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7 (수)

감사원, 월성1호기 타당성 유보? ...'교묘히' 흔들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일보

감사원이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고 발표한 20일 경주시 양남면에 '월성 1호기'가 보이고 있다. 경주=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원이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폐쇄 결정 과정에서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평가됐다는 내용의 감사 결과를 20일 공개했다. 국회가 감사를 요구한 지 386일 만으로, 조기폐쇄의 핵심 근거가 됐던 경제성 평가에 흠결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감사원은 조기폐쇄 결정 자체에 대한 타당성 평가는 내놓지 않았다. 가동중단 결정 과정과 경제성 평가만 점검했기 때문에 종합적 판단은 유보했다는 설명이다. 여권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모습이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될 전망이다.

한국일보

최재형 감사원장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제성 평가,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


감사원은 우선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통해 삼덕회계법인에 용역을 맡겨 도출한 경제성 평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판매단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봤다. 전년 판매단가를 활용해 계산하는 대신 객관성과 예측성이 떨어지는 전망단가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경제성 평가가 진행된 2018년보다 한해 앞선 2017년 기준으로 한수원 전망단가는 판매단가보다 9.3%정도 낮았다.

뿐만 아니라 감사원은 산업부와 한수원이 회계 오류를 알고도 방치했다고 판단했다. 전망단가를 계산할 때 이용률을 활용하는데, 이때 회계법인은 이용률을 84%로 적용했다. 애초 잡은 중립적 이용률 60%보다 높은 수치다. 이용률과 전망단가는 역의 관계에 있어서, 이용률을 높여 잡으면 전망단가가 낮아진다. 한수원이 전망단가가 실제보다 낮게 추정된다는 점을 알고도 이를 보정하지 않고 전기 판매수익, 즉 경제성을 낮게 추정했다는 게 감사원 설명이다. 감사원은 또 한수원이 월성1호기 즉시 가동중단에 따라 줄어드는 인건비와 수선비 등도 과다하게 부풀렸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조기폐쇄 결정과정의 적정성 측면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을 비롯해 당시 산업부가 가동중단 결정을 하는 데 유리한 경제성 평가결과가 나오도록 평가과정에 관여해 신뢰성을 저해했고, 백 전 장관은 이를 알았지만 방치해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냈다. 지난해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이를 인지한 산업부가 444건의 문서를 삭제하는 등 감사를 방해했다는 점도 적시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한수원 이사들의 행위가 배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백 전 장관 등의 자료를 수사기관에 '수사참고자료'로 보내기로 했다. 범죄 혐의가 명확하진 않으나, 범죄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 하는 조치다.

조기폐쇄 타당성 자체에 대한 평가는 유보...정무적 판단?


이날 감사원 감사 결과에는 월성1호기 조기폐쇄의 타당성 자체에 대한 평가는 포함되지 않았다. 감사원은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이나 그 일환으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추진하기로 한 정책 결정의 당부는 이번 감사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감사원은 그 근거로 '정부의 정책 결정 및 정책 목적의 당부 등은 감사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감사원 직무감찰규칙 4조를 근거로 제시했다. 이같은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두고 월성1호기 감사 결과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나 정권의 신뢰도 측면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한국일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감사원의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감사결과 발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책 집행 불투명하고 허술'... 원전 정책 문제점 우회 지적


하지만 감사원은 "원전의 계속 가동 평가기준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부재하다"면서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문제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판매단가와 이용률, 인건비, 수선비 등 입력 변수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경제성 평가 결과에 많은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감사원은 또 "즉시 가동중단 방침과 같은 중요 내용을 행정지도 형식으로 공공기관에 전달할 때는 공문의 형식으로 투명하게 실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불투명한 행정 처리'를 꼬집었다. 그러면서 "2015년 폐쇄 결정된 고리1호기의 경우에도 공문의 형식으로 투명하게 권고 내용을 전달했다"고 비교까지 했다.

이런 감사원의 지적은 향후 다른 원전 폐쇄 등의 결정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동 중인 24기 원전 중 10기가 향후 10년 내 설계 수명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를 둘러싼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당장 감사를 요구한 국민의힘은 "그동안 원칙을 무시하고 근거도 없이 추진됐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실질적인 사망선고"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통상적인 감사를 마치 에너지 정책의 심판대인 양 논란을 키웠다"며 애써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