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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천연두, 페스트, 에볼라, 코로나까지…역사를 바꾼 전염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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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실 재앙은 모두가 다 겪는 공동의 문제이지만, 그것이 자기에게 닥치면 여간해서는 믿지 못하게 된다.”

알제리 출신의 작가 알베르 까뮈가 1947년 발표한 소설 <페스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작은 해안 도시 오랑에서 페스트가 발병한 뒤 도시가 폐쇄되며 벌어진 일을 그린 작품이죠.

2019년 12월 31일 ‘우한 폐렴’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해도 코로나19가 전세계인의 일상을 바꿀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코로나19 사망자가 100만명을 훌쩍 넘은 2020년 10월. 사람들은 이제 ‘포스트 코로나(코로나 이후)’가 아니라 ‘코로나 위드(코로나와 함께 사는 삶)’에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코로나 19 이전, 역사를 바꾼 전염병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천연두는 실크로드를 따라

치명적인 전염병들의 특징은 처음 발생했을 때 정체를 빨리 파악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165년 로마에서 천연두가 퍼졌을 때, 사람들은 이 병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천연두는 고열과 물집, 고름이 주요 증상이었습니다. 인도에서 처음 발병한 것으로 추정되는 천연두는 실크로드를 통해 로마까지 퍼졌습니다. 도자기, 비단, 차 등과 함께 바이러스도 함께 퍼진 것이죠. 천연두는 이후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창궐했다 사라졌습니다. 19세기에 영국인 에드워드 제너가 종두법을 발명하며 비로소 치료의 길이 열렸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79년에서야 천연두가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선언했습니다.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사라지게 한 페스트

페스트는 ‘흑사병(black death)’이라고도 합니다. 이름만큼 무서운 이병은 아주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혔습니다. 페스트는 주로 쥐를 통해 감염되는 병이었습니다. 페스트의 창궐도 교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541년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교역의 중심이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속담도 이때 나왔죠. 세계 각국에서 사람과 물품이 모여들면서 페스트균도 함께 들어왔습니다. 특히 배를 통해 쥐들이 따라오면서 페스트균이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가장 번성한 도시에 전염병이 돈 결과는 치명적이었습니다. 페스트는 무서운 속도로 전염됐고, 시신을 다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 하루에도 수천명씩 사망자가 늘었습니다. 당시 정확한 통계가 남아있지 않지만 동로마제국의 인구 4분의 1 정도가 페스트로 사망했을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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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가 창궐한 중세 유럽에서 페스트를 진료하러 다니던 의사의 이미지. 위키피디아


페스트는 1300년대에 다시 창궐해 몽골과 유럽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331년 몽골제국이 다스리던 황허 유역의 헤버이성에서 페스트가 발병한 뒤, 넓고 넓은 몽골제국의 영토만큼이나 페스트도 멀리 퍼져나갔습니다. 페스트는 몽골에서 시작해 1340년대 유럽을 강타했습니다. 유럽 전 지역이 페스트의 공포에 잠식당했습니다. 특별한 치료법도 없었고, 거리 곳곳에 시신들이 쌓였습니다. 1346년부터 1350년 사이 7500만명 이상이 페스트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입니다. 페스트에 대한 공포때문에 당시 유럽에선 집을 버리고 산 속으로 은둔생활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죠. 그때 의사들은 새부리처럼 입 부분이 길게 튀어나온 가면과 모자를 쓰고 진료를 다녔는데, 지금 보면 다소 기괴해보이는 이 모습이 페스트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남아있습니다.

■알고보면 가장 무서운 스페인 독감(1918년 인플루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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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미국 캔자스주의 캠프 펀스턴 군 병원에서 군인들이 새로 발병한 독감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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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8년 시작해 1920년까지 유행했습니다. 첫 발병은 1918년 미국 캔자스주였습니다. 병사 몇명에게서 고열과 통증, 무기력증 등이 발견됐는데 독감과 비슷해 처음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독감은 군대를 중심으로 전세계로 퍼졌습니다. 5억명 이상이 감염됐고, 5000만명~1억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당시 한국에서도 상당히 많은 환자가 발생했고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스페인독감은 조류독감의 일종으로 첫 파동때보다는 1919년 2차 파동 때 더욱 강력한 바이러스로 변이해 퍼졌습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만든 전염병입니다. 유럽에선 유일하게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던 스페인에서 새로운 독감의 출현을 자주 보도하면서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 이병은 스페인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에볼라

에볼라 바이러스는 1976년 콩고민주공화국 에볼라강 인근 마을에서 처음 확인된 전염병입니다. 처음 발병됐을 때 높은 치사율을 보였지만, 이후 수십년동안 발병하지 않아 사라진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2014년을 기점으로 에볼라는 인류 역사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2014년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 서아프리카에 빠른 속도로 번졌습니다. 기니에선 6개월동안 9000명이 감염됐고 그중 절반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에볼라는 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병해, 한국에선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전염병입니다. WHO는 2016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종식됐다고 선언했지만, 2019년 다시 에볼라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국제공중보건위기 상황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WHO는 지난 6월 콩고에서 에볼라가 종식됐다고 발표했는데 이번이 벌써 10번째입니다. 언제 다시 전염병이 창궐할지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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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W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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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코로나19

이밖에도 인류를 공포에 빠뜨린 전염병은 많습니다. 결핵, 장티푸스, 말라리아, 한센병, 매독, 에이즈 등 많은 전염병이 인류와 함께 살고 죽었습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불치병’이라 여겨지던 질환들도 고칠 수 있게 됐지만, 언제라도 우리 앞에 새로운 병, 모르는 병이 나타날 가능성은 있습니다. WHO는 “21세기는 전염병의 시대”라고 선언했습니다. 2002년 중국 광동성에서 시작된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는 짧은 시간에 세계 30여개국으로 퍼졌고, 8000명 이상이 감염됐습니다. 2019년 12월 31일 ‘정체불명의 폐렴’으로 보고됐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9개월만에 전세계 213객으로 퍼졌고 100만명 이상이 이 새로운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WHO가 전염병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것은 1968년 홍콩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코로나19가 세번째였습니다. 과거엔 이런 기준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그만큼 21세기 들어 새로운 전염병이 빠른 속도로 퍼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원인에 대해선 여러가지 분석이 있습니다. 전세계의 거리가 좁아지면서, 감염 속도도 빨라질 수밖에 없겠지만 최근 가장 많이 나오는 분석 중 하나는 새 전염병이 환경파괴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전염병이 인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지구를 괴롭힌 결과 이상질병들이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람들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멸종된줄 알았던 동물들이 자연으로 다시 돌아오고 대기의 질이 좋아졌다는 조사결과도 있었죠. CNN은 지난 2일(현지시간) 이런 제목의 기획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코로나19는 인간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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