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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쌀 15포대 있었는데...모녀는 왜 숨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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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시신 발견 20일 전 사망 추정돼

타·자살 흔적없이 부검서도 ‘사인불명’

조선일보

일러스트= 안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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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한 연립주택에서 정신질환을 앓던 모녀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주변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단절된 상태로 살던 모녀의 생사는 “집에서 악취가 난다”는 이웃의 신고가 있기 전까지 3주동안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28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5일 오전 11시 3분쯤 창원시 마산회원구 한 연립주택에서 엄마(52)와 딸(22)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바로 이웃이 “집에서 심하게 썩는 냄새가 난다”며 집주인에게 호소했고, 집주인이 모녀의 집에서 인기척이 없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소방당국과 함께 모녀의 집을 강제로 개방했을 당시 둘은 나란히 누워있는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모녀는 발견되기 20일 전쯤인 8월 중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간 두 사람을 찾는 신고는 없었다.

이웃들은 “딸은 외출하는 것을 거의 못봤고, 엄마도 가끔 집 밖을 나가는 것을 봤지만 주변 사람들과 교류는 없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모녀는 휴대전화도 없었다.

경찰은 타살·자살 모두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부검 결과 두 사람 신체에 외상 흔적이 없고, 독극물 등 약물 성분도 검출되지 않았다. 출동 당시 현장 또한 외부 침입 흔적이 없었다. 유서나 자살 등에 사용되는 도구 등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

여름철에 사망한 탓에 시신 부패 정도가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모녀의 사인은 현재로선 ‘불명’으로 나온 상태다.

본지 취재를 종합해보면 모녀는 2018년부터 함께 살았다. 엄마는 1998년쯤 딸을 낳았지만 2011년 남편과 이혼했다. 이 시기 한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딸은 창원의 한 복지시설에 맡겨졌다.

이후 2018년 딸이 성인이 되자 엄마가 시설에 찾아와 딸을 퇴소시키고, 데려갔다. 모녀는 엄마가 인근 시장에서 쌀을 팔거나, 일용직 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자폐증세가 있는 딸은 바깥 외출 없이 거의 집에서 생활했다. 숨진 두 사람에겐 타살과 자살 흔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망 원인을 두고 갖가지 추정이 나오고 있다. 엄마가 돌연사 한 뒤, 이후 딸이 음식을 먹지 않아 아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두 사람 모두 별다른 병원진료 기록 등은 없었다. 딸을 보호했던 사회복지시설에서도 딸의 자폐 증세가 가벼웠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설의 도움을 받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했다. 엄마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끼니조차 챙기지 못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

모녀가 발견된 집엔 쌀 15포대와 김치 등 반찬류까지 먹을 것도 있었다. 다만 시설 퇴소 후 엄마에게 간 뒤 딸의 증세가 악화됐는지 등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엄마는 딸의 장애인 등록을 거부해 딸은 공식적으로 장애 판정은 받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동주민센터가 기초수급자 신청 절차를 안내했지만 스스로 포기서를 제출해 도움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가 세상과 완전히 벽을 쌓은 것도 아니었다. 2019년 5월부터 시설 보호 종료 아동에게 지급하는 자립수당을 올해 8월까지 매월 30만원씩 지급받아왔다. 해당 수당은 본인 또는 대리인을 통해서만 신청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부검에서 타살 혐의점은 없고 자살을 추정할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며 “돌연사, 아사 등도 모두 여러 가능성에 대한 추정일 뿐 명확한게 아니기 때문에 추측성 보도는 삼가달라”고 말했다.

[김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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