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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종합] `유 퀴즈 온 더 블럭` 페이커 "돈 쓰는 데 관심 없다...365일 경쟁한다는 게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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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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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새롬 객원기자]

30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74회에서는 추석을 맞이해 '조선의 힙스터'들을 만나봤다. 이날 방송엔 밴드 이날치, 댄스 듀오 올레디, 프로게이머 페이커, 거액 재산을 기부한 이수영 회장, 해병대 1기 자기님이 유퀴저로 출연했다.

e스포츠의 새 역사를 쓴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이 이날 방송에 출연했다. 그는 롤드컵 3회, 국내 리그 9회 우승, 국제전 통산 127승으로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운 e스포츠 최고의 선수다.

페이커는 집에서 쉴 때 '인싸게임'이라 불리는 '어몽어스'를 즐겨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팬들이 상혁이는 롤하길 잘했다고 하더라"고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페이커는 불사대마왕, 빛상혁 등 여러 가지 별명이 있지만 '우리 혁'이란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는 "뭔가 친근하다"고 말했다.

페이커는 "현재까지 롤드컵이 총 9번 열렸는데 그 중 3번 우승했다. 지금 다른 팀에서 2번 우승한 사례가 거의 없는 걸로 안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3번 우승했다. 국내에선 9번 우승했다는 것도 되게 큰 업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LCK는 2012년부터 개최돼 1년에 두 번 열리는 국내전이다.

페이커는 우리나라가 왜 게임을 잘하냐는 MC들의 질문에 "한국엔 인재 양성 시스템이 잘 돼있다. PC방에서 인재들이 다 나온다"고 말해 가벼운 웃음을 안겼다.

페이커는 연봉이 얼마인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사에선 국내 스포츠 선수 연봉 중 탑급이라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중국에선 100억 받는 선수도 있고 이적료만 100억이 넘는다"고 말했다.

페이커는 "중국이나 외국에서도 러브콜이 많이 왔었는데 한국에 남기로 선택했다"며 "외국에 나가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팬 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시고 가족들 곁에서 뛰는게 저에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페이커는 올 초 재계약을 했다고. 그는 "연봉이 더 올랐냐"는 질문에 "그건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세호가 옆에서 "미소가 밝은 걸로 봐서 오른 거냐"고 장난쳤다.

페이커는 어마어마한 상금을 받지만 돈은 잘 안 쓰는 편이라 말했다. 그는 패션에 관심 없다고도 말했다. 페이커는 게임 외 관심 있는 것으로 "독서를 좋아한다. 집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페이커는 25살인데 팀 내 최연장자다. 페이커는 "20대 중반부터는 거의 전체의 10%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퇴는 나이부터 기량 문제다. 근데 10대에서 20대까지가 많은 이유가 그 때가 가장 머리가 빠른 ??라서"라 설명했다.

페이커는 시즌에 하루 10시간에서 14시간 정도 연습한다고 말했다. 그는 낮 12시부터 연습을 시작해 새벽 3~4시까지 연습한다고 전해 감탄을 자아냈다. 유재석은 "남들이 보면 하루종일 게임하고 돈 벌고 좋겠다고 하지 않냐"고 말했다. 이에 페이커는 "진짜 좋다"고 말해 유재석을 당황케 했다.

페이커는 "8년차 프로게이머가 거의 없다. 그 이유가 게임하다보면 이게 좋아서 시작했는데 일로 오래 하니 힘들다는 것이다"며 스스로도 힘든 점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1년 365일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 힘들다"며 "게임한다고 앉아있는 것도 힘들다"고 전했다.

페이커는 "게임이 진짜 지면 재미없고 이기면 재밌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유재석과 조세호가 공감했다. 페이커는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우승했을 때를 꼽았다. 그는 "그동한 노력했던 것이 다 이뤄진다는 면에서 궁극적 행복인 것 같다"고 말했다.

페이커는 "프로게이머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다. 근데 그 정도로 힘든 적은 있었다. 2018년에 성적이 안 나와 힘들었는데 사람들에게 비난 받는 걸 신경 쓰다보니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 스포츠심리학 박사에게 상담도 받았다고 전했다.

