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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단독] 보고서 초안에 있던 '백운규 고발'…감사위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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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직원들이 감사원이 제출한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결과보고서를 정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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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 대한 감사보고서 초안에 고발 조치 대상에 올라 있었지만, 감사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빠진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감사원은 사무처에서 실무적인 감사를 마친 뒤 감사보고서 초안을 작성하고, 감사위를 열어 이를 심의한 뒤 문책 요구 등을 포함한 최종 감사 결과를 확정한다.

감사원은 전날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보고서를 발표하고 백 전 장관에 대해 산업부 장관에게 인사자료 통보 조치를 했다. 백 전 장관이 재취업하거나 포상 대상이 될 때 활용하도록 감사 내용을 통보하는 조치다. 고발, 징계 요구 등과 비교해 가장 약한 수위의 문책 요구다. 감사원은 백 전 장관이 2018년 9월 공직에서 물러나 징계 요구를 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백 전 장관은 감사원 사무처가 작성한 감사보고서 초안엔 형사고발 대상에 올라 있었다고 한다. 고발은 공무원으로 재직하는지 여부에 관계 없이 가능하다. 감사원법은 35조에 “감사원은 감사 결과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이를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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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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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최종 감사보고서엔 백 전 장관의 위법 의심 행위가 기록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백 전 장관은 2018년 4월 산업부 A과장으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월성 1호기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되는지 질문했다는 내용을 보고를 받았다. 이 보고를 들은 백 전 장관은 A장관을 질책하며 “폐쇄 결정과 동시에 즉시 가동을 중단하는 것으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산업부의 기존 보고서엔 월성 1호기 폐쇄 결정 2년 뒤에 가동 중단하는 게 더 경제성이 있다고 돼 있었는데, 백 전 장관 한 마디에 방침이 바뀐 것이다.

감사원은 또 산업부 공무원들이 월성 1호기 계속 운영의 경제성을 축소해 평가하는 과정을 백 전 장관이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도 내버려뒀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이런 사례를 종합해 “백 전 장관의 비위행위는 국가공무원법 제56조(성실 의무)에 위배된 것으로 엄중한 인사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감사보고서 초안에 담긴 백 전 장관 고발 조치가 감사위 심의에서 어떤 이유로 인사자료 통보로 바뀌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감사원 관계자는 “감사보고서 초안은 감사위에서 당연히 바뀔 수 있다. 감사위에서 확정된 감사 결과만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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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에 가동이 정지된 월성 1호기(오른쪽)가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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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여권과 가까운 감사위원들이 심의 과정에서 백 전 장관 고발을 막았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감사원 업무를 잘 아는 한 인사는 “고발 조치가 들어가면 감사를 이미 했던 감사원이 사실상 위법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재판 때까지 부담이 된다. 뇌물 수수 등 명확하게 범죄 행위가 소명되는 경우가 아니면 고발 조치를 하는 경우가 드문 이유다. 감사위에서 범죄 행위가 명확하다고까진 안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감사연보를 보면, 전체 처리한 위법·부당사항은 2330건인데 고발 또는 수사요청을 한 경우는 32건에 불과했다. 이 중 대부분도 횡령·뇌물수수 등이었다. 공무원 출신의 국민의힘 의원도 “감사원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감사에서 고발까지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감사원은 백 전 장관의 비위 행위 등을 검찰·경찰에 수사 참고자료로 보낼 예정이다. 범죄 혐의가 확실하진 않지만, 수사 기관이 범죄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감사원 관계자는 “수사 참고자료 송부도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월성 1호기 폐쇄 책임자들을 형사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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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원전 1호기 운행 및 감사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백 전 장관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감사원이 지적한 부분을 반박했다. 그는 “월성 1호기 폐쇄가 결정되면 물리적으로 즉시 정지하자는 것은 국정철학이었다”며 “다만 산업부가 조기폐쇄로 방침을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한수원 이사회가 결정해야 하는데 정부가 공공기관을 강제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실무진을 질책해 기존 보고서를 수정하게 지시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을 들은 뒤 다시 보고를 해달라고 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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