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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신다더니 돈받고 사라진 딸…87세 아빠는 주차관리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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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시대 엷어지는 효⑤효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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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17일 재산 증여가 이미 이뤄진 경우에도 증여자가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증여자 등에 대한 범죄행위로 증여가 해제되는 경우 수증자가 증여받은 것을 원상회복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원상회복 관련 부당이득도 반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민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중앙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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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딸이 ‘평생 모실 테니 집을 사서 같이 살자’고 해서 6000만원을 줬더니 연락을 끊었어요.”

지난 2015년 민병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87살 김씨는 이렇게 분노를 토했다. 김씨는 “아들이 ‘왜 나는 (재산을) 안 주냐’고 폭행했다”며 “이게 사기가 아니고 뭐냐”고 호소했다. 이후 그는 딸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이미 증여한 것으로 인정돼 패소했다. 토론회 1년 후 김씨는 기초연금과 주차관리 수입으로 근근이 생계를 잇고 있다고 했다. 김씨의 근황은 현재 알려진 게 없다.

현행 민법 제556조는 증여받은 사람이 증여자에게 일정한 망은 행위를 한 경우 증여를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증여를 해제하더라도 같은 법 제558조에 따라 이미 이행을 완료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환을 요구할 수 없다. 노인 사이에 “재산은 죽을 때까지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민병두 전 의원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부양의무를 지키지 않은 증여자에게 증여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일명 '불효자 방지법'을 발의했다.

당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의 국민 56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한 결과 77.3%가 ‘효도계약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필요 없다’고 답한 사람은 14.7%이었고 8%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효도계약이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은 연령대별로 50대가 87%로 가장 높았고, 30대(80.5%)와 60대 이상(79.6%), 40대(73.2%) 순이었다. 20대는 64.7%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불효자 방지법안(민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67.6%가 “입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했고, 22.6%는 “입법화까지는 필요 없다”는 의견을 표했다.

유계숙 경희대 사회복지학 교수가 지난 2017년 발표한 ‘효도계약과 불효자 방지법안에 대한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태도’에 따르면 ‘효도 계약’의 조건을 두고 부모와 자식 세대 사이 인식 차이가 있었다.

연구팀이 서울·인천·경기 대학생과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 40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부모 세대는 정서적 지지를 가장 강하게 필요로 했고, 이어 부모 병간호, 규범적 의무, 신체・물리적 도움, 경제적 부양 순이었다. 반면 자녀 세대는 부모 병간호 조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다음으로 경제적 부양, 정서적 지지, 규범적 의무, 신체・물리적 도움 조건 순이었다.

당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유한국당 이철규 의원 등도 비슷한 불효자 방지법안을 내며 급물살을 타는 듯했지만 끝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폐기됐다.

비슷한 법은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나왔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17일 같은 취지를 담은 민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재산 증여가 이미 이뤄진 경우에도 증여자가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증여자 등에 대한 범죄행위로 증여가 해제되는 경우 수증자가 증여받은 것을 원상회복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원상회복 관련 부당이득도 반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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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의 국민 56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한 결과 77.3%가 ‘효도계약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필요 없다’고 답한 사람은 14.7%이었고 8%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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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주 의원은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는 이미 이행한 (증여) 부분이라도 반환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퇴색돼 가는 효(孝)의 개념을 되살리고 가족공동체 복원에 기여할 수 있도록 법안 통과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중국·싱가포르 부모 부양의무 법으로 명시



부모 부양의무를 법으로 명시한 대표적인 나라는 중국과 싱가포르다. 지난 2017년 유계숙 경희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가 발표한 “효도계약과 불효자 방지법안에 대한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태도”에 따르면 중국은 노부모 세대의 정서적 빈곤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1996년 ‘노인권익보장법’(中国人民共和国民政部)을 도입했다.

당시 중국은 도시화와 한 자녀 정책으로 전통적 가족제도가 빠르게 해체되고 부모와 자녀 간 부양 문제 증가, 독거노인의 고독사 문제 증가 등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지난 2013년에는 ‘부모 방문을 소홀히 하거나, 하찮게 여길 경우 처벌 된다’는 조항을 추가해 부모 부양에 대한 법적 의무를 강화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부모와 자녀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거나 자녀의 패륜적 행동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 부모가 고소한 경우에는 자녀에게 법적 처벌을 가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1995년 부모의 경제적 자립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 한정해 자녀가 부모를 경제적으로 부양하도록 하는 법을 도입했다. 이 법은 부양 의무를 법적 의무로 명시해 부모가 부양의 책무를 저버린 자녀를 고소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다만 노부모 부양 명령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자녀에게만 가능하다. 부양의무 판단 기준은 신청자인 부모의 상황뿐 아니라 신청자 부모가 자녀 부양 의무를 얼마나 이행했는지도 따진다.

유럽에서는 이미 증여가 끝났더라도 반환을 청구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 민법 제530조는 “증여자에게 중대한 배은행위를 저질러 비난을 받을 경우 증여를 철회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프랑스 민법 제953조는 “수증자가 학대·모욕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양을 거절하는 경우 증여 철회가 가능하다”고 명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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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가 열리는 지난 7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 사회단체 회원들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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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의무 다양한 제도로 보완해야”



전문가들은 부양 의무 문제는 불효자 방지법 외에 다양한 사회 제도를 통해 해결하자고 제안한다.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학 명예교수는 “재산을 상속했으니 부양해야 한다면 재산을 안 받았으니 부양하지 않겠다는 자녀가 나올 수 있다. 재산 상속 여부로 부양의무를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상속·증여는 어려운 법률 절차이다. 이런 걸 하기 전에 충분히 상담하거나 교육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은 “기초생활보장제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마당에 부양의무를 강제하는 법(불효자방지법)을 도입하면 서로 상충할 수 있다”며 “초고령사회로 가면서 꼭 이러한 법을 도입해야 한다면 우리나라 노인의 경제 수준 실태를 파악하고, 제재 대상이 되는 경제적 학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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