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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북 총격에 동생 잃은 형 “월북 단정이 생존자 구조보다 급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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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총격에 숨진 공무원 형 이래진씨 인터뷰

22일부터 수습작업 합류…뉴스로 사망소식 접해

“북과 교신하면서 왜 실종자 수색 요청 안 했나”

군 당국의 월북 단정에 강하게 반발

“사명감으로 일하는 공직생활 끝까지 하고 싶어해”

시신수습·남북공동 진상규명 강조


한겨레

북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인 이래진 씨가 26일 국회에서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며 심경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동생이 아직 살아있던 시간에 우리 군은 구명조끼 개수를 세고 있었어요.” 북한에서 피살된 공무원의 형 이래진(55)씨가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2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이씨의 뒤로 ‘피격 공무원 탑승 무궁화 10호 입항’이라는 뉴스 자막이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었다. 무궁화 10호는 항해사 출신인 이씨가 동생의 실종사실을 듣고 22일 소연평도로 내려가 수색작업을 위해 탔던 배이기도 했다. 이씨는 “남쪽의 서해북방한계선(NLL) 인근으로 최대한 올라가고 싶었는데 배가 모자라서 못 갔다. (수색인원을) 늘려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받아들여지진 않았다”며 “일몰이라 철수했더니 전수조사라고 배 복도에 구명조끼를 깔아 놨다. 동생이 사살되기 3시간 전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밤 언론기사를 통해 사망사실을 접한 이씨는 24일 아침 군 당국의 ‘공무원 자진월북’ 결론을 내린 사실을 듣고 “기가 막혔다”고 했다. 이씨는 원양어선 선장 출신인 동생을 “끝까지 공직생활을 하겠다”며 웃던 모습으로 기억한다. 그는 동생의 명예를 지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동생이 남쪽 바다를 떠다녔던 20시간이 넘는 행적을 밝혀주지도 않으면서 월북이라고 성급히 몰아가는 데 강력히 항의합니다.”

다음은 이씨와의 일문일답.

-동생이 실종된 21일 이후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됐나.

“21일 오후 2시 30~40분께 동생이 속해있던 서해어업단으로부터 동생이 실종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소연평도에 들어가려면 이틀이 걸린다고 해서 다음날인 22일 아침 8시 배로 소연평도로 들어갔다. 두 시간 뒤쯤 사고선박(무궁화10호)에 탑승했고 바로 수색에 들어갔다. 동시에 해경에 자료요청도 했다. 그날은 해군4척, 해경3척, 지방지도선2척 등이 나와 있던 걸로 기억한다. 서해북방한계선 최근접까지 가고 싶었는데 배가 모자랐다. 증원요청을 하긴 했었는데…일몰시간까지 수색작업을 끝내고, 저녁밥을 먹은 직후인 오후 6시 30분쯤 해군으로부터 전수조사가 들어왔다며 라이프자켓(구명조끼)을 복도에 쫙 깔아놨더라. 군 간부가 확인하라고 했다면서. 정부는 첩보 등을 통해서 이미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구조 대신 이런 전수조사나 한 거다.”

-23일도 수색작업에 나섰나.

“아침 7시 1분에 해경 함선으로부터 신원미상 한 구가 발견됐다고 들어서 시신을 직접 확인했다. 부패가 심했고 동생이 아니었다. 10호보다 세 배 정도 큰 무궁화23호로 옮겨 타 수색작업을 계속했다. 오전 7시 30분부터 오전 8시까지 북한 초소 쪽에서 ‘침범하지 말라’는 교신을 했다. 우리 군은 자세한 설명 없이 ‘실종자 수색 중이다’라고 짧게 답하며 응사교신에 그쳤다. 오전 10시까지 대여섯 번의 교신이 있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실종 직후 왜 우리 군이 먼저 북한에 실종에 대한 교신을 안 했냐는 거다. 교전 상태도 아닌데 상식적으로 ‘우리 국민이 넘어갔으니 돌려달라’고 교신을 할 수 있지 않나. 내가 알기로는 22일엔 아무런 교신도 없었다. 그리고 23일 밤 동생의 사망 소식을 뉴스를 통해 알았다. 그래서 수색 대신 진위파악을 하기 위해 24일 육지로 나왔다.”

