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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기억할 오늘] 미국 대선과  사우디 왕세자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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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말 카쇼기(9.28)
한국일보

2018년 10월 8일 미국 워싱턴DC의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언론인 자말 카쇼기 살해 규탄 시위에서 참석자들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가면을 쓰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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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의 '주인공'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1985~)였다. 기념사진에서 살만 왕세자는 맨 앞줄 주최국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섰다.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쇼기(Jamal Khashoggi, 1958~2018)를 암살한 배후로 지목된 뒤 국제 무대에서 지탄받던 그의 화려한 재기 무대인 셈이었다.

트럼프는 터키 당국과 유럽 대다수 국가가 규탄 성명을 내던 무렵에도 '무죄 추정의 원칙'을 들먹이며 줄기차게 살만을 편들었다. 최근 출간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Rage)'에도 "내가 그(살만)를 곤경에서 구했다"는 트럼프의 말이 인용돼 있다고 한다. 그 이면에는 1,100억달러(약 125조원) 규모의 무기 수출계약이 걸려 있었다. 올 연말 미 대선은 살만의 운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말 카쇼기는 걸프전쟁, 소련 아프간 침공 등 1980년대 이후 거의 모든 중동 사태를 취재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인터뷰한 저널리스트다. 거물 무기상의 조카이자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의 연인 도디 파예드의 사촌인 그는 사우디 왕실과도 비교적 친밀했다. 그가 '반체제 언론인'이 된 것은 2017년 6월 살만이 왕세자가 된 뒤부터였다. 살만은 대대적인 권력 숙청과 함께 종교를 포함한 경제, 사회의 세속화 개혁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절대 권력은 언론 자유 및 시민 운동과 병립할 수 없었다. 자유주의 언론인과 활동가 탄압도 이어졌다. 카쇼기는 2017년 미국으로 망명,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살만의 철권통치를 비판해왔다.

그는 재혼을 위한 이혼 증명서를 떼기 위해 2018년 9월 28일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을 찾아갔고, 10월 2일 서류를 받으러 갔다가 살해당했다. 지난 7일 사우디 법원은 피고 8명에게 징역 7~20년형을 확정 선고했지만, 카쇼기의 시신도, 범인들의 신원도, 배후도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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