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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코로나가 바꾼 세계' 석학인터뷰] “코로나 뒤 미·중 재앙적 경쟁…협력하는 법 못배우면 공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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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 e메일 인터뷰

『예정된 전쟁』서 패권국-신흥강국 경쟁 분석

"충돌 도화선, 한반도나 대만이 될 수도"

"송·요나라 맺은 '전연의 맹약' 교훈 삼아

협력하며 경쟁하는 '쿠피티션'해법 찾아야



지구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터널’에 진입한 지 10개월째, 누적 확진자는 4000만명을 넘어섰고, 1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터널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충격파는 지구촌의 삶의 방식도 바꿔놓고 있습니다. 단절은 어느덧 일상이 됐고, 불확실성 속에 개인과 기업은 물론 국가도 장기 대응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제레미 리프킨ㆍ자크 아탈리ㆍ제이슨 솅커ㆍ그레이엄 앨리슨 등 세계적인 석학과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가 몰고 온 변화의 실체와 파장을 잪어보고, 대응 방안을 모색합니다.

중앙일보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 코로나19라는 공동의 위기 속에서 미중이 대립을 넘어 협력하는 방안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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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앨리슨(80)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2017년 출간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무력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을 언급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지난 500년간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의 충돌사례 16번 중 12번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졌다며, 이같은 상황을 '투키디데스의 함정(Tuchididdes Trap)'이라고 칭했다.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가 아테네의 부상에 패권국 스파르타가 느낀 두려움이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기술한데서 따 온 것이다.

엘리슨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중이 빠진 함정의 위험을 더 키워놨다고 봤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양국의 이대로 계속 서로를 죽이려 한다면, 두 나라가 모두 원치 않는 재앙인 '전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재앙을 막으려면) 코로나19 대응 과정을 통해 양국이 경쟁 속에서도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이 실제로 충돌할 경우 한반도가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그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외교적 프로세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면 제2차 한국전쟁도 일어날 수 있다"면서 "북한이 미·중 전쟁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화해 이니셔티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래는 앨리슨 교수와의 일문일답.

Q : 미·중 갈등이 무역을 넘어 군사 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A :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무력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예상보다 훨씬 높다고 본다. 내가 『예정된 전쟁』에서 이야기했듯, 우리는 상황이 악화되기 전 훨씬 더 나빠질 것을 예상해야 한다. 미국은 코로나19 이후 중국을 점점 더 '악마화'하고, 중국은 이른바 '중국몽' 달성을 위해 치닫고 있다. 간단히 말해 이것은 두 나라가 모두 원치 않는 재앙적 전쟁의 위험성을 내포한 전형적인 '투키디데스적 경쟁'이다.

Q : 미국은 중국이 코로나19의 발생과 대유행에 책임이 있다고 맹비난하고 있다.

A : 코로나19는 미·중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만약 미국이 계속 감염병으로 헤매고 있는 동안, 중국이 코로나19를 완전히 종식할 수 있다면 그 여파는 클 것이다. 코로나 경쟁에서의 최종적인 결과는 '민주주의냐 권위주의냐'에 대한 판단은 물론, 세계에 널리 퍼진 '아메리칸 스탠더드'의 지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Q : 코로나19가 미국의 리더십 추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이야긴가.

A :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속단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도전에 느리게 반응하고, 미국의 경우는 더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일단 힘이 축적되면 민주주의의 파워는 굉장하다.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혁명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이런 방식으로 수 세기에 걸쳐 싸워왔다. 따라서 코로나19와의 긴 전쟁으로 미국이 쇠락할 것이라고 보는 건 시기상조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투자자인 워런 버핏은 ‘장기적으로 미국을 과소평가해 돈을 번 사람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Q : 지난해 '제2 한국전쟁' 발발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전설적인 메이저리거 요기 베라는 '특히 미래를' 예측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해 본다면, 가장 위험한 순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더이상 외교적 프로세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때다. 그럴 경우 북한은 핵실험으로 돌아갈 수 있고, 이것이 제2의 한국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은 '제로(0)'가 아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명한 '레드라인'을 지속해서 밝혔기 때문에 미국 대선이 있는 연말까지는 북한이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Q : 미 대선 결과는 미·중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까?

A : 중국은 이미 미국 대선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다. 선거 공학의 자명한 원칙은 '안보 문제에 관한 한, 상대방보다 강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후보 모두 상대방이 자신보다 중국 문제에 '약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공격한다. 이런 경쟁이 중국의 '악마화'를 더욱 부추겨 미·중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의 본질적 캐릭터를 감안하면, 그가 승리할 경우 중국에 대한 새로운 전략을 고민할 가능성이 높다.

Q :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이 북한이나 대만에서 발발할 가능성은?

A : 역사적으로 큰 전쟁의 방아쇠는 외부 사건, 즉 제3자의 도발이나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과 같은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 당겨졌다. 미·중은 이런 위기의 예방·관리 차원에서 북한 핵문제에 협력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는 위험한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는 대만의 독립을 부추기고 있고, 중국은 홍콩의 사례에서도 보여줬듯 이에 강경대응할 것이라 협박한다.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의 반도체 수급이 곤란을 겪는 가운데, 중국이 대만을 장악해 반도체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지 않는다고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

Q : 전쟁을 피할 방법은 뭘까.

A : 『예정된 전쟁』을 출간한 후 4년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왔다. 현재 중국과 미국 학자들과 함께 활발하게 탐구하고 있는 것은 고대 중국 송나라와 요나라가 보여줬던 '경쟁적 파트너(rivalry partners)' 개념과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극복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주창한 '다양성이 안전하게 공존하는 세계(world safe for diversity)'다. 대립하던 송과 요는 1005년 '전연의 맹약(澶淵之盟)'이라는 평화조약을 맺고, 일부 분야에선 치열하게 경쟁하돼 일부에선 적극 협력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정치인들이 이런 송나라 시대의 '발명'을 21세기화할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Q : 이를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합성어인 '쿠피티션(coopetition)'으로 표현했는데.

A : 두 나라가 협력하면서 동시에 경쟁한다는 것은 모순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일상이다. 삼성과 애플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양대 라이벌이지만 애플에 스마트폰용 부품을 가장 많이 공급하는 업체는 바로 삼성이다. 현재의 코로나19 위기는 미·중간 '쿠피티션'을 위한 '학습의 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한 나라의 성공만으로 전염병이란 위협을 물리칠 수 없다는 무서운 사실을 자각한다면, 이성적인 행위자로서 협력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Q : 한국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A : 아프리카에 '코끼리가 싸우면 잔디는 짓밟힌다'는 속담이 있다. 한국은 미·중 경쟁의 한 가운데 갇혀있는 상황이다. 한국전쟁에 중국이 참전한 후, 두 강대국은 남북한이 서로 살상한 인명보다 더 많은 한국인을 죽음으로 내몰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미·중 충돌의 불씨는 북한에서 당겨질 수도 있다. 나는 앞서 북한과 미국이 외교의 길을 따라 큰 첫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격려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상상력과 노력에 박수를 보낸 바 있다. 앞으로의 상황을 내다볼수록 이런 상상력과 '한국발 이니셔티브'의 필요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은=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좌교수. 1985~1987년 레이건 정부에서 국방장관 특보를, 1993~1994년 클린턴 정부에서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2017년 출간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지난 500년 인류 역사상 기존 패권국과 신흥국이 충돌한 사례를 분석해, 미·중관계의 미래를 전망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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