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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마종기 등단 60년… “시 쓰기는 끝을 알수없는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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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깊고 겸허해진 언어들로 5년 만에 ‘천사의 탄식’ 펴내

“코로나 의료진 살신봉사에 눈물, 여행도 만남도 힘든 이 난세에

위로받을 곳은 예술-신앙뿐”

동아일보

마종기 시인은 “시에서 아름다움 대신 불어터진 신앙의 몸통이 그대로 보인다면 실패한 것”이라면서도 “그렇지 않기를 바라며 가장 과감히 내 신앙을 전하려 모험을 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동아일보

그리운데 슬픔이 끝이 아니다. 어스름하나 따스하고, 쓸쓸하지만 더없이 깊어진 위안. 마종기 시인(81)이 5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 ‘천사의 탄식’(문학과지성사·사진)에는 시인으로, 의사로 그리고 신앙인으로 살아온 그의 한층 깊고 겸허해진 언어들이 펼쳐진다. 20대 중반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떠나 의사 생활을 시작한 뒤 일평생 고국을 떠난 그리움을 아름다운 시어로 매만져온 그의 시력(詩歷)은 올해로 60년이다.

최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시인은 “아직 사람들이 감동할 수 있는 좋은 시를 내놓지도 못했는데 벌써 등단 60년이라니 부끄러움이 첫 감회”라며 “이 마라톤의 끝은 어딜까, 이제는 피곤해지는구나 싶기도 한데 시 쓰기는 결승점 테이프나 꽃다발, 팡파르가 없는,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경주인 것을 알기 시작했다”고 했다. 치열한 의료 현장의 고단함과 늘 곁에서 순환하는 탄생과 죽음의 굴레는 직분, 소명에 대한 고민과 절절한 향수를 노래하는 시 속에 고스란히 재현된다.

‘사흘 만에 돌아오는 당직 때는 밤새도록/기억에도 없는 주검을 청진기로 확인하고/사망진단서를 써주고 부검을 보면서 … 밤새우고 병원을 나오는 여명의 공간을/왜 캄캄한 지하실로 내려간다고 느꼈던지’(‘노을의 주소’)

그는 “언어, 실력도 부족했고 외국서 수련의가 된 지 4개월 만에 부친이 고국에서 돌아가셔서 견디기 어려웠다”며 “일단 살기 위해 밤새워 시를 썼는데 돌아 보니 문학이 가진 휴머니티는 좋은 의사의 조건이었고 의사란 생업은 시의 좋은 질료가 돼줬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로 고국에 별로 기여한 것 없이 미국에서 생업을 이어왔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에 의료진이 펼친 살신의 봉사는 나 같은 열외자에게 눈물을 쏟게 했다”고도 했다.

“아마도 나이가 조금 작용했을 것”이란 설명대로 이번 시집에는 돌아가신 부모님, 먼저 떠난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시편이 적지 않다. 이들에 대한 깊은 그리움은 자연히 믿음의 세계 안에서의 재회를 소원하는 그의 신앙과 만난다.

그는 “미약한 생명체의 민낯, 새 생명의 기쁨 등 수십 년 의사로 살면서 경험에서 추출해낸 가장 중대한 보람이 신앙이었으나, 신앙을 직접 시에 넣는 건 금기시했다”고 했다. 그래서 성공한 예가 드물다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모험’을 했다. 특히 표제작인 ‘천사의 탄식’에 그 삶과 문학의 바탕이 돼 준 신앙이 잘 드러난다.

‘우리는 결국 다 함께 일어난다는, 다정하게 들리는 저 천사의 탄식! … 이제는 생애의 성사를 받을 시간, 수많은 죄와 회한을 기쁨으로 바꾸어주는 당신께 다가간다’

‘아버지도 가을에 돌아가셨고/어머니도 그 뒤의 가을이었지 … 괜찮다면 나도 가을이고 싶다’(‘즐거운 송가’)며 삶과의 이별을 담담히 준비하는 시편들에서도 회복과 영원에 대한 염원이 읽힌다. 그는 “여행도 힘들고 친구도 만나기 힘든 이 난세에 기대고 위로받을 곳은 예술과 신앙, 두 가지가 아닐까”라며 “둘 다든, 둘 중 하나에든 기대어 위로와 기쁨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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