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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대리시험=오픈북, 부당청탁=미담" 수구세력 與 해괴한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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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갈라치기 정치가 언어마저 갈라

국민의 죽음에도 대통령을 깨우지 못하고

이념적 착란에 빠진 수구 민족주의 세력

진보, 수구 민족주의 망상과 결별할 때다



민주당의 사회 방언



중앙일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언어가 혼란스럽다. 마치 바벨의 도시에 사는 느낌이다. 민주당의 언어가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조국 사태 이후 부쩍 심해진 느낌이다. 민주당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이미 국민의 40%만 이해하는 ‘사회 방언’(sociolect)이 된 지 오래. 나머지 60%의 국민은 벌써 그들과 정상적 소통을 하는 게 어렵다고 느낀다. 이는 민주당의 정치적 대중 소통이 일상의 영역을 떠나 이미 이념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리라.

오염된 언어

언어의 오염은 의미론의 혼란으로 시작된다. 민주당 사람들은 종종 일상의 용어를 엉뚱한 의미로 사용한다. 증거인멸을 ‘증거보존’, 대리시험을 ‘오픈북’이라 부른 유시민 작가의 어법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그런 식으로 부당 청탁은 ‘미담’이 되고, 장기 휴가는 ‘안중근 정신’이 되고, 제보자는 범죄자(‘단독범’)로 몰렸다. 대통령 자신도 후보 시절 제 지지자들의 온라인 린치를 ‘재미있는 양념’이라 칭한 바 있다.

논리의 규칙도 파괴된다. 누군가 자식의 스펙을 조작했다면, 잘못은 그 사람에게서 찾는 게 정상이리라. 하지만 민주당 사람들의 논리는 색다르다. “이 불공평한 상황은 조국 후보자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계층구조와 입시제도가 만든 것이다.” 표창장을 위조하는 것은 보통 파렴치하다 일컬어진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은 거기서 거꾸로 추론을 한다. 고로 “엄마는 위대하다. 정경심은 위대하다.”

아예 맥락을 떠난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후보 시절 대통령은 세월호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너희들의 혼이 천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은 이해가 간다. 어린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은 해석이 안 된다. 아이들의 혼이 천만 촛불이 된 것이 어디 고마워할 일인가.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렇게 어휘·어법·맥락 모두에서 이렇게 일상 언어와 차이가 나기에 국민의 대다수는 민주당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대다수의 귀에 민주당 사람들의 발언은 망언 아니면 실언으로 들릴 뿐이다. 민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다르다. 그들은 그 망언이나 실언을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여긴다. 결국 국민의 60%와 40%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셈. 갈라치기 정치가 빚은 언어학적 참극이랄까.

생명을 존중하는 계몽군주?

중앙일보

퍼스펙티브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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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사살 사건은 나라를 다시 바벨의 도시로 바꾸어 놓았다. 이번에도 민주당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말을 늘어놓았다. ‘뉴스공장’의 김어준은 북한군이 사살당한 분의 시신을 불태운 것을 ‘화장(火葬)’이라 불렀다. 민주당의 이낙연 대표도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화장은 장례의 한 형식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북한군은 사살한 시신을 소각했지 돌아가신 분께 장례를 치러드린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의 통전부에서 사과문을 보내온 것을 유시민 작가는 “희소식”이라며 반겼다. 과연 희생자 유가족에게도 기쁜 소식이었을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 사건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자”고 했다. 한 개인이 당한 ‘화’(禍)가 어느새 온 민족이 맞은 ‘복’(福)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이 비극적인 사태에서 그들은 그저 “희소식”과 “위복”만을 본다. 여기에 희생자와 그 유족에 대한 배려는 없다.

비논리적 어법도 여전하다. 설훈 의원은 이 모두가 남북 핫라인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한다. 그럼 남북 정상 간의 친서는 대체 무슨 라인으로 오간 것일까? 안민석 의원은 “종전 선언이 이뤄졌다면 이번에 이런 불행한 사태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체 이 사건이 종전선언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일까. 중국과 북한은 어디 전쟁상태라서 북·중 국경에 월경자들을 사살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는가?

