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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105명서 407명… 상온노출 독감백신 접종자, 자고나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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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믿을 정부 집계

조선일보

유통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은 독감 백신을 맞은 사람이 407명으로 늘어났다고 정부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가 27일 밝혔다. 정부는 지난 25일 “전국적으로 105명”이라고 발표했는데 그날 오후 전주시에서 “전주에서만 179명”이라고 발표하자 그날 밤 “중복을 제외하면 224명”이라고 정정했었다. 방역 당국 조사가 진행되면서 지난 26일에는 324명, 27일에는 407명으로 집계됐다. 발표할 때마다 상온 노출 위험 백신을 접종한 사람의 숫자가 100명 안팎 무더기로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방역 당국은 “앞으로 조사에 따라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밝힌 상태다. 접종 중단 조치를 한 이후 닷새가 지나도록 몇 명이 문제 백신을 맞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예방의학과 전문의는 “21일 첫 발표가 나오고 일주일째인데 문제가 된 백신을 맞은 사람을 집계하는 것조차 하루가 멀다 하고 숫자가 바뀌는 보건 당국을 국민들이 어떻게 신뢰하라는 말이냐”고 지적했다.

특히 질병관리청(질병청)이 지난 21일 밤 ‘접종 중단’ 방침을 밝힌 뒤로도 상당수 의료기관에서 상온 노출 백신을 예방접종에 쓴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방대본은 27일 오후 7시 45분쯤 “지난 22일 접종 중단을 공지한 전후로 몇 명이 백신을 맞았는지는 집계 중으로 곧 발표하겠다"고 했다가 10분쯤 지나서는 “해당 내용은 28일 브리핑에서 설명하겠다”고 번복했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당초 접종 사업을 22일에서 2주간 연기하면서 “상온에 노출된 백신이 접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질병청은 같은 날 “국가 예방접종 사업을 일시 중단하며 보건소와 병원이 정부 조달 계약 백신은 별도의 안내가 있기 전까지는 사용하지 않도록 보건소와 의료기관이 예방접종 전에 해당 백신 생산 번호(로트 번호)를 확인하도록 안내했다”고 밝혔다. 상온 노출 백신 접종 가능성을 차단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지난 25일부터 수백명이 상온 노출 백신을 접종한 것으로 밝혀졌다. 질병청은 지난 26일 “일부 병원에서 정부 조달 물량과 유료 민간 물량을 분리하지 않고 보관하는 관리 부주의, 백신 사용 중단 안내를 접수하지 못한 의료기관이 접종한 사례가 있었다”고 뒤늦게 문제점을 시인하기 시작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독감 백신 성분 자체는 각 제조사나 정부 조달, 민간 조달 방식과 상관 없이 동일하다 보니 일부 병원은 이를 따로 관리하지 않는데 이로 인해 상온 노출 백신이 접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방역 당국이 책임을 일선 병원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위기관리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며 “질병청이 지난 7월 배포한 독감 백신 사업 관리지침 문서를 보니 백신 상온 노출 같은 비상 상황에서 질병청이 각급 의료기관에 이 정보를 어떻게 전파할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고 했다.

질병청은 상온 노출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에게서 아직 이상 반응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질병청은 상온 노출 백신 접종자를 대상으로 지자체를 통해 1주일간 전화와 문자로 집중 모니터링하겠다는 입장이다.

질병청은 지난 22일 상온 노출 백신이 정부 조달 1259만명분 중 500만명분이라고 밝혔지만 사흘 뒤인 25일 578만분이라고 정정하면서 문제 백신 물량조차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다만 전문가들은 상온 노출된 백신을 맞았더라도 백신 효능에 문제가 생겼거나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물백신’이 됐을까 걱정한다면 다시 예방접종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김우주 교수는 “9세 이하 최초 접종자는 4주 간격으로 2회 접종한다"며 “두 번 맞는다고 면역력이 더 강해진다는 근거는 없지만, 큰 부작용도 보고된 것은 없다”고 했다.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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