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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서지현 인사보복 의혹' 무죄…안태근은 웃으며 법정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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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29일 오후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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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서지현 검사는 “8년 전 안태근 전 검사장에게 장례식장에서 성추행을 당했고, 이후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는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그로부터 약 2년 8개월이 흐른 29일 법원은 안 전 검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성추행 혐의는 제외…직권남용 혐의로 기소



안 전 검사장이 해당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건 이번이 네 번째다. 그는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2015년 하반기 검사인사에서 담당자에게 서 검사를 창원지검 통영지청으로 전보시키는 인사안을 작성하게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서 검사는 당시 수원지검 여주지청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지방검찰청 소속 소규모 지청에서 일한 검사는 자신의 희망을 우선 배려한다는 검찰 인사제도가 존재한다. 서 검사가 여주치정에 머무르기를 원했지만 다시금 소규모 지청인 통영지청에 배치된 건 인사 원칙에 어긋난 것이고, 안 전 검사장이 검찰국장의 권한을 남용해 인사담당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성추행의 경우 2010년 발생해 고소 가능 기간이 지나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없어 혐의에서 제외됐다.



1심에 이어 2심도 징역 2년 선고



1심은 안 전 검사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1심은 “성추행 사건이 검찰 내외에 알려지자 서 검사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사직을 유도하려는 동기가 충분히 있었다”고 봤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사담당자는 서 검사를 여주지청에 유임시키거나 규모가 큰 검찰청에 배치하는 인사안을 작성했다가 이후에 통영지청으로 변경했는데, 이는 안 전 검사장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안 전 검사장은 “언론보도를 접하기 이전까지 서 검사 성추행 사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반발했다. 또 “서 검사에 대한 인사는 복무평가와 세평 등을 종합한 결과일 뿐 원칙과 기준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2심 역시 그를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 ‘의무 없는 일’에 대한 기준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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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인 서지현 검사가 지난 5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문화마당에서 열린 여성안전 정책자문단 위촉식에 참석해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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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지난 1월 대법원에서 반전을 맞이한다. 안 전 검사장에게 죄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은 안 전 검사장의 직무를 보조하는 실무 담당자가 한 일이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는지를 보기 위해서는 관련 법령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규모 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한 검사를 차기 전보인사에서 배려하는 제도는 인사담당자가 지켜야 할 절대적 기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 검사가 통영지청으로 발령 난 건 인사담당자가 여러 기준을 종합해 판단할 수 있는 일에 해당하기에 안 전 검사장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재판부 “통영지청 발령은 직무 범위에 해당”



그러자 검찰은 지난달 파기환송심에서 직권남용 상대방을 ‘인사 담당자’에서 ‘서 검사’로 바꾸는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했다. 서 검사를 통영지청에서 근무하게 한 것이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2부(반정모·차은경·김양섭 부장판사)는 대법원의 법리를 그대로 인정했다. 직권남용 대상이 서 검사라 하더라도 그 역시 공무원이기에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고, 그것이 발령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검사는 누구나 전보의 대상이 되는데 서 검사를 통영지청에서 근무하게 한 것이 직무 범위를 벗어난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안 전 검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안 전 검사장은 무죄 판결 직후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생 많으십니다. 추석 잘 보내세요”라는 인사만을 남긴 채 웃으며 법정을 떠났다.



높아진 직권남용죄의 벽…조국 재판에도 영향?



안 전 검사장에 대한 대법원 판단을 시작으로 법원에서는 직권남용죄에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이른바 ‘문화체육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청와대와 문체부, 예술단체 간 업무혐의는 직권남용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 6명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장관은 민정수석 재직 시절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비위 혐의가 발견됐음에도 감찰을 중단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대법원 법리에 따르면 지시의 대상이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라면 법령에서 정한 직무집행 범위를 벗어나는 일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조 전 장관은 “감찰 무마가 아닌 민정수석의 정당한 업무지시”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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