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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대단히 미안”…이례적 신속 사과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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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오늘(25일) 서해 소연평도 해상에서 발생한 우리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오늘 남측에 보낸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에서 사과한 건데요. 김 위원장은 “가뜩이나 악성 비루스(코로나19) 병마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고 위로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직접 발 빠른 사과를 내놓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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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과거 사과 사례는?

분단 이래 북한 최고지도자가 직접 남한에 사과한 경우는 손에 꼽힙니다.

1972년 당시 김일성 주석이 북한을 찾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면담에서 4년 전 발생한 1·21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놓고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라고 사과를 한 적이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같은 사건을 두고 2002년 5월에 방북한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와의 면담 과정에서 “극단주의자들이 일을 잘못 저지른 것”이라며 “미안한 마음”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외에 북한은 남북 갈등 상황에서 사과 대신 유감 표명을 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 벌어지자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유엔군 사령관에게 구두로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에는 제2차 연평해전을 놓고는 김령성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이 정세현 통일부 장관에 “서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이라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습니다.

2008년 금강산에서 발생한 박왕자 씨 피격 사건 때는 사건 다음날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 명의로 담화를 내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2015년 목함지뢰 도발 이후에는 북측은 남북 고위당국자 공동합의문을 통해 남측 군인이 다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당시 이런 유감 표명은 모두 북한 실무자나 조선중앙통신 논평 등을 통해 내왔으며, 이번처럼 최고지도자의 발언을 통해 “미안하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쓴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대남 사과까지 하게 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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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관계, 여지는 남겨두자’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대남 사과는 남북 관계를 최악으로 치닫지 않게 하기 위한 ‘상황 관리 목적’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분석입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악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실리적, 현실적 판단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면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큰 기대는 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남북관계가 악화돼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은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임 교수는 “남북관계 카드는 필요하면 언제든, 예를 들면 내년 초 8차 당 대회 이후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둬야 하는데, 남북관계가 완전히 닫힐 경우 북한으로서는 더욱 고립되고 입지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이례적 사과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최근 북한이 남북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최소 수준의 관리’를 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 측이 지난 3월 북한의 초대형 방사포 발사에 유감을 표명하자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청와대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긴장이 높아졌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난 담화 하루 만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깜짝 친서’를 보내 코로나19 사태를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며 문 대통령 건강까지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6월에도 같은 패턴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우리 측의 대북전단 살포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대남 군사행동까지 예고했지만, 같은 달 돌연 김정은 위원장이 나서며 군사행동을 보류한 것입니다. 긴장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 최악으로까지는 치닫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이번 전통문 사과도 역시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여지를 남겨두자’는 의도라는 것입니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직면한 대북제재, 코로나19, 수해라는 삼중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민생행보에 나서는 김정은 위원장은 다음 달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앞두고 재난 극복 등 내치에 집중하는 상황입니다. 남북 관계가 악화돼 군사적인 긴장이 고조되고 비난 여론이 쏟아지는 것에 대처하기보다는 내부에 힘을 쏟아야 할 시기라는 판단일 것입니다.

■ 국제사회 비난도 의식…‘민간인 사살’ 명분 없어

집권 이후 ‘정상 국가’를 추구해온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서는 북한군이 공무원의 시신을 소각했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국제사회의 비난도 우려스러웠을 것입니다. 북한은 오늘 전통문에서 공무원을 해상에서 사살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시신을 불태웠다는 우리 군의 주장은 억측이라면서 전면 부인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공무원 피살 사건을 이대로 두면 북한이나 김정은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다시 악마화 될 가능성이 높은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지도자’, ‘국제사회 규범을 전혀 준수하지 않으며 야만적인 만행을 하는 지도자’ 같은 이미지는 김정은 위원장이 굉장히 싫어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이번에는 북한이 외부로 책임을 돌리거나 다른 명분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 방역이든 무엇이든 민간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국제적 규범이나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지난 2008년 금강산에서 있었던 ‘박왕자 씨 사건’ 때처럼 ‘우발적인 사고’였다고 주장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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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달 폼페이오 방한도 이유…북미관계에 여지”

북한이 다음 달 초에 예정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한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폼페이오 장관 방한 전에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사과를 하는 게 향후 북미 협상에 유리할 것이라는 포석이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폼페이오 장관이 방한하면 북한에 대한 메시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번 전통문 사과를 통해 북한은 북미 관계에서도 여러 여지를 두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김정은의 이번 사과 통지문이 오지 않았다면 다음 달 폼페이오가 북한에 강력한 경고를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미국 대선 과정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반인류적인 지도자를 상대했다는 비난이 일 수 있어 북한과 미국의 입장에서 모두 정책이나 대화를 끌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피살 사건 철저한 진상 규명이 과제”

사과를 받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철저한 진상 규명입니다. 북한이 전통문을 통해 설명한 사건 경위를 보면 북측은 우리 공무원의 시신을 훼손한 적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 같은 설명을 수용할지를 놓고 논란이 예상됩니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남측의 ‘시신 훼손’ 대 북측의 ‘부유물 소각’ 주장이 대립하는 쟁점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남북 공동조사와 유가족 현장방문, 해상장례식 등 남북 협조를 통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이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일치단결된 여론으로 북한에 공을 던지고 남북관계를 주도하며 새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특징 중 하나는 필요할 경우 강하게 나가야 반응한다는 것”이라면서 “북한에 대해 여야, 시민사회 등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최근 친서가 오간 사실도 공개됐습니다. 남북 정상 간의 친서 교환과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북한의 신속한 사과가 경색된 남북 관계에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낼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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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민 기자 (freshm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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