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극단선택 멈춘 박진성 시인 "아직 괴롭다…'사회적 감옥'서 꺼내 달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인터뷰] "사실 아닌 의혹만으로 삶 전체 부정당해…가족·지인도 고통"

'극단선택 암시'후 잠적… 15일 용산 한강공원 경찰센터 스스로 방문

뉴스1

박진성 시인.(본인 제공)©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박진성 시인(42)의 이름이 최근 포털사이트와 SNS 등에서 하루종일 오르내렸다. 그가 지난 14일 블로그와 SNS 등에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고 잠적했기 때문이다.

박 시인의 이같은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걱정하게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서 "박 시인을 아는 분이 신속하게 연락하시면 좋겠다"고 할 정도. 다행히 박 시인은 가족 곁으로 돌아왔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박 시인은 지난 14일과 15일 극단적 선택을 할 결심으로 용산, 반포 부근의 한강변, 종로 일대를 배회하다가 생각을 바꿔 용산경찰서 한강로지구대에서 자신의 생존사실을 알렸다.

<뉴스1>은 17일 박 시인을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만나 그간의 일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박진성 시인은 2016년 '여성 습작생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이후 삶에 대해 "말 그대로 지옥"이라며 "전부를 다 잃고 목숨만 붙어 있는 삶, 그렇게 말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살아 있다는 것, 살아서 물 마시고 숨쉬고 다시 허기를 느끼고 밥 챙겨 먹으면서 모르는 사이 발톱이 자라고 손톱과 머리카락이 자라고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징그럽고 지겹다"고 했다.

올해로 벌써 4년째다. 박 시인은 사건 이후 1년 뒤,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자신을 성폭력 피해자라고 주장한 여성에게는 무고 및 허위 사실 유포 혐의가 인정됐다. 더불어 박 시인은 관련 의혹을 최초 보도한 언론사 등에 대해서도 소송을 통해 승소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박 시인이 14일 남긴 글에서는 이같은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그는 "그날 이후 '성폭력 의혹'이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끌고 다니는 것 같다"며 그 고통에 대해 언급했다.

그렇다고 박 시인이 '문단 내 성폭력 고발' 등과 관련한 '젠더 이슈'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는 "많은 (성폭력) 사건이 있었고 많은 사람의 피해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그만큼의 많은 반대 사례(무고)도 있었다"며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몫 이상으로 고통받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단지 의혹'만으로 어떤 사람의 삶 전체가 부정당하고 커리어 자체가 박살 나고 한 개인의 인격이 살해당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어떤 분들에 대한 '미투'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 났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의혹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포기하고 그 사람 포함 주변의 가족과 지인들이 같이 고통받는 '연좌제'의 고통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박진성 시인은 2016년 총 4권의 책을 계약한 상태였지만, 의혹 제기 이후 모든 계약은 취소됐다. 한때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상, 시작작품상을 받은 주목받는 시인이었지만 현재는 모두가 외면하는 시인이 됐다.

그는 "스무 살 때부터 시를 썼고, 스물네 살 때 등단했다"며 "하고 싶은 일도, 할 줄 아는 것도 시 쓰는 일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시를 가르치면서 최소한의 경제를 해결하면서 시를 쓰고 살고 있다"며 "언젠가 다시 시집을 엮을 수 있겠지, 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서. 참 외롭다"고 말했다.

박 시인은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제대로 된 '지면'을 통해 시를 소개할 수 없는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6년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료 시인들, 편집자들에게 연락해 시를 봐달라고 했다. 물론 수락해주는 곳은 없었다.

그는 "더 수치스러웠던 건 어떤 답장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무혐의 처분을 받고 상대방들이 무고가 나오고 저의 의혹을 보도했던 언론사를 상대로 승소를 하고… 그래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라고 했다.

1인 출판사를 차릴 생각도 했다. 시각디자인 전문 출판사, 또 다른 1인 출판사에서 시집과 산문집도 내긴 했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박 시인은 "저의 능력이 거기까지인 것도 있겠지만, 소위 '문학계 내의 카르텔의 폐쇄성'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 이상"이라며 "정말 간절하게 말씀드리고 싶다. 저와 제 시를 제발 '사회적 감옥'에서 꺼내 달라고"라고 호소했다.

상황이 복합해지고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무엇보다 절망감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끔 내몰았다는 것이 박진성 시인의 말이다. 그는 "정말 괴롭다"라며 "역설적으로 그 괴로움을 숙주로 제 시들은 한 편씩 쓰이고 있는데, 그 시들을 쳐다볼 때마다 참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고 했다.

이쯤되면 시를 포기하고, 아예 다른 일을 택하는 게 낫겠다는 제안도 들었을 터. 그러나 그는 계속 시를 쓴다. 시가 그에게 어떤 존재이기에 이런 선택을 한 걸까.

박 시인은 "지인이 묻더라. 어떤 게 그렇게 당신을 힘들게 했냐고"라며 "'시 때문이다'라고 말했더니 그분이 '시는 당신에게 걸림돌이자 괴로움'이라고 하더라"라고 했다.

이어 "정확하게 그 반대다. 시는 그냥 저의 호흡이고 공기 같은 것"이라며 "꿈에 자주, 물 바깥에서 죽어가는 물고기의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정확하게 지금의 제 상황에 대한 비유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시는 걸림돌도 아니고 괴로움도 아니고 '다른 무엇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제가 사는 이유 그 자체"라며 "스물네 살 때 등단해서 서른아홉 살에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이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고 했다. 이어 "시를 쓰는 일은 그래서 제가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가치로, 못 써도 일주일에 한 편은 쓰려고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 그러고 있다"고 시의 소중함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박 시인은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직전 산문집에 썼던 저의 문장을 옮겨 본다"며 "드러나지는 않지만 많이 힘들어하는 분들, 그리고 저 자신에게 읽어주고 싶은 문장"이라며 한 구절을 보내왔다.

"정말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사람은 자신이 상실한 것과 함께 힘들다는 '언어'도 동시에 잃는다. 어떤 상처나 고통이 언어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비로소 그것들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치유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신이 '힘들다'고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잃었던 언어를 되찾으면서 비로소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lgirim@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