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코로나가 바꾼 세계' 석학인터뷰] 제레미 리프킨 "이젠 회생의 시대, 韓 그린뉴딜 너무 약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노동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화상 인터뷰

“기후변화가 촉발한 코로나, 반복될 것"

"화석연료 기반한 '발전시대'는 허구"

“인류, 패러다임 바꿔야 생존 가능"

"밀레니얼·Z세대가 의지 갖고 나서야"





지구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터널’에 진입한 지 10개월째, 누적 확진자는 4000만명을 넘어섰고, 1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터널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충격파는 지구촌의 삶의 방식도 바꿔놓고 있습니다. 단절은 어느덧 일상이 됐고, 불확실성 속에 개인과 기업은 물론 국가도 장기 대응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제레미 리프킨ㆍ자크 아탈리ㆍ제이슨 솅커ㆍ그레이엄 앨리슨 등 세계적인 석학과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가 몰고 온 변화의 실체와 파장을 잪어보고, 대응 방안을 모색합니다.

역작『노동의 종말』을 통해 과학기술이 불러올 미래를 예측했던 제레미 리프킨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인류는 이른바 ‘발전의 시대(age of progress)'를 누려 온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기후변화를 불렀고, 야생동물은 살 곳을 잃은 기후난민으로 전락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을 매개한 바이러스의 창궐은 그 필연적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설령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나온다 해도 이 위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곧 또 다른 바이러스가 퍼질 것이고,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전망이다.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발전의 시대'를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른바 ‘복원의 시대(age of resilience)’로의 전환이다.

화석연료가 발전의 시대 기반이었다면 새로운 시대의 기반은 통신, 운송, 친환경 에너지다. 그러면서 에너지 체계만 보면 한국은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19세기나 20세기형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보다 더 빠르게, 더 과감하게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혹독한 '청구서'를 받게 되리란 경고도 덧붙는다.

중앙일보

제레미 리프킨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친환경 에너지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제레미 리프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는 리프킨과의 일문일답.

Q :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A : 우리는 새로운 바이러스를 가진 또 다른 감염병이 전 세계에 퍼져나가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디지털로 연결된 세계인 실내에 갇혀 백신을 찾을 것이다. 백신 개발에 성공해 사람들이 다시 밖으로 나가게 된다고 해도, 새로운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할 것이다. 결국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Q : 일찌감치 감염병 창궐을 예측하며 기후 변화를 주범으로 들었는데.

A : 코로나19는 놀라운 게 아니다. 우리는 이른바 ‘유행병(pandemic)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가 만든 기후변화로 야생동물들은 ‘기후 난민(climate refugees)’과 같은 존재가 됐다. 기후변화로 살 곳을 빼앗기자 우리의 터전과 점점 가까워졌고, 동물을 매개로 한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지난 10년간 유행한 에볼라, 지카,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이 그 사례다. 바이러스 역시 기후변화로 등장한 기후 난민이다.

Q : 그럼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A : 한국 정부와 국민이 이 말을 꼭 듣길 바란다. 과학자들은 현재 6번째 대멸종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지금 이 순간은 인류라는 종이 지구에서 20만년 동안 살면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역사적인 순간이다. 우리는 더 이상 ‘발전의 시대’에 있지 않다. 그건 땅과 바다 밑에 있던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이용해 만들어낸 허구였다. 이제는 ‘복원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경제, 사회, 시설, 기업, 그리고 정부까지 싹 바꿔야 한다.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한국인들은 굉장히 잘 회복했다. 그래서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서도 한국이 주도성을 발휘하기를 기대했지만,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

Q : 새로운 시대라는 개념을 풀어서 설명한다면.

A : 새로운 패러다임은 ‘커뮤니케이션(통신), 모빌리티(운송), 새로운 에너지’ 이 세 가지를 기반으로 구축할 수 있다. 1차 산업혁명은 인쇄·전신, 석탄, 철도망이 기반이었다. 2차 산업혁명은 전화·라디오, 석유, 내연기관 차량이 등장하면서 일어났다. 3차 산업혁명 시대는 디지털 인터넷, 친환경 에너지, 전기·수소·자율주행차가 기반이 된다. 한국은 통신과 모빌리티면에서 다른 나라에 앞서고 있다. 삼성과 SK 등 세계 최대 규모의 통신기술 기업이 있고, 현대·기아차 같은 모빌리티 기업도 이미 구축돼 있다. 남은 건 새로운 에너지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Q : 한국도 ‘그린 뉴딜’을 추진하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A : 매우 약하다. 에너지 체제가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19세기와 20세기에 머물러있다. 특히 한국은 엄청난 규모의 ‘좌초자산(stranded asset·환경의 변화에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 자산)’ 문제에 직면했다. 한국은 화석연료로 인한 좌초자산의 위험 규모가 전세계 1위다. 이제 여기에서 어디로 갈지를 생각해야 한다. 화석 연료를 바탕으로 경제 정책을 펼치는 국가들은 대부분 독재국가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는 결국 도태된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이 이렇게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 체제를 유지한다면 20년 뒤에는 2류, 3류의 나라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석탄과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계속 사용하겠다는 충동을 버려야 한다. 태양력과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가 더 저렴한데, 굳이 화석연료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Q : 친환경 에너지가 더 저렴하다는 건 논란이 있는데.

A :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연금 펀드가 어디에 투자하고 있는지 아는가. 화석연료 채권에 투자하는 대신 친환경 에너지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석탄 산업의 파산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2주 전, 태양열과 풍력을 기반으로 하는 미국의 신재생 에너지 회사의 주가가 엑손모빌보다 높아졌다. 시장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화석 연료의 시대는 끝났다고.

Q : 코로나19에 기후변화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일어날까.

A :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위는 기성세대가 하던 시위와는 다르다. 사상 최초로 ‘밀레니얼 세대’와 ‘Z 세대(Gen Z)’ 세대, 두 세대가 함께 인류라는 대의를 위해 한뜻으로 거리로 나섰다. 이 두 세대는 인류가 멸종 위기 국면에 놓였다는 위기감에 함께 움직이고 있다. 과거에는 볼 수 없던 의식의 변화다. 화석 연료를 공짜로 퍼다 쓸 수 있다고 믿었던 믿음은 허구였다. 우리는 이제 기후변화라는 영수증을 받아들었고, 이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Q : 새로운 세대에 조언한다면.

A : 기다리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 평화를 유지하면서 거리로 나서야 한다. 부모님의 일이 아닌 앞으로 살아나갈 당신들의 일이다. 기성세대는 호의를 가지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과 함께 자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들이 해내야 한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부모님 세대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탄력적인 회복성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 20여 년 만에 한국은 12위 경제 규모의 국가로 탈바꿈했다. 그 의지라면 해낼 수 있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 환경·경제·기술·과학을 아우르는 지식으로 미래를 통찰력 있게 예측하는 미래학자로 통한다. 1989년 『엔트로피』로 명성을 얻은 그는 1995년 『노동의 종말』을 통해 자동화로 노동의 기회가 사라지는 시대를, 2000년 『소유의 종말』에선 공유경제의 도래를 예측했다. 최근 그가 펴낸 『글로벌 그린 뉴딜』은 문재인 정부의 그린 뉴딜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석경민·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