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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추(秋)캉스 딜레마[횡설수설/이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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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요즘 수백 년 동안 사용하지 않던 ‘와인창문(Buchette del Vino)’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벽에 낸 작은 구멍을 통해 술을 파는 것인데, 유럽에서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접촉을 최소화하면서도 장사를 하기 위해 고안됐다. 세월이 흐르며 대부분 구멍을 막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재조명되고 있다. 피렌체 구시가지에만 150여 개가 있고, 품목도 술에서 젤라토, 커피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강력한 봉쇄로 5월 이후 하루 평균 확진자가 200여 명으로 감소했지만 여름 휴가철을 맞아 조치를 완화한 뒤 8월부터는 하루 평균 400여 명으로 다시 늘었다. 세레나데가 흐를 것 같은 낭만적인 창문 너머에는 확진자 폭증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영업자들의 눈물이 숨어 있다.

▷추석 연휴에 고향 대신 여행을 가는 ‘추캉스’(추석+바캉스) 인파가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호텔 예약률은 94%가 넘고, 제주에는 30만 명이 몰릴 것이라고 한다. 자연휴양림과 캠핑장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다. 추캉스는 본래 대형 호텔업계가 마케팅으로 붙인 이름이다. 짧은 연휴에 해외에서 고생하지 말고 호텔에서 각종 패키지를 이용하며 편안하게 지내라는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추석 연휴에는 추캉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귀성 취소 및 해외여행 차단과 맞물려 추석 연휴에 국내 여행을 떠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연휴 특수가 당장은 경기에 도움이 되겠지만 길게 볼 필요도 있다.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 이후 소비가 더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5월 황금연휴 때도 강원 속초 강릉 등의 숙소 예약률이 97%가 넘었는데, 4월까지 진정세를 보이던 코로나19가 재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7월 초 코로나 봉쇄령이 해제된 영국 남서부의 관광 명소인 데번에서는 저승사자 옷을 입은 주민들이 ‘휴가객을 환영한다’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등 유명 관광지 주민들의 걱정은 크다.

▷지자체들은 준전시 수준의 비상 상황에 들어갔다. 제주도는 체온이 37.5도가 넘으면 무조건 진단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시키기로 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증상이 있는데도 오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강원도는 2주간을 특별방역기간으로 정하고 주요 관광지에 방역요원을 배치해 점검하기로 했다. 관광지 주민 중에는 방역에 동참하기 위해 고향에도 안 갔는데 정작 자신의 감염 위험은 더 커졌다며 한숨 쉬는 이들도 있다. 관광지 이전에 사람 사는 곳이고, 나는 놀다 가면 그만이지만 바이러스는 남는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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