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준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월20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과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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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대립할 때 쉽게 공감을 얻는 방법이 있다. 악마를 소환하는 것이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연인을 죽인 최민식에게 “네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죽일 거야”라며 잔혹한 복수극을 펼치는 이병헌에게 관객은 동질감을 느낀다. 이병헌의 폭력에 불법이란 잣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술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악마라는 이름으로.’
세간에 이미지 안 좋기로는 검찰만한 곳이 없다.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와 매번 탈꼴찌 다툼을 벌인다. 대통령의 출신 학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려대 출신 검사가 지배했던 한상대 검찰총장 시절, 평소 언행이 바르다는 평판을 받는 한 유명가수는 대검찰청의 홍보대사 요청을 받고는 ‘인기 관리’를 이유로 손사래 쳤다. ‘스케줄이 빡빡하다’는 사교적 표현으로 퇴짜 놓을 수도 있었거늘 그게 도저히 안 됐나 보다. 스폰서 검사 같은 잇단 내부 비리와 정권에 예속된 편파 수사가 관성화됐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검찰을 누가 치어링하고 싶었을까.
정치권에서 검찰개혁은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문구로 자리잡았다. 대선 후보자들은 공약의 대표 메뉴로 검찰개혁을 내세운다. 실제 역대 정부는 나름 성과를 거뒀다. 김대중 정부는 조폐공사 파업 유도 등 사건에서 특별검사 제도를 처음 도입했고, 노무현 정부는 검사동일체 원칙을 없앴으며, 이명박 정부는 검찰총장 후보자 추천위원회를 신설했고, 박근혜 정부는 대검 중수부를 폐지했다.
문재인 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 법안의 국회 통과를 수확했다. 검찰 권한이 분산되고 각 기관 간 견제 기능이 확대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법안을 둘러싼 찬반 문제를 떠나 검찰은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시행령이 지난달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내년 1월1일 본격 시행된다. 공수처는 야당의 공수처장 임명 절차 비협조로 출범이 늦어지고 있다. 여당은 다음달을 공수처장 임명 마감시한으로 야당에 최종 통보했다. 청와대도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공수처장이 임명되면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사실상 마무리된다.
이쯤에서 질문이 떠오른다. 검찰은 정말 과거와 달라지는 것일까. 진단과 처방은 제대로 이뤄진 것일까. 검찰개혁은 인사권을 쥔 권력에 순응하며 정치적 수사를 남발한 검찰의 비뚤어진 행태에서 그 필요성이 제기된 측면이 가장 크다. 민간인 사찰 사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등에서 보여준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검찰의 부정의한 행태가 마일리지로 쌓여 검찰개혁이란 업보로 돌아온 것이다. 과잉 수사와 인권 침해, 모욕주기식 피의사실 공표, 검찰 내부 비리에 온정주의로 일관한 조직 보신주의도 개혁 요구에 기름을 부었다.
그런데 개혁은 새로운 제도만이 아니라 그 제도를 현실에서 운용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실천으로 완성된다. 아무리 제도를 고쳐놔도 변화된 제도가 현장에서 실행되지 않는 순간 개혁은 생명력을 상실한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에 차등 적용되고, 인사의 공정성을 강화했다는 법무부의 약속이 정부·여당 관련 수사 검사들의 좌천과 정부·여당에 가까운 특정 라인·지역 검사들의 발탁으로 일부 깨지며,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말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수사를 9개월 끌다가 ‘전원 무혐의’ 처분한 성의 없는 보도자료 하나로 퉁쳐지는 현실로 신뢰를 잃을 때, 우리는 검찰이 개혁된 것으로 체감하지 못한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천만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이 검찰 조사실에서 나와도 수사 진척이 없다가 공개 법정에서 증언이 나와야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는 지금, 우리는 검찰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치인·대기업의 부정부패를 주로 수사하는 특수부는 과도한 검찰권 남용의 주역으로 찍혀 기능이 대폭 축소됐다. 최근 특수부의 수사 실적을 보노라면 축소라기보다는 폐지된 느낌마저 지울 수 없다. 옵티머스 수사에서는 검찰이 로비 의혹에 연루된 정·관계 명단을 확보하고도 수개월째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선 청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주요 사건 보고를 아예 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돈다.
사법이 정치를 해서도 안 되지만 정치가 진영에 기울어진 제도로 사법을 무력화해서도 안된다. 개혁은 고쳐 쓰는 것이지 없애는 것은 아니다. 과거 정치검사들의 민낯을 견디며 힘들게 만든 귀한 검찰개혁의 시간이다. 검찰개혁이 특정인이나 특정 사건과 관련한 불편한 감정에서 뻗어 나온 권력의 분풀이나 보복의 수단이어선 곤란하다. ‘악마를 보았다’는 영화 속 이야기다. 이제 현 정부의 검찰개혁도 서서히 평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김정필 사회부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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