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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바꿔 바꿔 다 바꿔”...역사 바로 세운다며 초중고교 이름 대거 바꾸겠다는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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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도, 소수자 차별등과 연관있으면 다 바꾸기로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토머스 제퍼슨 이름도 교체 대상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역사의 초석을 닦은 대통령들의 이름으로 한국에도 익히 알려져있다. 또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일선 학교들의 교명이기도 하다. 이런 학교들의 이름이 내년쯤에 송두리째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조선일보

샌프란시스코 조지 워싱턴 고등학교의 졸업식 모습. 이 학교는 최근 교육구 권고로 교명을 변경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 /위키백과.N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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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교육당국이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며 어두운 과거사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돼있으면 학교 이름을 바꿀 것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 SF게이트 등 지역 언론들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공립 초중고교를 관할하는 통합교육구(한국의 교육청·교육지원청에 해당)는 최근 위원회를 열고 관내 125곳의 초중고교 중 44개의 이름을 바꿀 것을 권고했다. 도시 전체 공립학교의 35%의 교명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샌프란시스코 교육구는 과거 역사의 부정적인 부분과 연관이 있는 인물을 학교 이름으로 하고 있는 곳의 교명을 바꾸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교명 교체 대상에 해당하는 사례는 다음과 같았다.

학교명에 붙은 인물이 식민지배와 연관있거나, 노예를 소유했거나 노예제 참여했거나, 또는 노예제나 대량학살의 가해자인 경우 학교 이름을 바꾼다는 방침을 정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시민에 대한 학대, 여성·어린이·성소수자를 억압하거나 학대한 인물, 인권과 환경문제에 연관된 인물, 백인우월주의자·인종차별주의자 또는 인종차별주의를 옹호하는 인물들도 교명 교체 대상으로 적시했다.

이런 기준으로 교체 대상을 고르다보니 전체 공립 초중고교의 3분의 1이 넘는 곳이 교체 대상으로 지목된 것이다. 말하자면 샌프란시스코판 ‘과거사 바로잡기’이자 ‘역사 바로세우기’인 셈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건국 대통령 이름을 딴 조지 워싱턴 고등학교, 남북전쟁에서 승리해 노예해방을 이뤄낸 대통령을 기려 명명한 에이브러햄 링컨 고등학교의 교명이 바뀔 처지에 놓였다. 미국 독립선언서 기초자로 유명한 토머스 제퍼슨의 이름을 딴 제퍼슨 초등학교의 이름도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조지 워싱턴·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모두 노예를 소유했다는 것이,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원주민들에 대한 처우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교명 교체의 사유로 지목됐다. 샌프란시스코를 지역구로하는 민주당의 거물 정치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도 자신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의 이름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

교육구는 파인스타인 의원이 샌프란시스코 시장으로 재직하던 1984년 시청 앞에 걸려있던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깃발을 교체한 것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의 깃발 교체 행위가 역사 바로세우기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밖에 교체 대상으로 오른 학교 이름을 보면 가필드·맥킨리·먼로·루스벨트 등의 전직 대통령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해당 인물과 동일인인지는 확실치 않다. 교육당국은 학교 교명 교체방침은 일선 학교에 의무적으로 강제하지는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단 ‘교체 대상’으로 분류된만큼 현 교명을 그대로 유지하는게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강도높은 조치는 흑인 인권 차별 반대 운동인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의 여파로 백인 중심의 미국역사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의 연장선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샌프란시스코는 유색인종과 성소수자들의 낙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진보 색채가 짙은 곳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 바로 세우기’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현지 언론들은 코로나로 인한 봉쇄 정책으로 대부분의 일선 학교들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교체 방침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고 전하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코로나 대책이 시급한 상황에서 교육 예산의 상당부분을 교명 교체에 쓰는 것에 대해 일부 학부모들은 못마땅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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