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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게 천지 빼까리다!" 전국 뒤흔든 황제 나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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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로 15년 만에 방송 귀환한 나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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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방송화면 캡쳐 ⓒ KBS



"할 거는 천지빼까리니까 밤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천지빼까리는 '매우 많다'를 의미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2020년 9월 30일, 대한민국은 모처럼 '나훈아'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나훈아를 사랑하는 중장년 시청자들이 tv 앞에 앉았고, 자녀, 손주 세대들도 나훈아의 무대, 노래 솜씨에 감탄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나훈아가 지배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빌린 나훈아의 노래 '테스형'이 컬트적인 유행어처럼 불리워졌다. 새로운 밈(meme)이 탄생될 듯 하다.

"아! 테스형! / 세상이 왜 이래 / 왜 이렇게 힘들어"
- '테스형' 중


얼마 전 포털 사이트에서 '트로트'를 검색했더니 연관 검색어에 '트로트 지겹다'라는 검색어가 등장하는 것을 보았다. < 내일은 미스 트롯 >과 < 내일은 미스터 트롯 >을 거치면서, 노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트로트는 문화 산업의 중요 키워드가 되었다.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노년층들은 미디어가 급부상시킨 트로트에 응답했다. 방송가 역시 이 열풍에 맞춰, 수많은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들을 양산했다. 트로트에 대한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음을 고백한다.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이라도, 나훈아를 대하는 태도는 다르지 않을까. 15년만에 이뤄진 '트로트의 황제'의 방송 귀환은 트로트 팬이 아닌 사람들 역시 눈을 돌리게 할만한 소식이었다. 70년대의 라이벌 남진이 잦은 방송 출연 등을 통해 대중에게 더 친숙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면, 나훈아는 신비주의적 면모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훈아는 자신을 둘러싼 신비주의론을 일절 부정한다. 나훈아는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2017년부터 2018년에 걸쳐 '나훈아 드림콘서트'를 열었고, 2019년에는 7개월 동안 '나훈아 청춘어게인 콘서트'를 열면서 전국을 누볐다. 그는 티켓을 사고 콘서트를 보러 온 사람들을 위해서 노래한다.

그는 출연료를 받지 않고 이 공연에 임했다. 코로나 19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해외 시상식이나 아이돌 그룹의 온라인 콘서트처럼, 일부 관객(천 명)을 화상으로 초대해 비대면 공연을 진행했다. 그에게도 이런 공연은 처음이었다. 50인 이상의 모임을 제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면서도, 최대한의 스케일을 모색했다. 평소 나훈아의 콘서트에서 촬영이 금지되는 것처럼,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역시 재방송이나 다시보기가 제공되지 않는다.

나훈아의 공연은 무엇이 다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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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방송화면 캡쳐 ⓒ KBS



나훈아는 콘서트에서 보여주는 스케일의 공연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고민했다. 긴장감을 자아내는 카운트다운 영상이 등장했고, 거대한 배 모양의 조형물이 등장했다. 그 위에서 나훈아가 '고향으로 가는 배'를 부르며 등장했다. 칠순을 넘긴 나훈아의 성량은 건재했다. KBS 관현악단의 장중한 연주와 함께 '고향역'이 이어졌다. 곡에 등장하는 기차 효과음에 맞춰 기관차가 등장했다. 이처럼 나훈아의 공연은 곡의 이야기에 맞는 특수 효과로 가득했다.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와 어우러진 신곡 '모란동백' 역시 서정성을 자아냈다. '물레방아 도는데'를 부를 때는, 젊은 시절의 나훈아와 2020년의 나훈아가 듀엣을 하는 구성으로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켰다. 백발의 노인에게서 청년의 목소리가 나왔다.

"자야자야 명자야 가슴 아픈 어머니 아이고 내 새끼 달래시며 울고
세월은 흘러 모두 세상 떠나시고 저녁별 되어 반짝반짝 거리네"


나훈아가 작사, 작곡한 노래에는 여러 보통 사람들의 세월을 어루만지는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가장 보편적인 대중 가요를 부르는 가수였다. 하림의 하모니카 연주로 시작된 신곡 '명자야'는 '홍시'가 그랬듯, 돌아오지 않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명자야'는 한국 전쟁에서 부모와 헤어진 실향민 '명자'의 시점에서 쓰여진 노래다. 나훈아의 부름을 받아 무대에 선 김동건 아나운서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울음을 참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고향'이라는 이름의 1부가 끝나서야, 나훈아는 화면 너머에 있는 관객들에게 첫 인사를 했다. 2부의 테마는 '사랑'이었다. '사랑', '무시로', '울긴 왜 울어' 등. 수십 년 동안 대중들과 동행해왔던 나훈아표 히트곡들이 이어졌다. '영영'과 '갈무리' 등의 노래들은 어쿠스틱 기타 중심의 포크 스타일로 편곡되기도 했다. 노래의 힘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서울부터 덴마크, 태국, 아프리카 짐바브웨까지, 전 세계에 비대면 관객들이 퍼져 있었지만 나훈아는 그들을 한 곳으로 묶었다.

이처럼 3부 '인생'에서도 다채로운 구성이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트로트 가수의 콘서트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구성들이다. 무대 위에서 옷을 갈아입고, 뮤지컬적인 요소를 곁들이면서 익살스러움을 뽐냈다. 국악 연주단의 화려한 연주 가운데 북을 치는 모습은 웬만한 올림픽의 개막식와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은 규모였다. 헤비메탈 밴드 메써드(Method)와 함께 마지막 곡 '사내'를 부르는 장면은 록스타를 연상시켰다.

공연 최후반부, 나훈아는 '청춘을 돌려다오'를 부르기 전 '우리가 세월에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선, 우리가 세월의 목을 비틀어서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생물학적 나이는 칠순을 넘긴 고령이다. 그러나 나이를 논하기 이전에 나훈아는 자신을 관통하는 세월을 힘껏 붙들고 있는 슈퍼스타였다. '언제까지 노래할 것이냐'는 김동건 아나운서의 질문에 "내려올 자리나 시간을 찾고 있다'며 솔직한 속내를 터 놓았다. 그러나 지금은 내려갈 시간이 아니다. 놀랍게도 여전히, 나훈아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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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추석 특집쇼 '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 KBS



이현파 기자(2hyunp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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