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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코로나에 빼앗긴 ‘배움의 기회’, 2400만명 아이들 돈벌이 내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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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문 닫고 부모 수입은 줄어들자

아이들이 가족부양 최전선 나서

공사판 나가고 성매매 시달리기도

유엔 “학교 등록률 등 성취 무너질판

경제활동 재개 자원을 학교에 써야”


한겨레

인도 다람살라의 한 광장에서 지난 23일(현지시각) 한 어린이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 곁에서 풍선을 갖고 놀고 있다. 다람살라/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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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도 서남부 카르나타카주의 공업도시 투마쿠루. 이곳 외곽에 위치한 공공 아파트에선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6~14살 사이 어린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방 대신 더러운 자루를 짊어지고 아이들이 향하는 곳은 학교가 아니라 쓰레기장이다. 신발 살 돈도 없어 맨발인 아이들은 그 더러운 쓰레기 더미에서 유리 잔해 등에 발을 찔려가며 재활용이 될 만한 쓰레기를 줍곤한다. 그렇게 해서 벌어들이는 돈이래봐야 한국돈 몇 십원 수준이다. 11살 라훌은 “이런 상황이 정말 싫다”고 말했다. 라훌의 장래희망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의 담임 교사는 영민한 라훌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학교로 돌아갈 날이 멀어지면서 그 꿈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2.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14살 소녀 수를리나는 온 몸에 은색칠을 하고 동네 주유소에 나가 행인들에게 구걸을 한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작은 조각품을 만들어 내다팔던 아버지가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수를리나는 구걸해 벌어들인 돈을 매일 어머니에게 가져다준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이게 내 삶인 걸요. 우리집은 가난해요. 내가 다른 뭘 할 수 있겠어요.” 수를리나는 코로나19로 지난 3월 학교가 문을 닫기 전까지만 해도 6학년으로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때때로 교과서를 읽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며 “그냥 포기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전세계 수많은 빈곤층 어린이들이 학업을 중단한 채 일터로 내몰리고 있다. 학교가 문을 닫게 된데다, 부모가 일자리를 잃거나 수입이 줄게 되면서 아이들이 가족 부양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27일(현지시각) 학교 대신 더럽고 위험한 불법 노동에 내몰린 전 세계 어린이들의 실태를 전하며, 수년간 쌓아온 교육을 통한 빈곤 탈출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생겼다고 보도했다.

유엔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학교 폐쇄 조처가 10억명 넘는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이 가운데 2400만명 이상의 아이들이 학업을 중단한 채 일자리로 내몰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학령기 어린이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도에서는 학교 대신 일터로 내몰리는 아이들의 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현재 인도는 라훌 같은 14살 미만 어린이의 노동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이 법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높은 빈곤율 탓에 코로나19 이전에도 어린이 불법 노동이 만연했던데다, 코로나19 대처에도 버거워 당국이 제대로 감독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값싼 노동력의 아이들은 공사현장이나 담배 제조공장 등 위험하고 불법적인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다른 나라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케냐에선 10살짜리 아이들이 모래 채굴 작업을 하고 있으며, 서아프리카에선 같은 연령대의 아이들이 코코아 농장에서 잡초 제거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심지어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에선 강제결혼이나 성매매에 내몰리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일단 아이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 학교로 돌아오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선 술집이나 체육관, 식당 등의 영업 재개를 허용하면서도 학교 폐쇄 조처를 지속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유니세프의 코닐리어스 윌리엄스 아동보호국장은 “어린이 노동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학교 등록률 및 문해력 향상, 사회적 이동성 증가와 어린이 건강 증진 등 최근 몇 년간 이뤄낸 성취를 허물게 될 것”이라며 “진심으로 교육을 믿는 지도자들이라면, (영업 재개 등에 들어간) 이 자원을 학교에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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