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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방산강국 美·英에 답…덩치 안 키우면 "글로벌 경쟁 못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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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과제는⑥끝]내수 과당경쟁…대형화로 경쟁력 강화해야

뉴스1

그래픽=이지원 디자이너©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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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임해중 기자 = 올해 4월 미국 대형 방산업체 레이시온과 항공기 부품·자재 생산기업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스(UTC) 합병이 끝났다. 합병법인 사명은 레이시온테크놀로지스(RTC)다.

지난해 기준 레이시온은 글로벌 5위 규모의 방산업체다. 글로벌 10위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스와의 합병으로 탄생한 신규 법인은 록히드마틴을 바짝 뒤쫓는 세계 2위권 공룡 방산기업으로 덩치를 키웠다.

미국 방산업계에선 최근 몇 년간 5건의 대형 인수합병(M&A)이 발표됐다. 세계 방산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은 1990년대부터 꾸준히 업체를 통합하며 방산 대형화를 추진하고 있다.

◇10조 안팎 내수서 수십 개 업체 경쟁…중복투자·저가입찰 부작용

25일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 따르면 국가가 지정한 국내 방위산업업체는 올해 기준 87개사다. 대기업 20개, 중견기업 14개, 중소기업 53개로 구성됐다.

우리나라 방위력 개선사업 예산은 연간 15조원 안팎으로 이 중 30%가 외산 무기 수입 비용이다. 이를 감안한 내수 규모는 10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세계 1위 록히드마틴의 지난해 매출은 560억달러(65조원)다.

록히드마틴 연간 매출의 15% 규모에 불과한 내수시장에서 90여개 기업이 경쟁을 하다 보니 구조적으로 과당경쟁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방위산업 국제화를 위해서라도 인지도 높은 글로벌 톱10 수준의 방산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문제는 국내 방위산업 육성 정책이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2008년 방위산업의 전문화·계열화 정책을 폐지하면서 업체 간 과당경쟁을 부추겼다.

전문·계열화 정책은 군수품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신규 업체 진입을 제한하고 기존 업체에는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를 없애면서 기회는 균등해졌지만 중복투자와 저가입찰이 유발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무자격업체까지 난립하며 기술과 품질 경쟁력이 저하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 지원에 방산 대형화 이룬 美·英·獨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은 방위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운다. 규모의 경제를 키워 투자여력을 확보하고 수요위축 등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1993년 윌리엄 페리 국방부 차관이 방산업체 고위직 만찬장에서 통합을 장려하면서 대형화 작업이 속도를 냈다. 정부는 통합에 든 비용까지 획득사업 계약과정에 반영해 이를 지원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최근까지 계속됐다. 2017년 9월 노스럽그러먼은 오비탈ATK를 인수해 글로벌 3위 업체로 사세를 확장했다. 2018년 4월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CSRA를 인수했다. 2018년 10월 LS테크놀로지는 헤리스와 합병하면서 미국 방산업계는 빅6로 재편됐다.

올해 4월에는 레이시온과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 합병이 완료됐다.

영국은 항공기, 방산전자, 지상장비, 함정 등 국방 획득 전 분야 업체들을 BAE시스템으로 통합했다. 이 회사는 200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거두는 글로벌 톱10 방산회사로 성장했다.

독일은 항공기, 유도무기, 방산전자, 지상장비 등 주요 방위산업을 각각 EADS, MBDA, ESG, KMW 등 분야별 1개 체계업체로 합했다. 이스라엘은 국방과학연구소를 아예 국영 방산기업 라파엘로 재편·운영하고 있다.

◇덩치 키운 한화·KAI…그나마 경쟁력 제고


국내에서는 한화그룹이 2015년부터 인수합병을 시도하고 있다. 한화는 삼성과 진행한 빅딜로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를, 두산에서는 두산DST를 가져와 한화디펜스, 한화시스템, 한화 방산부문 등으로 재편했다.

기존 탄약·정밀유도무기사업에서 자주포·장갑차·항공기·함정용 엔진과 레이더 등까지 진출해 매출기준 글로벌 32위까지 성장했다. 이에 힘입어 2025년에는 매출 10조원을 달성해 글로벌 톱10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외환위기(IMF) 후 적자에 시달리던 대우중공업, 삼성항공(현 삼성테크윈), 현대우주항공 등 3사를 정부 주도로 통합해 국내 유일의 항공기 개발·생산업체로 성장했다.

유형곤 안보경영연구원 방위산업실장은 "IMF 직후 항공관련 회사들은 가격경쟁이 워낙 심해 밑지고 장사해야 하는 위기에 몰리는 등 부작용이 심했다"며 "통합하지 않고 그대로 뒀다면 경쟁력을 가지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 없으면 대형화 요원…규제완화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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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방산기업들도 인수·합병 등 방식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작은 내수시장에 한계를 느낀 방산업체들이 수출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낮은 인지도로 시장 다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화와 KAI 등 국내를 대표하는 방산기업이 합병을 바탕으로 성장한 만큼 앞으로도 주요 방산업체의 덩치를 키워 해외 공략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안영수 한국산업연구원 방위산업연구센터 센터장은 "다른 국가의 방산업체들이 대형화로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를 달성하고 있는 만큼 우리 방산업체들도 해외시장에서 싸우기 위해선 글로벌 수준에 맞춰 대형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M&A 결합승인 심사기준 완화, 인센티브 지급 등을 제도화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은 "유럽에선 국경을 뛰어넘은 방산기업 간 통폐합도 존재한다"며 "우리나라도 업계 간 자율적으로 M&A가 활발해질 수 있도록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대형 방산업체가 국내 시장을 독점하면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국내 개발 외 해외 무기 도입이라는 충분한 대체재가 있고 감시 기능도 강해 경쟁 체제가 이어질 것이라는 반론에 힘이 실린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방위산업은 정부의 원가 검증, 품질 관리 등 이중삼중의 감시 기능이 있는 만큼 독과점 폐해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haezung22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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