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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특수학교 찬성하지만 "잘 살고 싶은 게 죄?" 항변엔 뜨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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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연극 '생활풍경'

강서구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 문제 실화 토대 제작

주민갈등 근본원인, 사회시스템 모순에서 찾아

CBS노컷뉴스 문수경 기자

노컷뉴스

(사진=극단 신세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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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5일,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2차 토론회'가 열렸다.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짓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토론회는 고성과 비난·야유가 난무했고 결국 파행으로 치달았다. 이 과정에서 장애아 학부모는 특수학교 신설을 위해 국립한방병원 설립을 원하는 지역주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읍소했다.

연극 '생활풍경'은 '님비 현상'(NIMBY·혐오시설 기피 현상)으로 알려진 이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됐다.

관객 참여형 연극의 진수를 보여준다. 극장은 한강시 수리구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 2차 토론회장으로 꾸며졌다. 극장 입장 전, 토론회 진행요원이 관객에게 물었다. "특수학교 신설을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

찬성하는 관객과 반대하는 관객은 객석 통로를 사이에 두고 따로 앉았다. 연극이 시작되자 객석은 방청석이 됐다. 객석 곳곳에 섞여 앉은 배우들은 방청객을 연기했다.

기자는 찬성하는 쪽에 자리했다. 그런데 극중 1차 토론회가 10분 만에 파행으로 끝난 뒤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관객에게 배우들은 유인물을 나눠줬다.

유인물 한 편에는 특수학교 신설을 찬성하는 이유, 다른 한 편에는 국립한방병원 설립을 지지하는 이유를 빼곡히 적었다.

특수학교 신설을 찬성하는 이유로는 △ 학습은 기본권이고 △ 현재 수리구의 특수학교는 정원이 턱없이 모자라며 △ 해당 부지는 학교 전용 용지이고 △ 특수학교는 집값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들었다.

반면 국립한방병원 설립을 지지하는 쪽은 △ 수리구는 한강시에서 기초생활수급 고령자와 경제적 취약층이 가장 많고 △ 한강시 25개구 중 8개구는 특수학교가 1개도 없다. 수리구에만 2개를 짓는 건 불공평하다고 반박했다.

무대와 객석은 2시간 내내 환호성과 박수, 야유와 욕설이 교차했다. 국립한방병원 설립을 지지하는 쪽에서 장애인 혐오·차별 발언을 퍼부을 땐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 왔다. 하지만 이들이 "잘 살고 싶은 게 잘못인가요"라고 항변할 땐 속으로 뜨끔했다.

눈여겨 볼 대목은 정해진 한강시교육청 교육감과 한길만 국회의원의 태도다.

특수학교 설립을 지지한 교육감은 당당했던 포부와 달리 뒤로 쏙 빠지고, 국힙한방병원 설립을 선심성 공약으로 내세운 국회의원은 토론석에서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다가 몰래 사라진다. 결국 연극은 특수학교 신설을 둘러싼 주민갈등의 원인을 사회시스템의 모순에서 찾는다.

2020년 3월, 오랜 진통 끝에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특수학교가 설립됐다. 지난 5월 13일, 고등학교 3학년부터 첫 등교를 했지만 한국사회에서 특수학교 설립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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