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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 조정대상지역 요건 충족 지역 살펴보니… 국토부 입맛대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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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충족해도 지정 안 하고, 불충족 지역 해제 안 하기도
주거정책심의위 회의록 없고 의사결정 과정도 공개 안 해

국토교통부가 주택담보대출 등 규제가 심해지는 ‘조정대상지역’을 사실상 임의대로 지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려면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어떤 지역은 이 조건을 충족하고도 지정되지 않았고 어떤 지역은 이 조건을 충족하지 않게 됐는데도 해제되지 않았다. 국토부는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를 열고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을 지정하는데, 지정하기까지의 의사 결정 과정을 한번도 공개하지 않아 ‘밀실 운영’ 논란도 제기된다.

특히 수도권에 얼마 남지 않은 비(非)규제지역이라는 이유로 수요가 몰린 경기 김포는 최근 3년간 조정대상지역의 요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부산 동래, 수영의 경우 올해 들어 조정대상지역 지정 요건을 다시 충족했지만, 국토부는 별다른 정책 결정을 하지 않았다.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은 주택담보대출 시 담보인정비율(LTV)이 9억원 이하까지는 40%가 적용된다. 9억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20%로 줄어든다. 주택을 양도할 때는 양도소득세가 중과된다. 규제지역 지정은 이처럼 국민 재산권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정책인데도 국토부가 밀실에서 정책을 결정해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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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대상지역을 지정하던 시기에 정량적 요건을 충족한 지역들./김은혜 의원실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국토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까지 국토부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한 지역과 지정 당시 정량 요건을 충족했던 지역 목록을 비교했다. 국토부가 조정대상지역 지정 요건을 충족했으나 지정하지 않았던 지역들까지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 2018년 8월 28일부터 2018년 12월 31일, 2020년 2월 21일, 2020년 6월 19일 네차례 조정대상지역을 지정했다. 국토부는 매 주정심마다 당시 조정대상지역 지정 요건을 충분히 충족하는 곳들이 있었음에도 일부 지역만을 규제지역으로 정했다.

가령 수도권 내 ‘마지막 비규제지역’이라며 수요가 몰리고 있는 김포의 경우, 네차례의 주정심 시점 가운데 2월 21일을 제외하고 세차례나 조정대상지역 지정 정량 요건을 충족했지만 여전히 규제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토부는 당시 김포가 규제 지역에서 빠진 이유에 대해 ‘접경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0월 들어 김포 집 값은 상승세를 이어가, 전용면적 84㎡ 짜리 신축 아파트의 호가가 1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또 대전 동·중·서구의 경우 지난 2018년 8월부터 2월까지 꾸준히 조정대상지역 지정 요건을 충족했지만, 올해 6월 19일에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다. 지난해 11월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부산 동래, 수영구는 올해 들어 다시 조정대상지역의 요건을 갖췄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제 후 집 값이 다시 뛰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지역은 그 해 두차례 열렸던 주정심에서 규제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정량 요건을 충족하는 지역이 많았는데 일부 지역만 지정한 이유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주정심을 통해 정량 요건과 정성 요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곳들로 규제 지역을 지정한 것"이라면서 "투기 수요 유입이나 전반적인 시장 상황을 고려하고, 종합적인 요인을 감안한다"고 해명했다.

주택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조정대상지역을 지정하려면 3개월간의 주택가격상승률이 소비자물가상승률의 1.3배를 초과한 지역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먼저 갖춰야 한다. 여기에 ▲해당 지역에서 공급되는 주택의 청약경쟁률이 5대 1을 초과 ▲국민주택규모 주택의 청약경쟁률이 10대 1을 초과 ▲3개월간의 분양권 전매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30퍼센트 이상 증가 등의 현상을 모니터링해 정량 요건을 갖춘 지역을 선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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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지역 현황



국토부는 정량 요건을 갖춘 지역 가운데 ‘정성 요건’을 반영해 규제지역 목록을 뽑아낸다. 이후 최종적으로 정부측 당연직 위원과 민간 위촉직 위원이 포함된 주정심을 거쳐 규제 지역이 발표된다. 하지만 정부가 제출한 규제지역 지정안이 지금까지 전부 원안대로 통과돼, 위원들이 사실상 ‘정책 거수기’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규제지역 지정 절차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국토부는 주정심 회의록 등 정책 결정 과정을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재산권 행사와 관련한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면서 그 사유를 밝히지 않고 ‘밀실 운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정하는 회의체인 금융통화위원회를 가진 후 한달의 시간 차를 두고 시장에 이를 공개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국토부가 밀실에서 규제지역을 정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인 ‘뒤쳐진 규제’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와 달리 많은 지역에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어, 많은 지역이 조정대상지역 정량 요건을 갖춰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정량 요건 기준을 재조정해 국토부가 입맛대로 규제지역을 지정하도록 하는 정성 요건이 개입할 여지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도 비규제지역 가운데 정량 요건을 충족하는 지역은 굉장히 많지만, 기계적으로 정량 요건을 충족했다고 해서 규제 지역에 포함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량 요건을 충족하는 지역 가운데 집 값의 상승 추세와 투기 수요 유입 등을 보고 국토부가 결정을 내린다는 설명이다. 한번 규제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는 정량 요건을 충족했다고 해서 곧장 규제지역으로 지정할 경우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은혜 의원은 "어디를 조정대상지역을 지정할지가 법에 정해져있는데도, 국토부가 자의적으로 대상지를 선정했다"며 "조정대상지역 뿐 아니라 부동산 정책이 대부분 이렇게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 없이 이뤄지고 있고, 국민 재산권이 침해되고 있어 분명한 해명과 책임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민아 기자(wo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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