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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매일 밤 기다려"···인생역전 꿈꾸며 테슬라 주식 산 개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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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시대① 밤잠 잊은 서학개미

직장인 최주은(28·가명)씨의 주식계좌는 밤낮없이 일한다. 국내 주식과 미국 주식에 투자해 놓은 상태여서다. 최씨는 올 초만 해도 삼성전자 같은 국내 주식에만 투자해왔다. 그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으로 미국 주식이 폭락한 지난 3월, 회사 동기 추천으로 아마존과 넷플릭스 주식을 1200만원어치 샀다.

지난 8월 두 종목을 팔아 700만원(59%)가량 수익을 냈고, 전세금을 벌어볼 요량으로 9월 들어 미국 주식을 다시 사 모으기 시작했다. 현재 주식계좌 '보유종목'엔 애플과 테슬라, 엔비디아 등 10여 개 기업이 있다. 투자금은 총 4800만원(한국 주식 600만원, 미국 주식 4200만원). 예금을 깨고 신용대출을 받아 마련했다. 이젠 밤마다 주식 창을 들여다보는 게 일상이 됐다. 저녁 모임 때도 틈틈이 주가를 확인할 정도다. 최씨는 "미국 주식은 한국과 달리 가격제한폭이 없어 주가가 오를 때 많이 벌 수 있다"며 "매일 밤 10시30분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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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해외 주식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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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53조원 해외 투자 역대 최대



프리랜서 유지욱(37·가명)씨는 지난 8월 31일 액면분할(5대1)한 테슬라 주식을 주당 500달러에 1000만원어치 샀다. 지인에게서 '테슬라는 1400달러(분할 전 기준 7000달러)까지 갈 것 같다'는 말을 듣고서다. 투자금은 마이너스통장으로 마련했다. 기술주에 관심이 생긴 그는 혁신기업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도 투자하기 시작했다. 'ARK이노베이션 ETF(ARKK)'가 대표적이다. 유씨는 "최근 테슬라 주가가 내려 속이 쓰리지만, 길게 보면 오를 것 같다"며 "미국 기술주에 적금처럼 매달 50만원씩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생 역전'을 꿈꾸며 월급을 쏟아붓고 예·적금을 깨서 해외 주식을 산다. 확신이 서면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자금을 끌어모음)'도 거리낌이 없다. 해외 주식 투자 열기가 뜨거운 요즘, '서학 개미(해외 주식 투자자)'의 단적인 모습이다.

나라 밖에서 투자 기회를 찾는 한국인이 급격히 늘어난 건 올해 초부터다. 코로나19로 세계 증시가 폭락한 뒤, 강한 'V자' 반등을 보이면서 해외 주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5일까지 국내 투자자가 해외 주식을 사고판 거래대금은 1307억 달러(약 153조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해외 주식 결제액(409억8500만 달러, 약 48조원)의 세 배가 넘는 수치다. 특히 20~30대가 '서학 개미'의 선봉에 섰다. 한국투자증권이 해외 주식을 소액으로 거래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미니스탁'을 분석한 결과, 이용 고객(약 20만명)의 71.2%가 20~30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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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거래액.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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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등 원자재 ETF에도 과감히 베팅



대개 애플 같은 우량주에 투자하지만, 화끈한 수익을 노리고 레버리지 ETF나 금·원유 같은 원자재 ETF를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 김성민(33·가명)씨는 지난 4월 미국 나스닥지수 움직임의 세 배를 추종하는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 ETF를 주당 66달러에 8000만원어치 샀다. 무조건 오른다는 확신에 신용대출에 마이너스통장까지 끌어 썼다. 김씨는 "시드머니(종잣돈)가 적어 대출 없이는 수익이 별로 나지 않을 것 같았다"며 "6월, 8월쯤 많이 올랐다 싶어 나눠 팔아 6000만원 넘게 벌었다"고 했다.

은행원 이승우(38·가명)씨도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를 비롯,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등 대형 기술주 투자로 돈을 벌었다. 물론 아픈 경험도 있다. 국제 유가가 곤두박질치던 지난 3월, '벨로시티셰어즈 3X 롱 원유(UWT)' 상장지수증권(ETN)을 샀다가 한 달 만에 700만원을 잃었다. 이 ETN은 유가 하루 등락률의 세 배를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인데, 유가 급락으로 투자자 피해가 우려되자 상품 운용사가 자진 상장 폐지했다. 이씨는 "유가가 더는 안 내려갈 것 같아서 베팅했는데, 3배수라 유가가 조금만 하락해도 주가가 10~20%씩 뚝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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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투자자가 많이 산 해외 주식.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미국 기업, 절대 안 망할 것 같다"



서학 개미의 투자 열풍을 이끈 원인은 복합적이다. 이승우 씨는 "국내 주식은 박스권에 갇혀 있지만, 미국 주식은 계속 고점을 뚫으며 우상향한다"며 "특히 대형주의 경우 장기 투자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로선 국내 증시에서 쉽게 찾기 어려운 '고 성장주'에 대한 갈증을 미국 주식에서 푸는 셈이다. "첨단 기술시대에는 1등만 다 먹는 경향이 클 텐데 결국 그게 미국 기업 아니겠냐"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다" 등의 의견도 있다. 편득현 NH투자증권 자산관리전략부 부부장은 "구글이나 애플, 테슬라 등 우량주는 국내 젊은 층이 일상생활에서 접하거나 관심이 많은 주식"이라며 "코로나19는 미국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을 실행에 옮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서학 개미는 어떤 종목을 주로 사담았을까. 국내 투자자가 올해 가장 많이 순매수한 해외 주식은 테슬라로, 20억491만 달러(약 2조3000억원)가량 순매수했다. 테슬라는 올해 높은 급등세를 보여 '저 세상 주식'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 뒤를 애플과 아마존,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가 이었다.

최근 미국 기술주를 중심으로 글로벌 증시가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어, 해외 주식 수익률이 떨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특히 니콜라 주가는 이달 '반 토막'(9월 28일 기준) 났고, 테슬라도 15%가량 하락했다. 코로나19 확산 여부, 미국 대통령 선거 등 대외 불안 요인도 산적해 있다. 『밀레니얼 이코노미』의 저자인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는 "해외주식 열풍은 2017년 이른바 '비트코인 붐'과 유사하다"며 "테슬라나 니콜라 같은 주식에 '몰빵'하지 말고 배당을 많이 주고 장기 고성장해온 주식에 분산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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