페이커는 앞으로의 계획으로 "또 우승해야 한다"며 "당분간은 비어있는 저를 채우면서 다시 일어나게 할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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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방송에선 조선 팔도에서 가장 통 큰 기부 힙스터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도 출연했다. 유재석은 "이 분 기사를 보고 한 법 뵙고 싶다고 했는데 나오신다"며 기대했다.

이수영 회장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지만 카이스트에 기부해 화제가 됐었다. 그는 "제가 72년도에 기자 생활을 하면서 유럽에 갔는데, 당시만 해도 기자들도 해외여행을 하기 힘들었다. 일제 카메라를 걸고 갔다. 사진 기자를 대동할 수 없으니까"라며 이야기했다.

이수영 회장은 "뒤에 일본 여행객들이 수십명이 오는데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가렸다. 그게 국력이 모자라서 오는 열등감이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 부동산 투자를 하러 갔는데 빌딩을 하나 샀다. 나는 일제 시대 강점기에 자라서 어린 가슴에 일본 놈의 만행, 나라 없는 슬픔, 6.25 전쟁을 겪은 격동기에 살아온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수영 회장은 어렸을 적 동네 사람들을 도와주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자신도 나중에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그는 "과학 발전과 국력에 대한 상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남표 카이스트 전 총장의 연설을 봤다"고 말했다.

이수영 회장은 카이스트와 인연도 없었다. 이 회장은 "한 번 조폭들에게 쫓기느라 카이스트를 지나간 적 있었다. 그 때는 풀밭이었는데 카이스트에 기부하러 찾아갈 때는 빌딩이 꽉 차있길래 기뻤다"고 전했다.

그는 "아직까지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안 나왔다. 삼성전자가 벌어들이는 돈이 연간 국민소득의 20%다. 거기에 카이스트 출신 직원이 20%다. 카이스트 학생을 키우는 것이 곧 국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기부 의도를 밝혔다.

이날 이수영 회장은 또 한 번 기부하겠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는 "앞으로 더 살아가고 정리 안 된 돈이 있다. 기부를 기쁜 마음으로 했고 그걸 하고 나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며 "누구 좀 줘보라"고 조세호에게 한마디를 해 현장에 웃음을 안겼다.

이수영 회장은 1980년대 언론 통폐합 시기 해직 기자 출신이다. 그는 퇴직금 500만원을 받았다. 그는 "트랙터를 사는데 2000만원이 필요해 농협에 가 융자를 받아 샀다. 그땐 낙농 사업을 권장하기 위해 농가에 젖소를 분양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그걸로 돼지와 젖소를 사서 사업 자금을 만들었다.

유재석은 이 회장에게 부자가 되는 방법을 물었다. 이 회장은 "첫째로 근검절약해라. 기회는 앞으로 잡아라. 버스 지나간 다음에 뒷북 치지 말아라"고 했다. 조세호는 "저는 옷 사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나도 요즘 홈쇼핑을 좋아한다. 지금 입는 옷도 몇 불 안 된다. 나는 10불 넘는 옷을 안 산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세호가 "차는 안 타시냐"고 묻자 "차야 벤츠를 타지"라고 말해 두 MC를 웃게 했다.

유재석과 조세호는 이수영 회장 집에 초대도 받았다. 이 회장은 "빈손으로 오라"며 "탤런트들이 무슨 돈을 벌어서"라고 말했다. 조세호는 "형 열심히 해야 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수영 회장은 비혼으로 살아오다 2년 전 법과대학 동창 첫사랑과 결혼했다. 이 회장의 남편은 기부에 대해서 할 수 있는 한 빨리 하라고 이 회장을 독려했다고. 유재석은 "저같으면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든가 액수를 반만 하라고 넌지시 말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수영 회장은 "이번에 기부하면서 내가 몸이 몹시 아팠다. 3개월 전까지도 굉장히 힘들었다"며 "내가 정신이 말짱할 때 이것 하나는 매듭을 짓고 가야겠다는 생각"이라 말했다. 그는 "이제 앞으로는 살아온 그대로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때까지 성실하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성실하게 살 거고. 그러다 죽으면 해피한 삶이다. 나는 지금도 사랑받고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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