맥락을 이탈한 발언도 나왔다. 유시민 작가는 김정은 위원장을 “계몽군주”로 추켜세웠다. 지금이 그를 칭송할 때인가? 청와대에서는 친서를 공개했다. 거기서 대통령은 ‘위원장님의 생명존중 의지에 경의’를 표했다. 장성택 처형과 김정남 암살을 지시한 이에게 할 소리는 아니다. 그냥 외교적 언사로 봐준다 한들, 자국민이 사살당한 상황이 그런 문구가 든 친서를 공개하기에 적합한 맥락인가?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어휘도 이상하고 논법도 해괴하고 맥락도 생뚱맞다. 그들의 이상한 언어에서 우리는 악재를 호재로 바꾸려는 성급함, 북의 잘못을 슬쩍 덮어두고 넘어가려는 얄팍함, 종전선언 카드로 레임덕을 막아보려는 다급함을 본다. 언어를 왜곡시켜가면서 그들이 애써 덮으려 하는 것은 물론 ‘바다 위의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군에게 사살당한 후 불태워졌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이 그렇게도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이제는 아예 당 차원에서 피살자를 ‘월북자’로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월북을 했든 표류를 했든 그게 왜 중요한가. 설사 월북을 시사하는 정황이 있다 한들, 이 시점에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사실을 굳이 공개해 강조할 필요는 없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동기가 무엇일까? 혹시 ‘대한민국이 싫어 월북한 사람까지 국가에서 지켜줄 의무는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리라. 이 두 과제가 충돌할 때 어느 것을 앞세워야 할지는 분명하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에 있다. 그 어떤 대의도, 그 어떤 명분도, 그 어떤 과제도 국민의 생명 위에 놓일 수는 없다. 남북 관계도 실은 이 최고의 목표 아래에 포섭된 하위 가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이 두 가치의 위상이 뒤바뀌어 있다. 그들은 남북 관계를 모든 가치에 선행하는 최종 목표로 간주한다. 한 개인의 생명 따위는 그들에게 그저 남북문제의 종속변수일 뿐. 그러니 자국민이 비참한 일을 당했는데도 태연히 “그게 새벽 3시에 대통령을 깨울 일은 아니다”(설훈)고 얘기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빌어먹을 ‘편향’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수구 민족주의의 이념적 편향

임기 말 레임덕을 피하려고 두는 무리수겠지만, 아마 또 다른 배경이 있을 게다. 정권을 이끄는 586세대의 몸속에 아직 청산되지 않은 습속으로 남아 있는 민족주의 이념이 그것이다. 민주당의 586에 통일은 ‘공리’다. ‘모든 문제는 분단에서 비롯된다.’ 이 명제를 그들은 증명 없이 참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비극의 산실인 분단은 당연히 미국과 손잡은 친일파와 그 후예들의 탓으로 여겨진다.

그들의 모든 사유는 이 공리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종전 선언이 이뤄졌다면 이번에 이런 불행한 사태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의 만행도 분단을 가져온 친일파의 탓이 된다. 김원웅 광복회장의 말이다. “그간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해 존재해온 세력이 끊임없이 민족을 이간시키고, 외세에 동조하면서 쌓아온 불신이 이번 불행의 근본적 원인이다.”

이 NL(민족해방운동론) 공리는 다른 사안에도 적용된다. 『조국백서』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이 모든 사태의 시작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관련 판결이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기초한 배상 요구가 법적으로 정리되자 친일 세력들은 들끓었고 외교가 어떠니 경제가 어떠니 하며 문재인 정부를 공격했다. 이 나라 도처에 친일 분자들이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상황이었다.”

그 모두가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자주적 입지를 만들기 위한 민주 세력의 역사관을 무너뜨려 보겠다는 자들의 반란”이라는 것이다. 가히 착란증이다. “이 공세는 이후 정의기억연대를 상대로 다시 되풀이된다.” 윤미향 사태도 똑같이 처리됐다. 그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은 언어 자체가 이념적·세계관적이기 때문이다. 그 헛소리는 절대 논리로는 반박되지 않는다. 오직 개종만이 구원이다.

“우리 국민의 생명보다 남북 관계를 우선시하는 시각은 교정되어야 한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모처럼 제대로 짚었다. 이제 진보도 수구 민족주의의 이념적 망상과 결별할 때가 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통일의 수단이 아니다. 최고의 가치는 국민 개개인의 생명이고, 국가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그 일에 실패하고도 국회에서 규탄 결의안조차 못 낸다. 슬픈 일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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