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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유서엔 "우린 200만원도 못 법니다"…또 목숨 끊은 택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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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에서 로젠택배 노동자 극단적 선택

유서에서 "억울하다. 200만원도 벌지 못한다"

노조 "위약금 등으로 그만두지 못했다" 전해

중앙일보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작업자들이 택배 박스를 나르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 없음.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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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과 계약을 맺고 개인사업자로 택배 업무를 하던 50대 A씨가 20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A씨는 유서에서 ‘억울합니다. 적은 수수료에 세금 등 이것저것 빼고 나면 한 달에 200만원도 벌지 못한다’며 생활고를 호소하는 글을 남겼다.

20일 경남 창원 진해경찰서 등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오전 6시 8분쯤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 터미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옷에서는 A4 용지 3장 분량의 유서가 나왔다. 이 유서에는 ‘개인적 문제로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내용과 ‘택배 사업을 하면서 시설투자와 세금 등으로 수입이 매우 적고 사업이 잘되지 않아 전반적으로 어렵다’는 생활고를 호소하는 내용 2가지가 담겨 있다. 경찰은 타살 정황이 없어 생활고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경위를 파악 중이다.

A씨는 유서에서 “우리(택배기사)는 이 일을 하기 위해 국가시험에, 차량구매에, 전용 번호판까지…(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200만원도 못 버는 일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저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시정 조치를 취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A씨는 지난 2월부터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과 개인사업자 계약을 맺고 택배 일을 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강서지점은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있다. 경찰은 로젠택배가 본사와 지점 그리고 지점과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인 소장 등으로 구성돼 있고 A씨의 경우 자신의 차량으로 직접 택배를 하는 소장으로 파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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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마트산업노조, 청년유니온, 택배기사님들을 응원하는 시민모임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과로사로 사망한 택배 노동자를 추모하며 묵념을 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 없음.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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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유서에서 “한여름 더위에 하차 작업은 사람을 과로사하게 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동식 에어컨 중고로 150만원이면 사는 것을 사주지 않았다”며 “(오히려) 20여명의 소장을 30분 일찍 나오게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화나는 일이 생겼다고 하차작업을 끊고 소장을 불러서 의자에 앉으라 하고 자신이 먹던 종이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소장을 소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원 이하로 보고 있음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A씨는 또 “(은행에서 빌린 돈에 대한) 원금과 이자로 한 달 120만원의 추가 지출이 생기고 있어서 빨리 그만두고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데…”라며 “자기들이 책임을 다하려고 했다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택배연대노조 경남지부 관계자는 “로젠택배의 경우 보통 1~2년 기간으로 계약하는데 중간에 계약을 해지할 경우 권리금(300만원 추정)과 보증금(500만원 추정)은 물론 위약금까지 물어야 하는 구조여서 A씨가 일을 그만두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월 200만원 정도의 수입에서 차량 구매 등을 위해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 등을 빼고 나면 거의 남는 것이 없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고인은) 과도한 권리금 등을 내고 일을 시작했고 차량 할부금 등으로 월 200만원도 못 버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며 “수입이 적어 신용도가 떨어지고 원금과 이자 등을 한 달에 120만원 정도 부담하고 있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A씨 사망과 관련해 로젠택배 본사와 지점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경로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창원=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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