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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한국·터키 빼고 다 있는 재정준칙…코로나로 '유연성' 강화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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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편집자주] 정부가 조만간 재정준칙을 마련해 발표한다. 재정준칙은 단기적인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선심성' 정책이 남발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는 제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6개국 가운데 34개국이 도입했다. 단순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00%'로 국가채무를 관리한다'라는 식의 경직적인 제한선을 제시하기보다는 우리가 처한 인구와 경제성장 여건 등 현실을 고려한 준칙을 내놔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MT리포트]포퓰리즘 방패 재정준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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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준칙은 이미 세계 주요국이 도입·운영 중인 ‘보편적 제도’다. 코로나19(COVID-19) 확산이 진행 중이고 경기 악화로 재정의 필요성이 강조된 최근에는 예외 규정을 두면서 '유연성'을 많이 허용하는 모습이다.


재정준칙, 92개국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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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2020.9.23/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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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재정준칙을 도입·운영 중인 국가는 세계 총 92개국에 달한다. 특히 36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는 한국, 터키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도입했다.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책연구개발과제로 작성된 ‘재정준칙 활용에 관한 주요국 사례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재정준칙은 1990년대에는 5개 국가(독일, 인도네시아, 일본, 룩셈부르크, 미국)만 도입했었다. 일본과 독일은 재정준칙의 역사가 각각 1947년, 196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처럼 초기에는 주로 선진국이 재정준칙 도입을 선도했지만, 최근 20여년 동안 개발도상국 등에서도 빠르게 확산되며 현재 92개국까지 늘어난다. 보고서는 이런 원인에 대해 △1990년대 초반 금융·경제 위기로 인해 채무가 과도해진 경우(핀란드, 스웨덴) △라틴아메리카의 채무 위기(브라질, 페루) △유로지역에 적합한 재정개혁 필요(벨기에) △늘어나는 적자와 채무를 줄여야 하는 부담(네덜란드, 스위스) 등으로 설명했다. 보고서는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 된 재정수단으로서 재정준칙이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동안 재정에 문제가 생긴 국가가 많았던 만큼 재정준칙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어느 국가든 대체로 정권은 수년마다 계속 바뀌기 때문에 ‘집권하는 동안 재정을 많이 쓰고 싶다’는 유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재정준칙이 필요한 근본적 이유”라고 말했다.


엄격한 기준 도입...코로나 이후 ‘유연화’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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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서울 강남구 한국은행 강남본부. 2020.01.20.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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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재정준칙을 살펴보면 대체로 ‘엄격한 기준’을 도입한 경우가 많다. 국회예산정책처가 펴낸 ‘2020 주요국의 재정제도’에 따르면 독일은 1969년부터 헌법에 채무준칙(경제가 균형에서 크게 벗어날 경우를 제외하고 신규 차입은 자본투자에 한정)을 규정해왔다.

독일은 2009년 헌법을 개정해 보다 엄격한 제도를 도입한다. 이른바 ‘채무제한제도’라는 것인데, 이는 연방정부가 구조적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0.35%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주정부는 올해부터 재정수지를 GDP 대비 0%로 달성해야 하고, 경기변동을 고려한 공공재정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다만 헌법에서 자연재해나, 국가 통제를 벗어나 재정상황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예외적 비상상황’에 대해서는 예외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1990년 ‘예산집행법’을 통해 페이고(Paygo) 원칙을 도입했다. 페이고는 비용이 수반되는 정책을 세울 때 재원 확보 방안을 반드시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다. 당초 미국에서 페이고 원칙은 2002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됐지만, 2009년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11%까지 확대되자 2010년 ‘페이고법’을 재도입한다. 과거와 달리 별도 시효 규정을 두지 않았다.

미국은 특정한 경우에 정부 예산을 일부만 제외하고 일정 비율대로 삭감하는 ‘강제삭감 제도’도 1985년부터 운영 중이다. 이 제도를 사용한 사례는 총 10번인데, 이는 △적자한도로 인한 강제삭감 2회 △지출한도로 인한 강제삭감 2회 △예산통제법 규정 위반으로 인한 강제삭감 6회 등이다.

유럽연합(EU)은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EU 회원국이 ‘GDP 대비 국가채무 60%, 재정적자 3%’를 지키도록 하고 있다. 조약이 발효된 1993년 유로 회원국의 재정적자 비율은 5.8%에 달했지만, 이후 재정건전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며 1997년 2.7%까지 낮아진다.

다만 EU는 올해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재정준칙을 일시 중단하기로 합의한다. EU 회원국 재무장관들은 지난 3월 성명을 내고 유로존 또는 EU 전체에 ‘심각한 경기 둔화’라는 재정준칙 면책조항 사용 조건이 충족됐다는 EU 집행위 평가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국가채무 60%, 재정적자 3%’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EU가 면책조항을 사용해 재정준칙에 유연성을 부여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처럼 코로나를 계기로 유연한 재정준칙이 강조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정책 방향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경제전문가들은 유연성을 도입하더라도 재정준칙으로서 실효성을 잃을 수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준칙을 너무 경직적으로 정해놔선 안 된다. 어느 정도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도 “재정준칙이 유명무실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적정한 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유선일 기자 jjsy8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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