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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공매도 명과암①]‘미드’ 같았던 니콜라 추락..배후엔 공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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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사기 의혹, 인기 미드 '빌리언스'와 닮아

한화솔루션 등 국내 기업·개인 한때 니콜라 열풍

니콜라 사기 폭로한 네이선 앤더슨 "공매도 유지"

이데일리

(사진=미국 드라마 빌리언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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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지난 2001년 9월11일. 미국 세계무역센터에 갑자기 비행기가 충돌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사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이같은 상황을 지켜본 한 남자는 거액의 공매도에 베팅을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입니다.

인기 미국 드라마 ‘빌리언스(Billions)’의 내용입니다. 이 드라마는 헤지펀드 매니저와 검사의 대결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보비 엑셀로드(데미안 루이스)는 법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투자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입니다. 검사인 척 로즈(폴 지아마티)는 그의 불공정 거래 의혹을 파헤칩니다. 현재 시즌 5가 방영되고 있는 인기 드라마입니다.

주인공은 많은 방법으로 돈을 벌어들이지만 특히나 ‘공매도’ 투자 전략을 즐기는 모습을 보입니다. 비행기가 건물과 충돌할 때마저 주가 하락 기회로 보고 공매도를 합니다. 금융시장에서 악재는 공매도 투자자에게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공매도란 말 그대로 공(空), 없는 주식을 매도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주식이 없는데 어떻게 파느냐, 빌려서 팝니다.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높은 가격의 주식을 빌려 매도한 뒤 가격이 떨어지면 싼 값에 사들여 주식을 되갚는 일종의 선물 거래 방식입니다. 이 때문에 때로는 허위 사실이나 악소문을 퍼뜨려 주가를 끌어내리는 불법행위도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드라마 내용과 유사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수소차 제조업체 니콜라 사기 의혹이 바로 그러합니다. 현실 속 주인공은 니콜라에 처음으로 ‘사기’ 의혹을 제기한 보고서를 발표해 주가를 끌어내린 힌덴버그리서치의 설립자 네이선 앤더슨(36). 그는 유명한 공매도 투자자입니다.

앤더슨과 그가 이끄는 힌덴버그리서치는 니콜라 주식을 대상으로 공매도 투자를 했습니다. 주가가 하락해야 이득을 보는 상황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한덴버그리서치는 지난 달10일 니콜라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67쪽짜리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니콜라: 어떻게 엄청난 거짓말로 미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와 제휴했나?(Nikola: How to parlay an ocean of lies into a partnership with the largest auto OEM in America)’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는 니콜라가 2016년 출시한 수소 세미트럭을 홍보하기 위해 지난 2018년 공개한 주행 영상이 조작됐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것처럼 보이도록 언덕으로 끌고간 뒤 트럭을 밀어 굴렸다는 것입니다.

힌덴버그리서치는 보고서 공개 이후 니콜라가 미국 메이저 자동차 제조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 기술 제휴까지 체결했지만 아무런 기술도 특허도 없는 회사라는 내용도 추가 폭로했습니다.

때마침 미국 뉴욕증시에선 기술주 열풍이 불며 테슬라와 함께 니콜라 주가도 승승장구하고 있었는데요. 투자자들은 니콜라는 ‘제2의 테슬라’로 생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기관은 물론 개미 투자자들까지 니콜라 투자에 뛰어들었죠. 한국에서도 한화솔루션(009830)이 니콜라에 지분을 투자하는 등 관심이 높았습니다.

힌덴버그리서치 보고서 발표 이후 상황은 어땠을까요. 니콜라 주가는 다른 기술주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6월 이후 꾸준히 상승해 왔으나 보고서 공개 이후 사흘 동안에만 36% 급락했습니다. 힌덴버그리서치가 리포트를 발표하기 전날인 9일 종가(42.37달러)와 비교해도 절반 이하입니다.

개미 투자자들이 곡소리를 내는 동안 앤더슨은 지난달 23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거액을 벌어들였다”며 승리를 만끽했습니다. 그리고는 “여전히 숏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숏이란 주로 파생상품 등의 거래에서 매도 포지션을 취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공매도 포지션으로도 해석됩니다. 시장에서도 웨드부시증권이 니콜라의 12개월 목표 주가를 기존 45달러에서 15달러까지 낮추는 등 주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니콜라도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니콜라는 30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혁신기술 비전’이란 이름의 향후 청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연내에 전기트럭 시제품을 출시하고, 내년 상반기중 첫 상업용 수소충전소를 착공하는 게 골자입니다. 내년부터는 수소트럭 대량생산 체제에 들어간다는 목표도 내놨습니다. 이같은 청사진에 힘입어 이날 니콜라 주가는 15% 가량 급등했습니다. 앤더슨으로서는 그만큼 손실을 본 셈입니다.

오랜 기간 투자를 해오신 분들이라면 공매도는 익숙한 투자 전략이지만, 초보 투자자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용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공매도는 역사가 꽤나 오래됐습니다.

1637년 튤립 버블 때도 선물 거래의 등장과 함께 공매도가 성행했습니다. 튤립은 개화 시기 등을 고려해 6~9월 사이에만 거래가 가능했는데, 당시 아직 재배하지도 않은 튤립을 예정된 날짜에 사고 파는 선물 거래가 등장합니다. 당시 판매업자들은 아직 수확하지도 않은 튤립을 미리 판매하고 나중에 그보다 낮은 가격에 튤립을 사들이는 공매도를 기획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투기성 거래지요. 현재 주식시장의 합법적인 공매도와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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