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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택배 과로사' 9명 중 산재보험 가입자 '0'…누가 가입 막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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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직신고는 절반 뿐인데 그중에도 산재가입은 40%

"사용자 보험료 부담에 산재가입 막아…관련법 개정해야"

뉴스1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故 김원종씨의 유가족이 17일 서울 을지로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김 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발언 뒤 무대에서 울먹이며 내려오고 있다. 2020.10.17/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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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지난 8일 배송 업무 중 사망한 택배기사 고(故) 김원종씨는 최초 산업재해보험을 적용받지 못했다.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작성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근로복지공단의 조사에서 김씨의 산재 적용 제외신청서가 대리점 직원의 대필로 작성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근로복지공단은 김씨의 산재 적용 제외신청을 취소하기로 했다.

20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가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올해 모두 9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사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중 산재보험에 가입된 사람은 1명도 없었다. 택배 종사자들은 특수고용직(특고)이라는 택배기사의 신분이 산재보험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특고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은 10년이 넘게 문제가 계속되고 있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입직신고 절반도 되지 않아…관련 처벌 강화해야

산업재해보험법상 특수고용직 특례조항에 따라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택배기사, 대출모집인, 방문 판매원 등 상시적으로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14개 직종의 특고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해당 특례 조항에 따라 특고 노동자에게 노무를 제공받는 사업주는 최초 노무를 제공받은 날을 기준으로 그다음 달 15일까지 입직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전국에 5만여명으로 추정되는 택배기사 중 입직이 신고된 사람은 그 절반 수준인 2만4845명에 그쳤다. 대책위는 입직신고로 산재보험 가입 등 여러 책임이 부여되기 때문에 사업주들이 이를 꺼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입직신고를 하지 않았을 때 처벌이 가벼운 것도 사업주들이 이를 지키지 않는 한가지 이유로 제기된다. 산재보험법은 특고 노동자의 입직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미신고 1건당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하고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과태료 처분을 벌금으로 강화해 입직신고가 되지 않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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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잇따르는 가운데 20일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작업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택배 박스를 나르고 있다. 2020.10.20/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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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직신고돼도 산재보험 가입은 39.7%…적용제외 폐지해야

입직신고가 돼 정식적으로 일을 하게 될 경우에도 산재 가입률은 저조했다. 2만4834명의 입직자 중 산재보험에 가입된 택배기사는 9854명으로 39.7%에 그쳤다.

지난달 대책위가 택배기사 821명을 대상으로 설명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45.2%가 업무 중 상해를 입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평균 근로시간도 산재보험법상 과로로 인한 질병이 인정되는 주당 60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71.3시간이었다. 하지만 입직자 10명 중 6명은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못한 것이다.

노동계는 택배기사들의 산재가입률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산재 적용 제외신청 제도'를 꼽는다. 산재 적용 제외신청은 산재 적용 대상인 특고 노동자가 스스로 산재보험 가입을 거부할 경우 이를 허용하는 것이다. 사업주가 산재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는 일반 근로자와 달리 특고 노동자의 경우 사업주와 종사자가 보험료를 절반씩 부과하고 있어 종사자의 보험료 부담을 고려해 예외를 두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김태완 전국택배노조 위원장은 사업주들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산재보험 제외신청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업주들이 택배기사들에게 산재보험 제외신청을 강요하고 있고 사실상 사업주와 주·종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택배기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이에 서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사업주와 택배기사 간에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도 절반에 가깝다. (사업주가)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면 저항할 방법도 없다"라며 "(이런 분위기에서) 서명을 하라고 하면 기사들은 내용을 보지도 않고 서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불어 김 위원장은 사업주들이 산재보험 가입의 이점을 제외하고 보험료를 내야한다는 사실만 부각하거나 산재 가입을 고집하는 기사를 노골적으로 괴롭혀 주변에서 기사들이 산재 가입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김원종씨의 산재보험 제외신청 대필 논란도 종사자들의 산재 가입을 막으려는 사업주 차원의 개입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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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故 김원종씨의 유가족과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가 17일 오후 서울 을지로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김 씨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고 CJ대한통운 사옥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2020.10.17/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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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넘지 못하는 특고 산재의무화…위법 무시해야 보장받는 아이러니

특고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문제는 하루 이틀의 논란이 된 것이 아니다. 이미 몇차례 관련 법안이 제출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관련한 부작용이 계속되자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2015년 고용노동부에 관련 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지난 2014년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산업재해보험을 의무화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환노위 문턱을 넘었으나 보험설계사의 산재보험 가입 강제를 반대하는 보험업계와 이를 대면하는 여당(새누리당)의 반대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국회에서 관련 논의가 답보 상태를 거듭하는 가운데 올해 택배기사를 포함한 전체 특고 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20%에 머물고 있다.

다만 최근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면서 관련 법안들이 다시 발의되고 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모든 특고 노동자들이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산재 적용 제외신청 제도를 전면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한편, 대책위가 파악한 9명의 과로사 사망자 중 현재까지 산재를 인정받은 이는 1명이다. 9명 중 2명만이 입직신고를 했는데 나머지 7명은 입직신고 자체가 되지않아 산재 적용 제외신청을 하지 않았고, 근로관계를 입증해 산재 신청이 가능했다. 김원종씨를 포함해 입직신고가 된 두사람은 모두 산재 적용 제외신청서를 냈다.

대책위 관계자는 "적용 제외신청만 하지 않으면 추후 근로사실을 입증해 산재 적용을 받을 수 있다"라며 "입직신고를 하면 오히려 산재 적용을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에 따라 사업주가 입직신고를 하면 산재 적용 제외신청을 강요받는 현실에서 위법을 묵시하고 있어야 후에 사고를 당했을 때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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