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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말고 뭘 잘할지 몰라, 이제부터 진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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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야구 인생 마치는 LG 박용택

은퇴시점 직접 결정 2500안타 눈 앞

일부 팬 반발로 은퇴투어 무산도

울보택 아닌 우승택 별명 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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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이 서울 잠실구장 더그아웃에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19년간 LG에서만 뛴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작은 사진은 연습 스윙을 하는 박용택.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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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요? 눈곱만큼도 없어요.”

마지막이 코앞인 선수 표정이 어쩌면 저리 밝을까. 최근 서울 잠실구장에서 만난 프로야구 LG 트윈스 외야수 박용택(41)을 만났다. 은퇴 심경을 물었는데 경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선수 유니폼을 벗는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90년 시작한 야구를 30년 채우고 그만두는 것이다.

2019년 LG와 2년간 계약한 박용택은 당시 “2020시즌 뒤에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야구를 하는 마지막 날만큼은 직접 결정하고 싶었다. 그날이 하루하루 다가왔고, 이제 며칠 안 남았다. 그는 “우울해지기 때문에 끝이라는 생각은 안 하고 지내려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시즌이 맞긴 맞나. 박용택의 타격은 여전하다. 부상으로 잠깐 자리를 비웠지만, 시즌 타율 0.302, 2홈런 30타점을 기록 중이다. 프로야구 통산 최초 2500안타에는 3개(28일 현재)만 남겨두고 있다. 3일 잠실 NC전에서 역전 3점 홈런을 때리자, 야구 관련 커뮤니티 조회 수 1~10위 게시물이 모두 박용택과 관련된 거였다. 박용택은 "올해 그런 임팩트는 처음이었다. 짜릿한 감동이랄까, 그런게 있었다. 2500안타? 큰 감동이라기보단 월급날 같은 거 아닐까"라고 했다.

박용택은 “지인들은 ‘아쉽다’고 하는데, 난 솔직히 당장 그만둬도 괜찮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야구는 내 몸을 힘들게 했다. 아마 전 세계 야구선수 중 나보다 배트를 많이 돌린 사람도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40대이지만 몸은 후배에 뒤지지 않을 만큼 탄탄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안경도 공을 더 잘 보고 싶어서 썼다. 박용택은 "한 120개 정도 있는 것 같다. 때와 상황에 맞춰 쓴다. 대학교 4학년 때 라식 수술을 받았다. 일상생활엔 문제가 없다. 다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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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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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은 “부모님이 건강하게 낳아주셨다. 시즌에는 야구 외에 다른 건 안 한다. 최근에야 골프도 한 번씩 치는데, 야구장 밖 삶은 재미가 없다. 스트레스도 많았다. 초등학교 이후 야구를 즐긴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노력이 경험으로 축적됐다. 몇 년 전까지도 ‘몸이 안 따른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이제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은퇴를 앞두고 마음 아픈 일을 겪었다. 프로야구선수협의회에서 박용택의 ‘은퇴 투어’를 기획했다.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팬이 반발했다. 논란이 일자 그가 나서서 고사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후배의 은퇴 투어는 축하 속에서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구단과 후배는 그런 그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인사와 꽃다발로 인생 2막을 축복했다. 그는 “많은 분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별명이 많아 ‘별명 부자’인 박용택이 최근 많이 들은 표현은 ‘LG의 심장’이다. 19년간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그는 “김기태 감독님이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의지대로 되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그렇다. 입단 당시 8개 구단이었는데, 그중 가장 좋아한 LG 지명을 받았고, 은퇴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많은 감독, 코치를 겪은 박용택이 꼽는 ‘최고의 은사’는 누굴까. 그는 2007~09년 함께했던 김용달 타격코치(현 삼성)를 꼽았다. 두 사람 모두 확고한 타격 관을 가진 한 분야의 ‘달인’이다. 그런 만큼 의견 충돌도 많았다. 역설적으로 그런 논쟁이 그의 타격을 완성했다.

박용택은 “2007년 WAR이 타자 5위 정도였다. 그런데 코치님도 '포기'하지 않으셨다. 보통 코치라면 그렇게 싸우고 ‘쟤 안 써’라고 할 거다. 김용달 코치는 그러지 않았다. 한동안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내가 부진하자 코치님이 ‘내가 미안하다. 좋은 선수를 만들고 싶어 너를 괴롭혔다. 편할 때 도와달라면 돕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코치님이 이야기한 게 내 스윙에 녹아 들어가 있었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꼽는 것도 2008년이다. 박용택은 그해 데뷔 후 처음으로 100경기를 채우지 못했다. 시즌 타율도 0.257에 그쳤다. 박용택은 "이대형, 최동수, 안치용, 이진영 등 팀내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나는 아니었지만 2009년 시즌 전 예상도 '주전이 아니다'라는 쪽이 많았다. 그런데 그 시즌 성적(타율 0.372, 18홈런)이 좋았다. 자신감이 생겼던 순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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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경험은 자신만의 루틴으로 완성됐다. 박용택은 상황에 맞춰 수십 가지가 넘는 스탠스와 타이밍을 가져간다. 그는 "팀에서 제공하는 분석 시스템이 있다. 핸드폰으로 검색하면 다음날 선발투수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음날 선발투수가 결정되면 최근 3경기, 좌타자 상대 장면을 본다. 그 투수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에 맞는 타격 느낌을 생각한다. 이후 타이밍을 체크한다. 그러면 '너는 죽었다'라는 희망이 생긴다"고 웃었다.

늘 행복했던 건 아니다. 박용택이 입단한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한 LG는 이후 10년 연속으로 가을야구를 하지 못했다. 2013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자 그는 눈물을 보였다. ‘울보택’ 별명을 얻었다.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는 “(은퇴 투어 논란 당시) ‘팬이 가장 많은 팀인데 우승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 점은 인정한다. 단체 종목 선수에게 우승보다 중요한 건 없다. 올해는 꼭 ‘우승택’이라는 별명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

은퇴 이후 계획은 세웠을까. 박용택은 “가장 하고 싶은 건 놀고먹는 것”이라며 웃었다. 이어 “사실 미국에 건너가 연수하고 싶었는데 상황이 안 좋다. 방송 출연 요청이 많아 일단 한 번 해보려 한다. 해설 등 야구와 관련된 것은 모두 해보고 싶다. 내가 뭘 잘할지 아직 모르니까. 인생의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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