-그때부터 ㄱ씨가 자진월북을 시도하다가 북쪽바다로 넘어갔고 총격을 받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평소 어떤 아이인지 아니까 황당했다. 나도 그렇지만 동생도 원양어선을 5년 탔고 선장까지 했다. 그 경력이 공직임용에 유리하니까 8년 전에 공무원이 됐다. 뉴스를 보는데 중국불법선박 단속이 위험하다고 하길래 동생한테 그냥 그만두고 내가 하는 사업을 도우라고 했다. 그랬더니 동생은 사명감으로 일하는 생활이 좋다면서 끝까지 공직생활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실종 전날에는 아이들과 통화도 했다. 정부는 동생 죽음이 보도된 뒤 너무 성급하게 월북으로 규정했다. 선내 폐회로텔레비전도 고장 났고 이제야 동생 컴퓨터 하드디스크 분석에 들어갔는데…이런 문제는 추정으로 몰아가선 안 되지 않나. 그보다는 시신수습과 진상규명이 먼저라고 본다.”

-월북근거로 ㄱ씨의 부채문제도 거론되는데.

“정확히는 모르지만, 빚이 수천만원 있는 걸로 안다. 우리나라에 빚이 없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되나. 책임을 피하기 위한 주장이라고밖에 안 보인다. 설령 채무관계에 있더라도 나를 포함해 빚을 갚아줄 형이 둘이나 있는데 우리가 그걸 외면하겠나. 내 휴대폰에서 자주 연락하는 목록 맨 위엔 늘 동생이 있었다. 유일하게 내게 응석 부리던 동생이고 가장 애착이 가던 동생이었다.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었다. 동생 부부관계에 관한 말도 나오는데 살면서 안 싸우는 부부가 어딨나. 이혼 숙려기간이던 제수씨도 지금 정신적으로 매우 무너진 상태다. 이런 문제를 (월북 근거로) 몰아가는 건 치졸하다. 대통령도, 이 정부도 정말 좋아했다. 근데 막상 이번 일을 겪고 보니 동생을 배신자로 낙인찍기 급급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동생의 명예를 무자비하게 더럽히는 행태다.”

한겨레

27일 경기도 안산시 사무실에서 만난 이래진씨가 수색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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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가족들은 어떤 상태인가.

“약 30년 전에 사촌누나가 완도초소에서 경계병 실수로 총에 맞아 죽었다. 가족 모두에게 끔찍한 트라우마였다. 다른 사고사보다 총살 트라우마는 특히 두려움이 커 다들 충격이 크다. 조카 둘도 엄마와 함께 있지만, 뉴스에서 계속 아빠의 죽음에 대해 ‘총을 난사했다, 태웠다’로 보도하는데 어떻겠나. 두 아이가 고등학생, 중학생이다. 죽음을 수긍하고 받아들이겠나. 제수씨는 나한테 일을 키우지 말아 달라고 한다. 그래도 나는 수색할 당시에 8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구조를 기다렸을 동생의 죽음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동생에게 죄를 짓는 거라고 생각한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 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25일 사과했다. 어떻게 보셨나.

“한발만 쐈으면 가슴이 덜 아팠을 것 같다. 36시간 차가운 물 속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렸던 동생에게 총탄 10발을 쐈다고 하는데…유족으로서 용서한다고 해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그래도 동생시신을 찾고 인계받기 위해선 그냥 수용한 거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남북관계 개선은 평생의 염원과 소망 아니겠나.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군이나 정부에서 유족 대표에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는 건 비참한 현실이다. 제수씨에게 해양수산부 장관 명의로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는 위로서 한 장이 온 게 전부다. 사건이 터지고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통일부에 전화를 돌렸는데 알아보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여당 등은 김 위원장 친서 하나를 가뭄의 단비처럼 생각하면서 이용하고 있지 않나. 애통한 심정이다.”

-앞으로 어떤 요구사항을 전달할 계획인가.

“지금은 시신수습이 가장 먼저다. 그 뒤엔 남북공동진상조사로 진상규명하고 잘못이 드러나면 책임자들을 엄중문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생 죽음에 국가책임이 있으니 보상청구해보자는 제안도 들어오는데 거절하고 있다. 몇억원 보상 안 받아도 상관없다. 동생 명예만 지켜지길 바랄 뿐이다. 당장은 합참 쪽에 동생이 남쪽 바다를 표류했던 행적을 강하게 물어볼 계획이다. 차라리 동생이 바다를 떠다니다 우리 군이 실수로 쏜 총에 맞아 죽었으면 그나마 덜 억울할 것 같다. 조류대로 넘어가 북한군으로부터 무자비하게 난사 당하지 않았나. 북쪽 바다로 넘어갈 때까지 도대체 우리 군은 뭘 했는지 모르겠다. 내 동생의 36시간을 묻고 싶다. 살릴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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