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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뭘 숨기려고", 산업부 공무원 휴일 밤에 '월성 1호기' 자료 무더기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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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국장 "컴퓨터 등 월성 1호기 자료 삭제하라" 지시

직원 B씨 일요일 출근해 약 2시간 동안 자료 삭제

"자료 있는데 없다고 하기 뭐해서 폴더 122개 지워"

"다른 직원이 주말에 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 해"

백운규 전 장관, 文대통령 질문에 '조기폐쇄' 결정

아주경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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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근무일이 아닌 일요일 밤에 사무실로 나와 월성 1호기 관련 자료를 무더기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이 20일 공개한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보고서에는 산업부 직원들의 감사저항 행동이 상세하게 담겼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 A 국장은 지난 2019년 11월 부하 직원 B 씨로부터 월성 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보고받았다.

그러자 A 국장은 부하 직원들을 회의실로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고, 그 자리에서 B 씨에게 사무실 컴퓨터, 이메일, 휴대전화 등 모든 매체에서 월성 1호기 관련 자료를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

산업부는 지난해 11월 26일 감사원으로부터 ‘월성 1호기 관련 최근 3년간의 내부 보고자료·BH 협의 및 보고자료·한수원 협의자료 일체’ 등을 온나라 공문으로 요구받고, 같은 달 27일과 28일에 담당 감사관에게 일부 자료를 제출했다.

그러나 2018년 4월 3일 대통령비서실에서 보고한 문서 등 대부분 문서를 빠뜨렸고, 추가 자료제출 요구가 2019년 12월 2일로 예상되자 자료삭제를 감행했다.

A 국장의 지시를 받은 B 씨는 지난해 12월 1일 오후 11시 24분 36초부터 다음 날인 오전 1시 16분 30초까지 약 2시간 동안 사무실 컴퓨터에 저장된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총 122개 폴더를 삭제했다. 결국, 산업부는 해당 자료를 감사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감사원에 따르면 B 씨는 산업부에 중요하고 민감하다고 판단되는 문서를 먼저 삭제했다. 처음에는 삭제 후 복구돼도 원래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일명 등을 수정해 다시 저장한 뒤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삭제할 자료가 너무 판단한 B 씨는 단순 삭제 방법을 사용했고, 나중에는 폴더 자체를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B 씨는 감사원 조사 과정에서 “감사원 감사관과 면담이 예정돼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월성 1호기 관련 자료를 요구받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료가 있는데도 없다고 하면 마음에 켕길 것으로 생각해 폴더를 삭제한 것”이라면서 “다른 직원이 자료 삭제를 하려면 주말에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주말에 삭제하려 했으나 기회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감사관과 면담이 잡혀 급한 마음으로 (일요일에) 삭제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부 내 다른 직원들도 해당 직원의 자료삭제 계획을 알고 있었고 이를 위한 조언까지 한 셈이다.

감사원은 B 씨가 사용하던 업무 컴퓨터를 제출받아 디지털 포렌식으로 444개(중복 10개 포함) 문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했지만, 이 중 120개는 끝내 복구하지 못했다.

B 씨가 삭제한 문서에는 ‘에너지전환 후속조치 추진계획(2018년 3월 15일, 장관 및 대통령비서실 보고)’ 등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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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직원들이 감사원이 제출한 월성1호기 조기폐쇄 타당성 점검에 관한 감사결과보고서를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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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산업부는 관련 자료를 삭제하고도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 등은 한수원이 추진하는 사안이라 주로 구두로 보고가 이루어졌다”면서 “이번 감사와 관련 감사원의 요청 자료에 대해 최대한 성실히 제공하려고 노력했으나 감사원 요구사항에 다소 미치지 못했던 점이 있었다면 양해해주시기 바란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산업부는 감사원의 자료제출 요구에 대비해 ‘한수원 사장에게 요청할 사항’ 등 총 444개의 문서를 삭제했으므로 해당 답변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감사를 방해한 A 국장과 B 씨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제82조에 따라 징계를 요구했다.

한편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월성 1호기의 영구 가동 중단 계획 관련 질문이 있었다는 보고를 듣고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폐쇄 결정과 함께 즉시 가동 중단하는 것으로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의 C 과장은 지난 2018년 4월 2일 청와대의 한 행정관으로부터 “청와대 D 보좌관이 월성 1호기를 방문하고 돌아와 ‘외벽에 철근이 노출됐다’고 청와대 내부 보고망에 게시하자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의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지 D 보좌관에게 물었다”는 내용을 들었다.

이후 C 과장은 해당 내용을 백 전 장관에게 보고했고, 이후 월성 1호기 즉각 가동 중단 재검토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C 과장은 2018년 4월 4일 “백 전 장관 재검토 지시에 따라 가동은 어렵게 됐다”는 뜻을 한수원에 전했고, 한수원 관계자들은 “원자력안전위 허가까지 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산업부는 “이를 청와대에 보고할 예정”이라며 선을 그었다.

정혜인 기자 ajuchi@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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