차 대회를 뜻깊게 맞이하자면 피해 복구 전투를 시급히 결속하고 경제 전반과 인민 생활을 안정된 궤도 위에 올려세워야 한다"고 했다. 대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민심을 달래기 위한 포석이다.

24일에는 '평양속도'를 강조하며 빠른 수해복구를 독려했다. 노동신문은 황해도, 함경도 등 수해 지역에 파견된 수도당원사단을 치켜세우며 "평양시간에 준해서 모든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14분에 한 세대의 주택을 조립하는 놀라운 평양속도를 창조하는 투쟁의 앞장에 섰다"고 했다.

대대적 선전전의 이면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구겨진 체면이 있다. 지난해 베트남 하노이까지 가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벌인 회담이 결렬된 데다 2018년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원산·갈마관광지구' 조성 사업마저 코로나19로 위기에 놓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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