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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하버드·예일 출신만 대법관 되나” 트럼프의 학벌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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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연방대법관, 하버드·예일 출신이 각 4명씩

배럿 들어가면 하버드·예일 ‘독점’ 구조 깨져

학벌에 반감 센 저학력층 백인 표심 노린 듯

세계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에 의해 연방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된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가 백악관에서 소감을 밝히는 모습. 배럿 판사는 인디애나주 노트르담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연합뉴스


법조계에 ‘서오남’이란 말이 있다. 서울대 출신의 50대 남성을 뜻한다. 그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를 거쳐간 상당수 대법관이 바로 이 기준에 맞는 인물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주류다. ‘한국 대법관의 평균 스펙’을 의미하던 이 용어는 이제 ‘서오남 이외의 인물 중에서 대법관을 뽑아 대법원의 다양화를 이뤄야 한다’는 사법개혁 요구를 상징하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판 ‘서오남’에 대중이 느끼는 염증을 제대로 읽은 것일까. 최근 타계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연방대법관 후임으로 에이미 코니 배럿(48) 연방고등법원 판사를 지명한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가 드러났다.

◆하버드·예일 아니면 명함 못 내미는 美 대법원

미 백악관은 2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왜 배럿 판사를 새 대법관 후보로 지명했는지 상세히 설명하는 장문의 글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코니 판사가 40대의 젊은 여성이고 입양아 등이 포함된 7자녀를 둔 학부모라는 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와 고등법원 판사를 지낸 검증된 법률가라는 점,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는 자신만의 확고한 소신을 갖춘 점 등은 이미 다 언급된 내용이다. 그런데 배럿 판사의 ‘학벌’을 거론한 점이 눈에 띈다.

백악관은 배럿 판사가 미국 중동부 인디애나주에 있는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최고 성적으로 법률 관련 학위를 취득한 점을 소개하며 “배럿이 대법관이 되면 현직 대법관들 중 하버드나 예일이 아닌 기타 대학 출신의 유일한 대법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서오남’만큼은 아니지만 미국도 연방대법원을 구성할 때에는 스펙, 특히 ‘학벌’을 엄청 따진다. 최고 수준의 명문대 로스쿨을 나오지 않으면 대법관이 되기 어렵다. 이런 경향은 최근 들어 더욱 심해져 현재 미국 대법원은 하버드 출신과 예일 출신이 각 4명씩으로 다른 대학 출신은 아예 ‘전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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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의 최고 명문 하버드대(왼쪽)와 예일대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특정 대학 출신의 대법원 독점 안 돼” 메시지

구체적으로 존 로버츠 대법원장(2005년 취임)과 스티븐 브레이어(1994년 취임), 엘리나 케이건(2010년 취임), 닐 고서치(2017년 취임) 대법관이 하버드대 로스쿨 동문이다. 클라렌스 토머스(1991년 취임)를 필두로 새뮤얼 알리토(2006년 취임), 소니아 소토마요르(2009년 취임), 브렛 캐버노(2018년 취임) 대법관 4명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선후배다.

최근 타계한 긴즈버그 전 대법관의 경우 최종 학위는 컬럼비아대 로스쿨에서 받았으나 그 전에 하버드대 로스쿨을 오래 다녔다. 변호사인 남편이 뉴욕에 있는 법무법인(로펌)에 취업하자 남편과 함께 살기 위해 하버드대를 그만두고 컬럼비아대로 옮겼다. 그래서 긴즈버그 전 대법관도 ‘하버드 출신’으로 분류되곤 한다.

백악관 말대로 노트르담대 출신 배럿 판사가 대법원에 입성하면 하버드와 예일 출신으로만 구성된 대법원의 높은 장벽이 허물어지는 셈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비(非)명문대 출신 판사를 대법관 후보로 내세운 건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고 또 학벌 사회에 반감을 가진 중산층 이하 평범한 백인들의 표심을 노린 전략적 선택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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