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2년 우주 위성궤도가 무대인 영화 '승리호'에서 우주선 선장 역의 김태리. 과거 우주 해적단을 이끌었던 인물로, 조종사 태호(송중기), 전직 갱두목 타이거 박(진선규),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유해진) 등과 모험에 나선다. [사진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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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하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꼽혀온 송중기‧김태리 주연의 SF블록버스터 ‘승리호’(감독 조성희)도 넷플릭스로 직행할 것인가.

코로나19로 인한 극장가 침체 속에 한국영화 기대작들이 줄줄이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있다. 지난 3월 개봉을 연기했던 박신혜‧전종서 주연의 미스터리 스릴러 ‘콜’은 넷플릭스를 통해 11월 27일 독점 공개한다고 20일 발표했다. 신예 이충현 감독의 장편데뷔작 ‘콜’은 지난 4월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에 이어 두 번째로 극장 개봉을 건너뛴 넷플릭스 배급 한국영화가 됐다. ‘콜’ 배급사인 NEW는 ‘신세계’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신작 ‘낙원의 밤’도 넷플릭스 배급을 논의 중이다. 엄태구‧전여빈‧차승원 등이 출연한 ‘낙원의 밤’은 지난달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전 세계 프리미어로 공개된 바 있다.

영화계에선 제작비 200억원 대의 ‘승리호’도 넷플릭스로 직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지난 추석 개봉을 예고했다가 수도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무기한 연기를 발표했던 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는 본지 문의에 “논의 중인 건 사실이지만 확정된 건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영화사 대표는 “넷플릭스와 큰 틀 합의는 끝났고 세부 조건 조율만 남은 거로 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독점 공개 땐 해외 판매 및 IPTV 등 부가가치 판권을 챙길 수 없지만 제작비라도 회수하려는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다. NEW 홍보팀의 양지혜 부장은 “불확실성이 너무 커 극장 상영만 고집하는 건 무리인 시대가 왔다. 여러 대안을 놓고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속에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11월2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가 결정된 이충현 감독의 장편데뷔작 '콜'. 박신혜와 전종서 주연으로 한 통의 전화로 연결된 서로 다른 시간대의 두 여자가 서로의 운명을 바꿔주면서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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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 및 이름난 감독들의 화제작이 넷플릭스 직행을 택하는 것은 그만큼 극장 상황이 암울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한 올 2월 이후 지난달까지 영화 관객은 3298만명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1억5264만명) 대비해 78.4% 감소했다. 총 121편의 영화가 제작이 중단되거나 개봉이 연기되는 등 피해를 겪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다음주부터 6000원 영화 할인권을 재배포할 예정이지만 바닥으로 가라앉은 관람 심리를 띄울 지는 미지수다. 전체 좌석 50% 미만 판매, 좌석 띄워앉기 등 방역정책도 박스오피스 발목을 붙잡는다.

CGV 국내 극장 및 스크린 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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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영화관 관객 수 변동.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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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업체 CGV는 3년 내 전국 119개 직영점 중 30%에 해당하는 35~40곳의 문을 닫겠다고 발표했다. 오는 26일부터 티켓값을 최대 2000원 인상한다고도 알렸다. 상반기만 2000억원 영업손실이 난 상황에서 내년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에 따라서다. 조성진 CJ CGV 전략지원담당은 “지난해 국내 극장관객 수가 연 2억2668만명이었는데 올해는 8000만명도 안 될 것 같다”면서 “올해 제작‧투자가 연기‧보류되면서 내년도 역시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근 CGV가 방탄소년단 다큐나 김호중 및 미스터트롯 콘서트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기존 충무로의 영화가 아닌 ‘대안 콘텐트’를 통해 극장 수익을 일부라도 회복하려는 자구책이다.

신작 영화가 극장 개봉을 꺼리고 이에 따라 경영 악화에 빠진 극장이 몸집을 축소하는 악순환은 영화 시장 전반에 불확실성을 드리우고 있다. 연내 뮤지컬영화 ‘영웅’ 개봉을 저울질하고 있는 JK필름의 윤제균 감독은 “현장에선 이러다 영화산업이 붕괴되는 거 아닌가, 계속 영화를 해도 되나 하는 위기의식까지 느낄 정도”라고 토로했다. 그는 “TV와 극장용 콘텐트는 제작 단계부터 CG 등 투자비용이 현격한 차이가 나는데 극장에 걸리지 못하면 타격이 크다”면서 “극장 수까지 줄면 작품별 수익률은 더 떨어질테고 투자배급사 몇 곳은 아예 철수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던 영화 '낙원의 밤'(박훈정 감독)도 극장 개봉 대신 넷플릭스 공개를 논의 중이다. 엄태구·전여빈·차승원·박호산 등이 출연했다. [사진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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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 영화산업 규모는 6조1772억원으로 집계된다. 이 가운데 5000억원 가량은 개봉 후 3~4주의 홀드백 기간 뒤 IPTV를 통해 발생하는 부가판권 매출이다. 개봉 신작이 줄어들면서 IPTV 역시 적절한 공급 순환이 어렵게 됐다. 영화진흥위원회 김현수 정책사업본부장은 “그간 영화수익의 주축은 티켓값을 제작·배급사와 극장 측이 나눠가지는 것이었고, 이후 IPTV와 OTT 등 플랫폼에서 부가수익이 났는데 이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티켓값의 3%를 걷어 조성해온 영화발전기금도 올해 90% 감면되면서 이 자본을 바탕으로 한 영화진흥사업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김 본부장은 “신진들이 작은 영화를 통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처럼 커나갈 기회가 쪼그라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30~40년을 국한해서 볼 때 우리 영화계에 혁신과 적응이 요구되었던 시기는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달 영진위 오석근 위원장을 단장으로 발족한 ‘포스트코로나 영화정책 추진단’이 지난 20일 『월간 한국영화』 124호를 통해 내비친 위기의식이다. 추진단은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 윤제균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 조성진 CJ CGV 전략지원담당 등 영화계 대표인사 25명을 아우르는 기획위원회 외에 추진TF팀과 영화정책 패널(201명)로 구성됐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 ‘영화 시장 개방’ 이후 국내 대기업(삼성·대우 등)이 영화계 게임체인저로 등장했던 때와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멀티플렉스 대기업이 영화계로 진입했던 시기에 이어 최근 코로나 속 격변상황이 위기이자 재편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추진 TF팀장을 맡은 김현수 본부장은 “기술 발달과 플랫폼 변화에 따른 영화산업 지각 변동이 코로나19로 인해서 한층 빨라졌다”면서 “영화인과 관객에게 어떤 정책이 도움이 될지, 혁신적 영화들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진단은 다음달 현안인식포럼을 열고 각계 의견을 종합해 내년 4월초까지 정책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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