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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집주인 “실거주” 한마디에, 짐싸야 하는 세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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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투자자들 ‘실거주’ 요건 악용에도

현행 법으론 임대인 입증의무 없어

“실거주 입증 적극적 해석 필요” 지적


한겨레

서울 강북지역의 주택단지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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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 임차인 ㄱ씨는 재계약을 앞두고 최근 임대인한테서 ‘자녀가 실거주할 예정이니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아이가 국공립 어린이집에 어렵게 입소한 상태에서 임대인의 갱신 거절은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임대인은 전북에 사는 임대사업자로, 갭투자로 ㄱ씨 집을 샀다고 한다. “그냥 나가려고 했었는데, 요즘 보니 임차인들 내쫓는 방법을 공유하는 임대인들이 있더라고요. 사실관계라도 확인해야겠다 싶어서 입증을 요구했죠.” 하지만 집주인은 “왜 남의 집안일에 간섭하려고 하냐”며 입증을 거부했다. ㄱ씨는 임대차법 상담을 하는 창구에 전화를 해봤지만, ‘현행법으로는 임대인한테 입증 의무가 없다’는 말을 듣고 자포자기 심정이 됐다고 했다.

정부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의 여파로 진퇴양난에 빠진 갭투자자들이 주택임대차보호법(주택임대차법)이 갱신 거절 사유로 규정한 ‘실거주’ 요건을 악용하는 바람에 피해를 보는 임차인들이 나오고 있다. 실거주 입증과 관련된 적극적인 법 해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7월31일 시행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요구권을 1회 부여하면서, 임대인에게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사유 8가지를 규정했다. 최근 갈등이 빈발하고 있는 갱신 거절 사유가 ‘본인 및 직계존비속의 실거주’다. 박효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허위 갱신 거절이 의심되는 사례로 상담 오는 임차인들을 보면 임대인이 처음에는 매매를 하려다가 말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며 “내년부터 다주택자들에게 종합부동산세나 양도세가 강화되는 것을 피하려면 매도를 해야 하는데, 임대차법으로 전세 낀 매물이 거래가 안 된다. 전세가격을 올려서 세 부담을 충당하는 것도 전월세 상한제로 여의치 않자 허위 갱신 거절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실거주 관련 규정에는 ‘입증’과 관련된 내용이 없어, ‘입증을 요구할 수 없으니 그냥 퇴거하는 게 맞다’는 상담까지 이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임차인이 자녀 등 실거주하는 사람의 성명을 내용증명으로 요구하고 이를 근거로 추후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협상력을 높이는 권리보호 방안을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변호사)은 “프랑스는 ‘진정한 실거주’ 등의 표현으로 임차인이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며 “실거주라는 갱신 거절 규정이 분쟁조정이나 소송으로 가면 결국 입증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협상 단계에서 충분히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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