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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사 없는 거래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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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 내년 예산안에 담긴 문구 하나가 부동산 중개업계를 들쑤셨다. 지능형(AI) 정부 구축을 추진하면서 중개인 없는 부동산 블록체인 사업에 133억원을 투입키로 한다는 내용이 뒤늦게 알려지자, 정부가 비대면 거래 플랫폼을 만들어 중개업계를 위협한다며 공인중개사들이 집단 반발에 나선 것이다.

논란이 됐던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가 공인중개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거래 플랫폼이 아니라 AI를 활용한 부동산 공적장부(공부)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중개사들의 시위도 오해에서 빚어진 한바탕 소동으로 그치게 됐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반발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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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인중개사협회 회원들이 24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중개인 없는 부동산거래시스템 구축’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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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의 발단은 기획재정부가 얼마 전 발표한 예산안에 ‘중개인이 없는 부동산 거래’라는 문구가 들어가면서 비롯됐다. 지난 7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범부처 공통으로 발표한 ‘디지털 뉴딜’ 보도자료에 담긴 ‘블록체인을 활용한 부동산 거래’가 기재부 예산안 자료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중개인이 없는’이란 수식어가 붙으면서 혼란이 생긴 것이다.

‘중개사 없는 거래’가 비대면 거래 플랫폼이냐는 논란에 예산안을 만든 기재부도, AI 정부를 추진하려던 과기부도, 부동산 거래 관할인 국토교통부도 바로 명확하게 답할 수 없었던 것도 이래서였다.

어쨌거나 중개업계 우려처럼 앞으로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AI 기술이 만들어 내는 비대면 부동산 거래 시스템은 공인중개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일이다. 주택 외관과 내부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매매·임대 가격과 권리관계 등 해당 부동산 물건에 대한 정보를 통합된 디지털 장부 하나로 확인하는 것쯤은 시스템 통합의 영역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실제 거래 형태는 에스크로(escrow)를 둔 기존 전자상거래 시스템과 유사하게 이뤄질 수도 있다. 기존 공인중개사와 비슷한 형태의 ‘온라인 부동산 거간’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가 구축해 놓은 일종의 온라인 ‘오픈마켓’ 같은 시스템을 활용한 거래니, 부동산 계약 당사자로서는 부동산을 사고팔 때 중개사에게 줘야 할 수수료 부담이 사실상 사라지는 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

어쨌든 공인중개사들의 밥그릇을 충분히 뺏을 정도가 되니 ‘중개사 없는 거래'를 두고 중개업계가 집단 반발하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더라도 실제 부동산 거래가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고 이뤄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다. 비대면 거래 플랫폼이 갖는 한계 때문이다.

예컨대 단독주택이나 빌라처럼 상대적으로 정형화가 이뤄지지 않은 집이라면 직접 찾아가서 물건을 보지 않고서는 실내 구조를 확인할 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집주인 본인이 AR·VR 기술로 구현해 놓기도 어려운 일이다. 또 비대면 거래 플랫폼이라면 사실상 직거래 형태로 이뤄질 텐데, 이렇게 되면 사기 계약과 같은 거래 사고가 빈발할 문제 가능성도 있다.

직접 보고 확인해야 하는 부동산 거래의 특성상 AI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공인중개사의 자리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중개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양극화에 따라 스스로 도태되는 중개사는 늘 수 밖에 없다. 시스템이 그들의 밥그릇을 뺏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이 존폐를 가르는 것이다.

이미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여러 나라에선 중개와 감정평가, 금융·세무·법무 컨설팅을 제공하는 종합부동산회사가 성업 중이다. 국내에서도 중개 종합 서비스를 선보이는 부동산 중개법인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서비스 연계를 키워가는 개인 중개사들이 점차 늘고 있다.

1년에 2만명 안팎의 공인중개사가 새로 쏟아져 나오고, 11만명 가까이가 종사 중인 중개업계. 심해진 부동산 규제 탓에 매매와 임대 거래가 줄면서 업계 종사자들의 처지가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계절에 한 번 도장을 찍는다는 중개사도 있지만, 때론 도장 한 번이 웬만한 직장인 1년치 연봉인 경우도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직 할 만하지 않은가. AI 위협보다 도태되지 않을 생존 경쟁력을 걱정할 때다.

전태훤 선임기자(besa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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